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오두막(쉼터)짓기!
중고 굴삭기를 사서 유공 관을 묻고 배수로를 내어 유실수 심을 땅을 손수 정지작업을 하였듯이, 뭐든 혼자 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자연 속으로 입문하는 첫 발걸음으로 여겼다. 내가 이 오두막을 손수 지은 것도 그 중 하나였고 이루고 싶은 목표였다.
누구의 도움을 받게 되면 끝날 때까지 의존하게 된다. 퇴직을 앞두고 석 달 동안 쉼터를 짓기 시작했다. 집사람이나 인부의 도움을 일체 받지 않았다. 사다리 두 개와 굴삭기도움으로 구십일 동안 혼자서 느긋하게 지어 나간 움막이다.
황토 흙을 캐오고, 그것을 양파 망에 넣어 다지고, 제각기 다른 치수의 나무를 연결해보면서 집의 형태를 상상해 보는 과정이 모두 처음이었다. 물론 인터넷과 책에서 자료를 뒤져보면서 개인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구들을 놓는 것과 지붕상량을 들어 올릴 때가 무엇 보다 힘들었다. 구들방은 연기가 새어나오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세심한 작업 공정이 필요하다. 상량 나무를 들어 올릴 때는 한쪽을 먼저 걸친 후 반대쪽은 굴삭기로 들어올렸다.
나머지 문짝과 창문틀을 다는 것, 지붕을 방수포로 덮고 칼라시트로 마무리하는 것 등은 비교적 수월했다. 인건비로 들어가는 경비가 절약되기 때문에 집 지을 동안은 오일장에나 마트에 가서 먹고 싶은 음식들을 푸짐하게 곁에 두고 만찬을 즐겼다.
힘든 일에 스스로 보상을 해가면서 그날그날을 즐기면서 집을 지은 것 같다. 외관과는 달리 나름 꼼꼼하게 짓다보니 13년이 되은 오늘 날에도 비가 샌다거나 뼈대의 뒤틀림 등 보수할 일이 없어 다행이다.
처음에는 군청과 건축설계 사무실을 들락날락하면서 돈 들여 때깔 나는 그림 같은 집만을 생각했었다. 이 또한 지나고 보니 얼마나 설익은 생각이었는지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타인을 의식한 갑옷을 걸치고 색안경을 낀 상태로 자연을 대한 것이다.
산골 속은 산불과 산사태의 위험성에 노출될 수 있는 곳이다. 확률적으로는 낮은 편이지만 2025 전국적으로 번진 산불처럼, 전재산을 쏟아 부은 소중한 집이 소실된다면 그야말로 알거지가 되는 것이다.
인적이 드문 곳에 자기만의 아늑한 공간이 아닌, 타인을 의식한 겉치레 화려한 집은 세월이 지나면 방치되기 십상이다. 노후에 그저 10~20년 머무를 곳에, 그것도 자녀와 집사람이 들어 와서 살리도 만무한데 외통수 일을 벌려서는 안 된다.
천 년 만년을 살 것 같은 지은 집은 자연에 어울리지도 않고 경제적으로 패망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산골에 머물다보면 휴식공간이 꼭 필요하다. 처음에는 정자를 짓고, 임시 거처인 움막을 지었다. 비와 햇볕을 피할 곳이 반드시 필요하다.
장시간 움직이다보면 허리 펼 곳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농작물 재배가 많아지거나 타지로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숙식을 위한 쉼터인 오두막을 지어야 한다.
필자는 나중을 생각해서 자연으로 환원하기 쉬운 황토 집을 짓기로 했다. 나중에 내가 기거가 힘들어질 정도가 되면 자연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흙과 나무로만 가급적 짓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 들어가는 소재 역시 자연 속에서 구해서 짓게 되었다. 밀림 우거진 산속에서 집의 뼈대를 구했고, 황토 흙으로 단열재 벽을 만들었다. 따라서 자연적으로 돈은 절약되었다. 문짝과 지붕 방수포와 칼라시트, 싱크대, 정화조 정도는 돈을 들였다.
중요한 것은 많은 돈을 쏟아 부어 화려하게 지었더라면 노후에 쓸 현금이 고갈되어, 아늑하게 머물 이곳 산골이 불편한 장소로 바뀌었을 것이다. 더 심하면 돈을 벌기위해 또 바깥으로 떠돌아 다니는 역 전원생활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10여 년을 지나고 보니, 황토 집은 여름에 햇볕을 잘 차단해 주어 실내에 머물면 시원하다. 다만 열대야가 있는 한 여름에는 별 효과가 없다. 겨울 역시 판넬집 보다 온기가 더 감돈다.
