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삶 속에서 디테일을 찾아보자!
어쩌다 몸을 많이 쓴 날이면 저녁 식사 후 이내 눈꺼풀이 무거워 감당하기 어려워질 때가 많다. 그렇다고 식사 후 바로 누울 수도 없고, 여건상 밖으로 나가 동네 한 바퀴 돌기에도 마땅찮다. 외진 산골에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주변 전체가 암흑천지로 변하기 때문이다.
자다가 중간에 깨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도회지에서는 아파트 주변을 돌거나 강변 산책로에 가로등 불빛이 대낮같이 밝혀져 있어, 밤늦게라도 산보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만 산골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하여 적막감마저 들기도 한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농원의 쉼터에는 드럼과 전축, 책과 책상 그리고 조도가 높은 훤한 스탠드가 놓여 져 있다. 방바닥에 드러눕거나 앉지 않고 곧은 자세로 책을 보거나 음악을 즐기기 위해 비좁은 공간이지만 마련 해 놓았다.
옛 부터 선인들은 집안에서 몰입할 수 있는 근사한 도구로 뜨개질을 예로 들었다. 인류 역사상 뜨개질은 유목·이동 생활을 하는 집단에서 실과 바늘만으로 옷을 만들 수 있는 실용 기술로 자리 잡았고, 이후 유럽에 널리 퍼져 산업혁명 이후 기계화와 함께 크게 확장되었다고 한다.
여성들의 취미와 몰입의 도구로써 참으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손수 짠 옷가지들을 지인에게 선물을 할 수도 있고 다양한 형태의 창작으로 도전해보는 도구임에는 분명하다. 여성들은 소소한 집안일 외에 수놓기, 바느질과 화초가꾸기 등이 있어 지루할 틈이 없을 것 같다.
이에 반해 남성들에게는 마땅한 거리(꺼리)가 없는 편이다. 어쩌다 마을 친한 지인들을 만나게 되면 술을 마시거나 자극성 오락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산골 환경에 가장 적합한 것은 독서와 음악 등이 으뜸이라는 생각을 하며 실천해 가고 있다.
심리학 교수이자 『 몰입flow』 의 저자인 칙센트미하이는 관심을 ‘심리적 에너지’라고 표현했다. 우리의 관심에는 내재된 힘이 있어 이를 어디로 어떻게 쏟느냐에 따라 삶이 개선될 수도 있고 또 불행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칙센트미하이에 따르면 나 자신은 관심을 어떻게 쏟느냐에 따라 창조된다고 하였다. “기억, 생각과 느낌은 모두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형성되니까 말이다.”
또한 펠드만과 쿠이켄은 저서 『마음 챙김mindfulness』에서 비슷한 은유를 사용해 “마음 챙김을 하려면 관심은 빛줄기처럼 쏟아야 한다. 어디에 빛을 비추고 또 어디는 어둠으로 남겨둘지 선택해야 한다.”고 적었다.
일과 후에는 앞서 말한 예 외에도 TV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거나 또는 농작물을 고르면서 긴 밤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새로운 세계인 독서, 글쓰기와 일기 등으로 정신적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보람된 일이라 여겨진다. 고단한 저녁이라 힘들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 지으면 정신이 명료해지고 뿌듯하게 다가오는 보람도 뒤따른다.
하루를 밋밋하게 넘기지 않고, 소소하지만 그날의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편집해 나가는 그 순간만은 나 자신과 진실하게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집필전문가인 트리스텐 라이너가 “빠르게 쓰고, 모든 것을 쓰고, 모든 것을 포함시켜라.” 고 말한 것을 나 역시 몸소 실천해 나가고 있다.
이처럼 깨는 중간이나 식사 후 졸지 않고 한 동안 몰입하게 되면 더부룩한 소화기 계통은 이내 쾌청으로 바뀌고 자연스레 그날의 마음까지 말끔히 매듭을 짓는 기분이 든다.
이 순간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 주는 것이며 스토리텔링의 중요한 기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전원생활 초기에는 주변 야생화와 곤충들, 작물들의 꽃과 열매들을 일자와 계절별로 많이 찍어 블로그에 담아 보곤 했다.
