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봄이로군요, 3월
감미로운 미소의 달, 4월
꽃피는 5월, 무더운 6월
이 모든 아름다운 달들은
나의 친구들입니다
잠들어 있는 강가에 포플러 나무들
커다란 종려나무들처럼 부드럽게 휘어집니다
포근하고 조용한 깊은 숲에서 새가 파닥거립니다
초록의 나무들은 즐거워하고
해는 왕관을 쓴 듯 힘차게 솟아오릅니다
저녁이면 사랑으로 가득 차고
밤이면 거대한 그림자 사이로
하늘이 내리는 축복 아래
영원히 행복한 노래를 부릅니다.
- 빅토르 위고
사람을 웃게 하는 세 가지 기본 요소
첫 번째, 희극성(코믹)은 오직 인간적인 영역에만 존재합니다. 풍경에는 아름다운 풍경이나 매력적인 풍경, 장엄한 풍경, 보잘것없거나 흉한 풍경이 있지요. 그러나 우스운 풍경은 있을 수 없습니다. 동물을 보고 웃음을 터트릴 수야 있지만 그건 그 동물이 사람처럼 행동하거나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을 때입니다.
두 번째로, 통상적으로 웃음에는 감정의 부재가 동반됩니다. 말하자면 코믹은 마음이 완전히 고요하고 차분한 상태일 때에만 그 돌발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웃음에서 감정보다 큰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연민이나 애정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을 보고는 웃을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런 경우에는 우리의 애정을 잠시 접어 둬야겠지요. 연민도 잠재워야 합니다.
순수한 지성으로 이루어진 사회라면 눈물이 없어도 웃음은 존재할 것입니다. 반면 고도로 감정이 발달된 나머지 삶과 완전히 동화되어 만사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웃음에 대해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이제 한걸음 비켜서서 무심한 방관자의 입장이 되어 삶을 지켜봅시다. 이번에는 많은 비극이 희극으로 바뀝니다. 무도회장을 예로 들면,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게 귀를 막는 것만으로도 춤추고 있는 사람들을 일시에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지요.
과연 인간의 행위 중 이런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요? 코믹의 효과가 완전히 발휘되기 위해서는 감정을 순간적으로 마비시키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다름 아닌 지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세 번째, 웃음은 타인의 반향을 필요로 하는 사회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웃음은 보통의 삶에서 요구되는 어떤 특정한 것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바로 사회적 중요성을 띄고 있는 것이겠지요.
희극성은 무의식적인 것이므로 그걸 가진 인물의 눈에는 띄지 않지만 다른 이의 눈에는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다들 웃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테니까요. 또 그 자신에게는 지극히 관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의 가책도 없이 내보일 수 있겠지요.
또 다른 이들의 눈에는 골칫거리여야 합니다. 그래야 동정하지 않고 진압할 테니까요. 또, 즉각적으로 진압 가능해야 합니다. 그래야 웃음이 헛되지 않을 테니까요. 사회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이면서 사회로서는 참기 힘든 존재여야 합니다.
모든 악덕과 심지어 수많은 미덕들까지 갖고 있어야 하고요. 그래야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대단한 형태의 다양성을 띨 수 있을 테니까요. 아마도 어떤 효과를 가지는 조잡한 희극적 요소들을 다 허영 때문에 생겨난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대조의 개념을 빌려 그 효과를 매우 불충분하게 설명해 왔습니다. 키 작은 사람이 큰 문을 지나면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나, 하나는 매우 크고 하나는 난쟁이처럼 작은 두 사람이 서로 팔짱을 끼고서 근엄하게 걸어가는 것 등이 그것이지요.
이 이미지는 황소처럼 커지고 싶어 배를 부풀리던 개구리처럼 둘 중 작은 사람이 상대의 키에 맞춰 자신을 들어 올리려 애쓰는 것처럼 보이지요.
<‘웃음’에 대해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앙리 베르그송 지음, 신혜연 번역, 이소노미아출판> * 앙리 베르그송 : 폴란드계 유대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유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프랑스 현대 철학의 아버지. 수학에 재능이 있었으나 그는 철학과를 택했다. 스물아홉 살에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미국의 참전을 촉구하는 프랑스 사절단의 일원이 되었다. <물질과 기억>, <웃음>, <창조적 진화>,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등의 책을 저술했다. 철학자이면서 문학가. 192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전염되는 지혜
미신적 종교를 믿는 자들과 국가 권력들이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참을 수 없다고 느낄만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스피노자는 신성한 경전을 문자 그대로, 영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만일 신이 영원한 존재라면 신에게는 이전과 이후가 없으므로 신은 시간의 개념을 넘어선다.
신의 창조물은 신과 공존하기에, 신은 시간의 개념 안에서는 무엇도 창조할 수 없었다. 시간은 오로지 물질과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진정한 이단은 그 반대를 주장하며 신을 인간 차원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은 무한하고 완전하기에, 내가 무엇을 하느냐 벌하거나 상을 줄 수 없다.
내가 하는 행동들은 신에게는 낯선 시간성에서 행해지기에 신은 내 행동에 놀랄 수도 없다. 신은 무언가를 창조한다면 신이 창조하는 것은 아주 예전부터 창조되었기에 따라서 이미 결정된 것이고 무작위성이나 ‘자유의지’의 가능성이 없다.
일신교가 지닌 신에 대한 이런 관념은 결정론을 따르는 세상에서만 존재하고, 필연적 원인 없이 사건이 발생하는 세상과는 양립되지 않는다. 다른 모든 개념은 이단이고 미신이다.