그런대 중간 중간 보수를 자주 해주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흙집이라 시간이 지나면 흠집이 생긴다. 그리고 쥐들의 호기심 있는 공격으로 흙을 메워주고 보수를 자주 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요즘 5평 정도의 관리사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오히려 컨테이너를 들여 놓는 방법을 권장하고 싶다. 컨테이너는 곤충과 쥐들의 공격을 피하기 쉽고 바닥에 전기판넬을 깔면 보온에도 손색이 없는 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거용이나 사무실 용도로 기존에 만들어놓은 것을 쉽게 설치하면 집을 짓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어 오히려 더 경제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여름철 뙤약볕을 차단해주어야 하므로 지붕 쪽과 벽면에 단열재를 해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것은 위치 선정이다. 쥐, 지네 , 뱀 등의 유해 곤충과 동물의 침입과 산사태 등에 대비해 위치 선정에도 유의해야 한다. 오두막은 한번 짓고 나면 옮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바닥의 습기 유입을 막기 위해 바닥은 시멘트와 방수시트로 처리해야 한다. 그리고 정화조는 집과 가급적 멀리 떨어져 설치하여 여름철 냄새로 인한 쾌적한 환경을 방해받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야외에 가마솥을 설치하고 운치 있게 견치 돌로 장독대 조경까지 해두면 집과의 주변 환경이 잘 어울리게 된다. 그리고 바비큐 장비나 빵을 구울 수 있는 소규모 장작 가마 형태의 틀을 만들어 놓으면 가끔 씩 이용하더라도 편리하고 운치가 있을 수 있다.
여름철 집 지붕 위의 열기를 막기 위해 집 주변에는 키위 나무를 심어 두면 몇 년 후에 열매 수확이라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가 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늘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등나무를 심어 놓았더니, 집안 구들까지 뿌리가 파고들고 씨앗이 사방에 번져서 등나무를 모두 깨내고 톱으로 베어 내는 번거로움이 뒤따랐다.
집안 천장과 자연의 운치에 맞게 화선지와 딱 종이를 사서 평소 가까이서 되 뇌이고 싶은 시구나 글을 붓으로 적어 도배를 하였다. 나 혼자 만의 공간이므로 내가 좋아 하는 나만의 방식으로 꾸며 놓았다.
벽은 황토색 그대로 살렸고 중간 중간 사이에 골격을 유지하기 위해 넣은 나무 뼈대가 옷걸이가 되어주고 액자 걸이가 되어 주었다.
창문은 시야가 확 틘 곳으로 내고 겨울 철 냉기를 막기 위해 이중창으로 하였다. 이처럼 손수 지은 집은 뿌듯한 만족감과 큰 보람을 안겨준다. 비록 남들이 보면 어설프고 거칠지라도 나의 손때가 묻은 집이라는 개념을 훨씬 뛰어넘는다.
조용한 산속에 소박한 밥상을 차리고, 잔에 포도주를 따르고, 고음의 음악을 틀고, 신나게 드럼을 치고, 탁자에 녹차를 부어 마시는 순간만큼은 행복의 온기가 온몸에서 산골 전체로 울려 퍼진다.
물론 단점도 있다. 그러나 이 순간만의 현재를 즐겨야 하지 않은가. 에머슨이 말한 ‘자연 속에서는 벼락과 천둥이 치더라도 개의치 말라’고 하였다.
비바람이 불거나 어둠이 깔리면 사소한 불편함과 두려움에 노출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분위기에 압도당하면 즐거움은 점점 더 휘발되어 갈 것이다.
어쩌다 들리는 지인들은 산골의 쉼터를 도시의 주거용 아파트나 펜션 정도로 비약해서 생각하는 거 같았다. 단지 세컨드 하우스 개념으로 환경에 맞게 지었을 뿐인데 불편함과 낙엽, 농작물 부산물 등 정돈되지 않은 널브러진 환경부터 먼저 떠올린다.