지금도 그 당시 사진들을 꺼내보면 일기장 못지않게 나의 눈이 향한 곳과 마음이 멈춘 스토리텔링을 읽을 수 있다. 틈틈이 독서와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다 보면 자연에 대한 친밀감을 더욱 가지게 되고 일에 대한 과 몰입까지 차단해 주기도 한다.
전원 생활 시작부터 친숙했던 마을 어르신 한분은 저녁 식사 때 반주를 곁들이고 나면 피곤이 몰려와 이내 곯아 떨어진다고 하였다. 그런 반복된 삶의 결과로 위암이 생겼고 위장 절제 수술을 받은 후부터는 생활방식을 모두 바꿨다는 말을 들었다.
농사일은 시작은 있는데 끝이 없다. "농사 일은 죽어야 끝이 난다."고 말한 마을 어르신이 생각난다. 벌써 오월 중순인데도 잡풀이 작물을 에워싸고 있다. 일에 매몰되어 있으면 생각나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일뿐이다.
주변 시선을 의식하거나 임의로 자신이 정한 목표에 매달려 자칫 워라밸을 잃게 되면 과몰입의 일벌레로 전락하게 된다. 이는 행복 속의 권태가 아닌, 일의 노예로 종국에는 소중한 남은 인생의 시간과 에너지를 몽땅 소진시켜 불행의 늪에 빠지게 될 뿐이다.
특히 노년에 가까워 질수록 근력이 줄어들어 육체적 활동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정신적 노화까지 방치하면 안될 것이다.
노년을 누구보다 연구한 철학자 키케로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방법에 따라 '낮에 무엇을 말하고 듣고 행하였는지를 저녁에 되짚어 보는 일'을 추천했다.
소크라테스가 말년에 칠현금을 뜯었고, 카토는 그리스 문학을 열심히 배웠듯이 이 또한 같은 맥락의 예들이다. 농작물 재배로 적당히 움직이고 아울러 정신적인 노력을 열심히 병행 해나간다면 건강한 삶을 누릴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산골 삶 속에서 디테일을 찾아 나서 즐기다 보면, 우울하고 외로운 생각들을 떨쳐버리게 되는 더 없이 좋은 선순환의 역할을 해준다.
흐린 날 마치 뿌연 안개가 걷히듯 명료한 순간이 되어 그날의 소확행을 느끼며 하루의 일과가 해피엔딩이 됨을 몸소 느낄 수 있다.
이는 마치 주변의 산나물을 골고루 섞고 마지막에 참기름과 고추장을 화룡점정한 것처럼 맛있는 산채비빔밥을 되는 과정과 같다고 여겨진다.
더불어 다음 날이 오히려 기다려지는 신기한 설레임의 생활방식으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생각보다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이 중요하다! - <'나만의 철학이 있는 전원 생활'>의 필자 책 일부에서 발췌.

팔불출의 변!
옛말에 ‘처자식 자랑은 팔불출(八不出)이라 했는데, 손자 자랑을 해도 오십보 백보일거고 그 범주를 크게 못 벗어 날 것이다. 팔불출 본뜻은 ‘열 달을 채 못 채우고 여덟달 만에 나왔다’하여 ‘좀 어리석은 사람을 조롱하여 이르는 말’이다.
현대에 와서 대중매체가 발달되고 나서부터는 비밀 또한 입소문보다 광속도로 빨리 퍼진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도 있다.
인간의 고유 본성인 질투를 일컫는 말들이다. 질투만큼 인간관계를 그르치는 경우도 드물기 때문에 불씨가 되는 언행에 신중을 기하라는 경계의 속뜻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론이 장황하였는데 다름이 아니라, 초등학교 6학년 학생에게 주는 '우수과학 어린이 상'(장관상)을 두 손자가 한날한시(2026.4.21 제59회 과학의 날)나란히 받게 되었다. 두 손자들은 나이와 학년은 같지만 학교는 각기 다르다.