종교적 미신은 과학자들이 하듯이 원인에 따른 결과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결과에 따라 원인을 설명한다. 예컨대 바람이 기와를 떨어뜨려 지나가는 사람을 죽였다고 설명하는 대신 신이 기와로 그 사람을 죽이기 위해 바람을 불게 했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죽은 이유가 바람이 불었기 때문임이 명백한데도 그들은 죽음이 의도되었기에 바람이 불었다고 말한다. 스피노자 시대는 이러한 종교적 목적론을 신성한 진리로 여겼기에 누구든지 그 현상을 설명하려 하면 이단자라고 간주했다. 이것이 스피노자가 스스로 경험한 것이며 파문당한 이유다.
스피노자는 이 미신적 표현이 품고 있는 매우 정치적인 쟁점을 알고 있었다. 즉, 미신적인 표현은 권력을 합당하게 만들고 권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연적인 법칙에 기초해 자연을 설명하려 노력해야 한다. 인체도 그중 하나다. 따라서 인체의 지속 기간은 외부의 원인에 따라 달라지며, 그 외부 원인 가운데 일부는 인체에 유익하고 일부는 인체에 유해하다.
어떤 경우든 우리의 인체와 생각은 이미 결정되어 있으므로 소극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우리가 행동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정념passion의 문제다.
그러나 이러한 열정이 존재하고 행동하는 역량을 증가시킬 때 원인이 적절하다면 행동하게 된다. 이러한 열정이 우리의 존재와 행동의 역량을 증가시킬 때, 우리가 그것의 적절한 원인이라면 이를 '행동action'이라고 한다.
이 중 무엇도 선 또는 악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자유의지의 문제도 아니다. 대신 스피노자는 자신에게 유용하다고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
역량을 증가시키는 것을 좋은 것bon이라고 하고 자신에게 해롭다고 확실하게 인지하는 것을 나쁜 것mauvais이라 했다.
자신에게 무엇이 좋은지 알게 된다 해도 정념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역량을 증가시킬 정념이 내면에서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제한다.
스피노자는 즐거운 정념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즐거운 정념’이 스피노자가 ‘슬픈 정념’으로 규정한 사악하고 해로운 정념을 철회하도록 자유롭게 결정할 수 없다.
자유롭게 결정하려면 의지가 필요한데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정념에는 그 자체로 힘이 있으며 그 힘은 결정론을 따른다. 정념은 다른 정념에 의해서만 줄어들 수 있으며 이 또한 결정론을 따른다.
음주운전이나 과속 또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추월하거나 정지신호를 무시하면 사망할 수도 있음을 누구나 안다. 그러나 억제할 수 없는 정념과 경험에 사로잡혀 많은 운전자가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 이런 때는 조언도 소용없다. 어떤 결정을 한다고 해서 이러한 슬픈 정념을 줄일 수 없다.
물론 운전의 경우 경찰에 대한 두려움, 벌금, 면허 취소가 더 효과가 크다. 이러한 두려움과 관련된 정념은 종종 다른 정념보다 크다. 그러나 벌금을 낼 위험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슬픈 정념에 사로잡힌 운전은 다시 늘어난다.
교육 시스템의 철학
교육 수준이 높고 연구를 더 많이 하며 지식이 더 많이 발전할수록 미신과 어리석은 믿음으로부터 영향을 적게 받는다는 것은 타당한 논리다.
과학과 철학은 실제로 집단적인 믿음을 이용하는 세력에 반대하고, 진보를 가로막는 다양한 착각과 비합리성에 대항하며 발전했다.
그러나 최고 엘리트 계급을 포함해 교육 수준이 높은 사회에서조차 터무니없는 사상들이 여전히 지배적인 상황을 목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26%의 시민만이 진화론을 인정하고 고층 빌딩에 13층은 거의 없으며 유인 우주 비행에도 13이라는 숫자는 없다.
2018년 종교 지도자들은 심지어 최근 기후 재해를 지구온난화가 아니라 세계 종말이 임박했다는 신의 선언으로 보았다. 중국에서는 숫자 8이 행운을 뜻하는 중국어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베이징올림픽을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 8분에 개최했다.
마찬가지로 데카르트의 나라인 프랑스에서 이공계 졸업생의 55%가 점성술과 수비학(성,이름,생년월일 수치로 분석해 사람들의 성격과 미래를 예측)을 믿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른 유럽국가에서는 27%에서 48%의 교사가, 마그레브 국가에서는 70%에서 85%의 교사가 스스로 창조론자라고 표명한 데 반해 프랑스 교사는 2%만이 창조론자라고 표명했지만, 그런 프랑스도 여전히 미신적인 부조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피노자의 삶과 방법론은 과학과 어리석은 신념을 명확히 구분하고, 신에 대한 믿음과 성직자들이 퍼뜨리는 미신을 식별했으며, ‘자유 의지’의 환상과 합리적인 인식을 구별해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것으로부터 해방시켰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19세기 초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스피노자 철학의 위대함을 밝혔을 때 헤겔은 ‘모든 철학자는 스피노자주의자이거나 철학자가 아니거나 둘 중 하나다’라고 쓰며, 단순한 문구를 넘어 시대를 초월한 측면에 주목했다. 소크라테스와 몇몇 정상에 선 사상가들처럼 말이다.
<‘불안사회 생존절략’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장 폴 주아리 지음, 배정은 님 옮김, 상상스퀘어 출판> * 장 폴 주아리 : 알제리 출신 프랑스 철학자이자 교수. 정치철학, 과학철학, 철학사, 철학교육에 대한 다양한 저서를 집필했다. 파리1대학, 퐁트네 생 클루 고등사범학교, 피카르디의 인문학부, 라군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철학속으로 들어가기>, <구석기 시대의 예술>, <나는 투표한다, 그러므로 사고한다>, <철학하기가 쉬웠다면?>,<철학으로 정치를 취하다>,<유산으로서의 과학>,<루소, 미래의 시민>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