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든 일에 싫증을 내지만 타인을 조롱하는 일에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들의 결점이 우리 자신에게는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좋아하는 책도 시간이 지나면 싫어하게 된다. 같은 책을 언제까지고 재독할 수는 없다. 뮤즈와 결혼을 하더라도 밀월은 끝날 수밖에 없고, 그러고 나면 증오까지는 아니더라도 무관심이 뒤따른다.
어떤 책은 줄거리가 기발해서 처음에는 인상적일지라도 도저히 재독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아주 화려하지는 않지만 세부적 내용이 매우 섬세하여 관심을 끌긴 하는데 계속 열의를 가질 만큼 흥미롭지 않은 책도 있다.
그리고 책 전체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평생 곱씹고 애정과 감탄을 고갈시키지 않는 구절들이 있다. 우리는 그런 구절들을 읽고 또 읽으며 거의 맹목적으로 좋아한다.
한 예를 들겠다.
창가에 앉아서 수를 놓는데
신이 들어오는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어요(하지만 그건 당신이었죠)
숨을 내쉬었다가 도로 빨아들이듯 빠르게
내 몸의 피가 쭉 빠져나갔다가 도로 들어오는 것 같았어요.
그러고 나서 나는 당신을 환대하라고 불려갔어요.
비록 생각뿐이지만, 양우리에서 왕좌로 들어올려지듯이
나처럼 그렇게 높이 들어 올려 진 사람은 없었어요.
그때 당신은 내 입술에 키스를 남겼죠.
나는 그것을 영원히 간직할 거예요.
당신이 말하는 목소리는
노래보다 더 아름다웠어요!
이런 구절은 정말로 미각에 꿀과 같은 맛을 남긴다. 이것을 읽을 때는 신들과 함께 황금 식탁에 앉아 있는 것 같은데, 일상에서 자주 반복되면 맛을 잃고 시시해진다.
나는 예전에 내가 가졌던 의견들에 정말 신물이 난다. 이유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의견에 속아 살았기 때문이다. 재능은 포도주가 아니다.
미덕은 가면이 아니다. 자유는 명분이 아니다. 사랑은 인간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는 말들. 나는 그렇게 배웠고 그런 말들을 기꺼이 믿었다.
이제 그 말들을 사전에서 뺀다 해도 나는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내 귀에 그 말들은 비웃음과 일장춘몽이 되었다. 어리석음이 속임수와 결탁하여 공공심과 여론을 날조하는 것을 본다. 인류가 올바름을 희망했다면 오래 전에 이루었을지 모른다.
이치는 간단하나 인류는 악행을 저지르는 성향이 있다.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성경, 디도서 1:16)”들인 것이다. 우리는 개인 생활에서 득세하는 위선과 노예근성, 이기심, 후안무치와 충돌할 때 겸양은 위축되고 가치가 짓밟히는 것을 보지 않는가? 진정한 열정이 성공할 가망이 있을까?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집’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윌리엄 헤즐릿 지음, 공진호님 옮김, 아티초크 출판> * 윌리엄 헤즐릿 : 당대의 최고의 문장가요 에세이스트였다. 그는 자유사상가이자 이단아였고, 반체제 운동의 열렬한 옹호자였자. 1778년 영국 메이드스톤에서 유니테리언 목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793년 런던의 헤크니 뉴 칼리지에 들어간 그는 급진적 사상가들과 친분을 맺었다. 철학서 <인간 행동론>을 <정치 에세이>,<좌담>,<시대 정신>을 출간했다.
운다
울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려
눈시울을 눈물로 적신 채
상대의 농담에 나는 웃었다
내가 운 이유는 통속 소설의 통속적인 한 줄 때문이지만
하지만 울 수 있다는 것에 나는 구원받아
덕분에 웃었을지도 모른다
웃으며 전화를 끊은 뒤 담배에 불을 댕기고
나는 내 감정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을 뭐라고 이름 지을 수 있을까하고
끝내 이름 짓지는 않았다
창밖에서는 찬바람이 신음하고
난 이제 더 이상 계절의 시어를 갖고 있지 않다
나를 묶는 제도 속에서
감정은 출구를 잃고
그 모든 것이 분노를 띠어오지만
그것조차 나의 것인지 분명치 않다
눈시울은 이미 말라
맹목적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만이 남아 있다
- 다나카와 슈운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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