수상 소식은 작은 손자가 일찌감치 먼저 알려줬고, 한참 뒤에 큰 손자가 전해왔다. 그러면서 ‘두 손자가 동시 수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드문 경우겠습니까’ 하는 큰 며느리의 말에 고무되어, 냅다 붓을 꺼내 들어 자축의 의미로 우리 두 부부만 볼 수 있도록 거실 벽면에 써 붙여 두었다.
밋밋한 일상에 따끈따끈한 스토리텔링이 날아들었으니, 한 동안은 벽면에 붙여 두고 TV를 보거나 거실을 오고 가고 할 때 마다 쳐다 볼 요량이었다.
주변에 입소문으로는 떠들지 않았지만 블로그에 이런 소소한 담론들을 올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자연스레 발설하게 됐다. 어쨌든 자랑거리로 변질됐으니, 변명과 동시에 속속들이 다 까발릴 수밖에 없다.
요즘은 음식대접을 하면서 자랑을 하라고 했는데, 변명치고 구차하지만 개인적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小確幸)으로서 그저 일상의 스토리텔링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일찍이 괴테는 가르치는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격려’를 더 중요시 했었다. 할비와 할미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먼발치서 오직 격려 밖에 없지 않은가! 수상 소식을 듣고나서 어떤 방식으로 격려를 해야 할지를 깊이 생각해보았다.
말로만 공치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마침 산골 농원생활 13년 째를 맞다 보니 이 몸도 불편해 가듯 사용하던 농기계들도 고장이 잦아 이참에 처분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오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함께 격려의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처분한 굴삭기 80만원, 트랙터 30만원을 격려의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굴삭기는 두 손자가 어릴 때 내 무릎에 앉아 구동 레버를 조종해가면서 논바닥을 파헤쳐 본 추억들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격려의 의미와 학문에 대한 동기부여를 더 북돋울 것으로 여겨진다.
중요한 것은 자식 대가 아닌 손자 대에서 이런 기쁨을 안겨준 거에 대해 방점을 찍고 싶었다. 고장이 잦은 농기계도 처분하였으니, 이제 손놀림만으로는 다소 불편하겠지만 그에 비례해서 들판 일도 줄여가면서 쉬엄쉬엄 해야 할 것 같다.
자식을 키워봤지만 수많은 곡절과 사연들이 있지 않던가? 원하는 진학과 취업 문턱에서 좌절도 맛봐야했고 낙담한 경우도 있었다.
손자들 세대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아 갈 테지만, 아직 이들에게는 커갈 날들이 까마득하고 이제 걸음마 단계이기에 섣불리 미래를 예단하는 것은 금물이라 더욱 조심스럽다.
괴테가 말한 격려만큼은 아끼지 안 하야 하겠기에 꽃과 장학금 형식으로 전달했다. 다만 인생 선배로서 말하자면, 올바른 ‘인성’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단테는 <신곡>의 서두에서 “인생이라는 여행의 한복판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을 헤맸다.”라고 술회했다. 앞으로 우리 손자들 역시 그런 길을 답습하겠지만 인생의 한복판에서 길을 잃고 너무 많이 헤매지 않았으면 한다.
더 나아가 돈과 명예가 행복을 절대적으로 담보하지 않는 다는 것과 보람으로 이끌어주는 절대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자기 능력에 맞게 만족할 줄 아는, 즉 지족(知足)할 줄 아는 인간으로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정의 달, 삼대가 모인 오월의 행사를 겸하면서 반가움도 잠시, 다 떠나보내고 집에 돌아와 이렇게 소회의 글을 길게 적어본다. 가족이지만 어쩌다 행사가 있을 때만 만났다가 훌쩍 떠나보내고 나니 일장춘몽을 꾼 듯하다.
먼 길 몇 시간씩 빗길에서 힘들게 달려 온 작은 아들네들도 큰 고생을 했다. 나 또한 내일이면 홀로 산골로 훌쩍 향한다. 이제 다시 침묵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각자의 삶에서 충실히 그리고 건강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서도, 가정의 달을 맞아 더욱더 평안함과 즐거움이 함께 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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