그 무엇이 불가능한가?
어제의 꿈은 오늘의 희망이며 내일의 현실이다.
- 로버티 고다드
당신이 의식하지 못하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이미 당신이 이루어낸 어제의 꿈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포퓰리스트의 탄생(르네상스 시대) - ‘사보나롤라’
그는 정치적 아웃사이더였다. 분노에 찬 언사가 대중 담론을 지배했다. 그는 타고난 연사였다. 대중의 마음을 흔드는 능력은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증폭됐다. 그는 선지자였다.
공포와 분노를 몰아내겠다고 약속했으나 청중의 공포와 분노에 불을 지핀 것도 그 자신이었다. 자신의 주장이 진리에 더 깊이 맞닿아 있다고 믿었기에 그에게 논리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바로 도미니코수도회 설교자로, 1490년대에 혜성처럼 등장해 르네상스 유럽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다.
그는 민중을 상처 입히고 두려움에 떨게 한 사회 엘리트 계층의 무능함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종말론적 메시지만으로 대중 혁명을 이끌어냈고 메디치 가문을 몰아낸 뒤 피렌체공화국을 차지하고 스스로를 사실상 왕으로 세웠다.
피렌체공화국은 르네상스 유럽의 지적 ‧ 문화적 중심지였다. 미켈란젤로와 마키아벨리의 고향이기도 한 피렌체는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교육 수준이 높고 부유하며 자유분방한 시민 집단이었다.
사보나롤라는 대중 연설과 인쇄 팸플릿을 이용해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뒤쳐졌다고 느끼던 피렌체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매일 설교를 통해 대중의 불만이 지도층을 향하도록 유도했다.
사보나롤라와 그 열렬한 추종자들은 소수파였지만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시의회를 장악했다. 그는 자유주위적 가치에 대항하는 민중운동을 선동했다. 사보나롤라는 정치인, 예술가, 지식인의 표현의 자유를 공개적으로 탄압했다.
1494년 집권 4년 만에 공개 처형을 당하기 전까지 이 논란의 중심이던 선지자는 손쉽게 피렌체 정계를 손아귀에 넣었다. 사보나롤라가 성공한 첫 번째 이유는 기득권을 쥔 엘리트 계층이 국경너머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안보 위협을 해소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1494년 프랑스의 샤를 8세가 이탈리아를 침공했을 때 피에로가 평화에 대한 대가로 막대한 국부를 갖다 바치면서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사보나롤라는 이 모든 일을 전반적으로 예언했다.
안보 위협이 가중되면서 시대는 도덕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강한 리더십을 원했다. 사보나롤라는 “오 피렌체여, 피렌체여, 손에 든 잔에는 구멍이 가득하도다.”라고 통탄했다.
사보나롤라는 피렌체 민중이 자신들의 영혼과 국가 제도를 좀먹고 있는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이 새로운 홍수를 보내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사보나롤라가 충격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두 번째 요인은 인쇄 미디어의 출현이었다. 그는 인쇄술을 대중 선전 수단으로 사용한 최초의 이탈리아 정치인이었다.
신생 미디어를 능숙하게 활용한 덕분에 사보나롤라는 언론을 장악할 수 있었다. 자신의 논리를 퍼뜨려 대중의 불안감에 불을 지폈으며 기득권 계층의 안일한 예상을 뒤집고 훨씬 빨리 세력을 확장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사보나롤라와 그 추종 세력이 손쓰기 어렵고 위험할 정도로 성장한 뒤였다. 이 황홀경에 빠진 자만심이 곧 사보나롤라의 가장 큰 강점이었다. 교황은 사보나롤라를 파문했다.
사보나롤라는 이를 가리켜 사탄이 로마를 점령한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마치 요술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어떤 공격에도 끄덕하지 않았다.
일반 쾌락주의자들뿐만 아니라 현실을 딛고 일어선 남자의 순수한 힘이 자신들의 잃어버린 신앙까지 회복시켜주길 바랐던 시민들은 그의 설교에 빠져들었다.
사보나롤라는 옛 영광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정적들이 편협한 세상을 버리고 하느님이 자신에게 위임한 권한에 완전히 굴복하기만 하면 스스로 능히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믿었다.
대중의 환멸과 극단주의
도널드 트럼프도 선지자이자 종말론적 예언가다. 현시대의 규범을 깨고 외견상 독창적으로 집권했으나 르네상스 시대의 관점으로 보면 트럼프는 표절자나 다름없다.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이후로 그는 인쇄술만큼이나 오래된 대중주의자의 각본에서 대사와 지문을 도용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트럼프와 그의 방식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그의 등장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사회를 바꾸는 힘은 새로운 위대한 가능성과 새로운 무서운 위협을 동시에 불러온다.
그러나 경험은 균일하지 않다. 커다란 승자도 존재하고 커다란 패자도 존재한다. 운이 좋은 사람은 살아남고 운이 나쁜 사람은 살아남지 못한다. 부와 가난이 양극단으로 집중되면서 기존의 공정성과 정의 개념이 시험대에 올랐다.