그러면 자연은 그런 사람들을 포용할 수도 없고 사람 또한 자연의 품안에 안길 수도 없다. 마음과 뼈 속까지 자신도 자연이 되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칼릴 지브란 시인의 자연예찬이 딱 어울릴 것 같다. “자연은 아름다움 속에서 기쁨을 찾으라고 우리에게 우정의 손길을 내밀지만, 우리는 그 고요함이 두려워 도시로 도망치고 늑대 앞에서 떨고 있는 양떼들처럼 정신없이 뒤엉켜 있다.”
2.0 나만의 휴식 공간!
노년의 전원생활은 존재의 시간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노년론>에 따르면, 정년 퇴직이후의 삶은 당연히 ‘소유 중심’에서 ‘존재의 시간’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 놓아야 한다.
물론 적당한 돈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이겠지만 돈을 벌던 젊은 시절은 이미 지나갔기에, 늘그막에 설쳐대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기와 같은 뜬 구름 잡는 것과 같다.
TV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자연인들이 그가 살던 곳을 자화자찬하듯이 필자 또한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지족(知足)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만족하면서 살아 나가야 한다.
거기에다 습생을 잘 유지하면서 순간순간 일어나는 소확행까지 느껴간다면 최상의 생활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철따라 자라는 싱싱한 채소와 감자, 고구마 등 구근 식품을 저장해두면 추운 겨울을 거뜬히 날 수가 있다.
매실을 따서 청을 만들고 매실 장아찌를 반찬하고 철 따라 자라는 채소를 데쳐서 말려두거나 염장을 해두면 그 해의 훌륭한 밑반찬이 되어 준다. 또한 키위와 감을 따서 보관해두거나 곶감으로 남겨두면 산골에서 훌륭한 주전부리가 되어 준다.
전원생활 역시 열정을 가져야 한다. 철 따라 피고 지는 꽃과도 눈 맞춤을 자주 해야 한다. 어떤 가지에는 사랑의 꽃이 과밀 되어 옹기종기 피었을수도 있고 또 다른 가지에는 듬성듬성 몇 개의 꽃들이 피어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꽃으로 그 해의 과실의 양을 척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꽃들이 지고 나면 마술처럼 신기하게 이내 열매로 변해버린다. 꽃과 열매를 솎아 주어 개체 수를 조절해주면 그해의 튼실한 과실로 이어진다.
물론 긴 여름동안 병충해와 병균의 피해를 입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상품으로 팔지 않으면 때깔마저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필자는 자연의 환경에 맡기고 일일이 보살피지 않는다.
한편 고구마와 감자는 땅 속에서 소리 소문 없이 묵묵히 자라난다. 물론 이른 봄 비닐을 씌우기(멀칭) 전에 미리 퇴비를 넣어 뒀기에 중간 중간 손이 갈일은 거의 없다.
스토리가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수월한 것 같지만 이 모든 행위의 중심에는 열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 열정 속에서도 완급의 조절, 특히 느림의 미학이 있어야 한다. 독서든 휴식이든 정적으로 있다가 보면 몸이 찌부등하거나 심심해질 때 밭으로 나가 움직여 주면 된다.
열심히 지은 농사일이 날씨가 좋지 않거나 산골 동물들의 해코지로 별 수확 없이 끝나게 될 때 의욕은 떨어지고 무기력에 빠질 수가 있다.
'농심 반 천심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완벽한 전원생활을 꿈꾸는 것부터가 지나친 기대라고 봐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날씨에 영향을 받고 유해 동물에게도 수확물을 빼앗긴다. 기대감을 절반 정도로 줄여 임하다 보면 결과물에 대한 실망감은 줄어 들고 오히려 만족감을 높일 수 있다.
도시와는 달리 자연속 전원생활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스스로 홈닥터가 되어야 한다. 여러 농기구를 다룰 때나 뱀, 진드기 등 유해 곤충과 멧돼지 등의 유해 동물로부터 안전을 지키는데 유의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산골에 갔다 둔 기타, 트럼펫과 드럼 또한 마찬가지로 열정이고 몰입의 도구이다. 진정한 예술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미래를 꿈꾸는 것이 아니다. 열정의 밀도로 여가 시간을 채우면서 즐기는 도구에 불과하다.
너무 관객을 의식한 표상으로 움직이게 되면 이 또한 주책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글쓰기 역시, 창작과는 사뭇 다르지만, 하나의 열정이다.
키케로가 ‘낮에 무엇을 말하고 듣고 행했는지를 저녁에 되짚어 보라’고 했듯이, 이는 노년의 정신적 건강을 강조한 말들이다. 본인은 물론 가족도 몰라보는 노년에 찾아오는 치매는 무섭다. 그래서 산골은 낮에 적당히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되므로 여기에 책이나 음악을 곁들이면 금상첨화라고 여겨진다.
물고기가 자신을 배처럼 띄워주는 물에서 지느러미로 춤추듯 즐기며 공생하고 있다. 그리고 물은 물고기를 가만두지 않고 부드럽게 애무하듯 몸 전체를 스치면서 들뜨게한다.
장난치고, 움직이게 하고, 서로가 사랑하고, 그래서 물고기는 물을 떠날 수가 없다. 떠나면 생기를 잃고 이내 죽는다. 모든 생명체가 맑은 공기를 안 마시고는 살 수가 없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중요시하는 나 인식의 공간은, 자연 속에서 적당한 노동은 물론 또 다른 공간인 휴식, 독서, 음악, 산책과 사색의 공간이 있고, 꽃과 열매가 있는 자연의 손짓을 외면할 수가 없다. 그들이 나를 편안하게 하기도 하고 철 따라 멋을 부리며 들뜨게 하고 유혹 하기 때문이다.
다만, 물고기에게도 갑자기 내린 폭우와 흑탕물을 피해야 하듯이 인간 또한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일지라도 너무 많은 수확에 욕심을 부려 거친 환경에서 장시간 노출되다 보면 종국에는 연골은 파괴되고 워라 벨이 무너져 불행을 재촉할 것이다.
우리는 평생을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눈을 주시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만을 위한 주인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가져 보지는 못했다.
이곳은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면 되는 곳이다. 먼저 현실과 타협할 욕심을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하다. 필자처럼 13 년 동안 햇수를 거듭할수록 육체적 노쇠와 함께 정신적 노화가 문제시 된다. 적당한 움직임으로 육체적 노쇠를 막고 기억력 감퇴만은 정신적 열정으로 가능한 한 막아야 한다.
먼 예를 들자면, 소크라테스가 말년에 칠현금을 뜯었고 니체, 공자 역시 음악에 심취했었다. 논어 편을 보면, 공자는 끼니를 거를 정도로 음악에 푹 빠졌었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 카토 역시 그리스 문학을 열심히 배우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의 예로 들 수 있다. 가까운 예로는, 니어링 부부, 루소,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와 그의 스승인 에머슨의 예를 보면서 우리의 좌표를 설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선인들의 예를 거울로 삼아, 열정을 다하고 거기에다 행운까지 따라준다면, 그들처럼 노년까지 명료함을 유지하여 즐거운 생활로 이어질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노년에는 편안히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노동으로든 돈으로든 먹는 데 불편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지 않고 명료한 존재의식을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방해받지 않는 자기에 맞는 그런 공간부터 확보해야 할 것이다.
나 홀로 자연에서 처음 시작할 때는 누구나 그곳의 나무나 하우스 빼대로만 임시 거처를 지어 출발한다. 일정 시간을 보내면서 집의 구조와 그곳 환경에 맞는 오두막을 구상하게 된다. 그 기간 만큼 기다린 시간은 자연에서 적응력을 키우는 강인한 단련의 시간이다.
필자는 퇴직 전 10여 년 전에 토지를 구입하여 주말농사를 위한 임시거처를 마련했고, 그렇게 다시 근 10년이 지나고 퇴직을 막 앞둔 석달 동안 이런 오두막을 지은 것이다.
이는 마치 도자기의 재벌구이에 앞서 초벌구이를 하는 과정과 같다. 섣불리 거금을 들여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일을 크게 벌려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더운 여름 밤과 추운 겨울을 몇번 불편하게 넘기는 것은 자연에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집까지 튼튼히 짓는 과정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나만의 철학이 있는 전원생활'필자의 책 일부 중에서 발췌>




















'취미2 > 중산 담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산골에서의 웰에이징은? (20) | 2026.06.17 |
|---|---|
| 전원생활의 일상, 무료함 그리고 술! (11) | 2026.06.08 |
| 내 영혼의 쉼터! (13) | 2026.05.27 |
| 산골 삶 속에서의 디테일/ 팔불출의 변! (3) | 2026.05.15 |
| 고향친구 모임(4) (7) | 2026.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