동시에 복잡성이 증가하면서 누가 또는 무엇이 걱정할 만한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가려내기가 어려워졌다. 따라서 한때는 분명했던 도덕적 책임과 법적 책임도 모호해졌다.
공명성, 정의, 도덕적 책임, 법적 책임은 사회를 하나로 묶는 합의의 심장부에 있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항상 시험받고 있지만 현시대에는 연대를 소집하거나 반란을 조작하는 기술이 갑자기 보편화되고 강력해지면서 그 확실성이 약화됐다.
두 번째 포퓰리스트 사보나롤라가 출현할 가능성은 항상 있었다. 다만 어떤 모방자가 그 역할을 자처하느냐가 문제였다.
분노가 쌓일 때
지키지 못한 약속으로 가득한 사회는 가연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사회는 없다. 지도층이 지키지 않은 약속이 쌓여서 제대로 된 불꽃으로 점화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돌이켜보면 피렌체 엘리트 계층은 깨뜨린 약속이 산더미처럼 쌓여도 민중이 여전히 복종하리라고 철석같이 믿었음이 분명하다.
피렌체 지배층은 자신들이 ‘공언한’ 가치와 행동으로 표출한‘ 가치 사이에 모순이 쌓이도록 내버려뒀다. 겉보기에는 심각한 결과가 초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보나롤라가 등장해 민중의 가연성이 입증되고 나서야 지배층은 자신들이 자만했음을 깨달았다. 사보나롤라의 언변에 기름을 부은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바로 피렌체 지배층이었다.
민중과 맺은 합의를 더 진지하게만 받아들였어도 사보나롤라를 쉽게 저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처럼 오늘날에도 공공복지에 책임을 위임받은 사람과 제도가 대다수를 살리기보다 소수를 배불리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는 강한 믿음이 존재한다.
그때처럼 오늘날에도 대중은 현시대에 구원을 받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배신을 당했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때처럼 오늘날에도 지도층은 자만심에 빠져 이러한 대중적 정서가 쌓이도록 내버려둔다.
이탈리아에는 전쟁이 한창이고
굶주림이 새로운 거처를 찾고
전염병이 가는 곳마다 승리하고
하느님의 분노에 찬 종말이 퍼진다.
눈먼 자에게 남겨진 어둠의 양식과도 같도다.
유리만큼 연약한 믿음을 지닌 인류여, 그 스러진 목숨이여
신이시여, 신이시여, 신이시여 …
- 사보나롤라
<‘신 르네상스의 새로운 기회를 찾아서 발견의 시대‘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이언 골딘 ‧ 크리스 쿠타나 지음, 김지연님 옮김>
* 이언 골딘 : 전 세계은행 부총재, 현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이다. 남아프리카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경제 고문으로도 활약했다. 세계화, 개발, 미래 트랜드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이와 관련된 18권의 책을 출간했다. / 크리스 쿠타나 : 옥스퍼드 마틴스쿨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두 차례 영국 총독 메달을 수상했으며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철학 상식 한 토막 - 니힐리즘
뜻 : nihilism ; 모든 기성 가치를 부정하는 입장
예) “넌 모든 게 무의미하다고 말하는데, 그런 니힐리즘은 좋지 않아.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어?”
☞ 흔히 ‘허무주의’라고 번역되는 니힐리즘은 지금까지 가치 있다고 여겨진 대상의 가치를 부정하는 입장입니다. 많은 철학자가 니힐리즘을 주장했지만, 니체의 니힐리즘이 가장 활발히 쓰이고 있습니다.
니체는 니힐리즘이라는 용어를 통해 유럽 사회 전체를 좀먹는 사람들의 태도를 부정했습니다. 이상적인 세계를 중시하는 발상 때문에 플라톤 이후의 철학적 전통이나 기독교 가치관이 확립되었다고 주장했지요.
니체는 사람들의 이상에 사로잡혀 현실을 받아들지 않았고, 그 때문에 허상이 생겨났다고 주장했습니다. 세상의 의미를 애써 찾으려는 사람들. 니체는 그것을 영원회귀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무의미한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느낌입니다.
영원회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니체는 오히려 니힐리즘을 철저히 따라가면서 기존의 허구를 모두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세상이 무가치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 세계를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능동적 니힐리즘이라고 부릅니다.
니체의 초인 사상은 능동적 니힐리즘을 실현하기 위해 제기한 개념 중 하나입니다. 초인은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가치관을 스스로 확립하는 존재를 말합니다. 인간은 초인이 되려고 노력함으로써 비로소 니힐리즘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교양 있는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철학 수업‘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오가와 히토시 지음, 이용택님 옮김, 빌리버튼출판> * 철학자이자 야마구치대학교 교수이다. 교토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고 나고야 시립대학 대학원에서 인간 문화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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