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2/중산 담론

전원생활의 일상, 무료함 그리고 술!

[중산] 2026. 6. 8. 09:19

3.0 전원생활의 일상, 무료함 그리고 술!

 

알코올에 빠진 추한 모습은 곁에서 보는 가족도 힘들고 주변 모든 지인들이 싫어한다. 실언과 실수를 반복하게 되고 종국에는 건강까지 망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원생활은 너무 바빠서도 안 되고 무료하거나 외로워서도 안 된다. 말 그대로 몰입의 툴(도구)을 적절히 잘 활용하면서 조화로운 삶으로 꾸며나가야 한다.

 

환경 특성상 한가할 틈은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바쁘게 되면 육체적으로 무리하게 된다. 따라서 자신을 창의적인 사고로 움직이지 않으면 자칫 이들이 늪에 빠져들 수가 있다.

 

전원생활과 상관없이 노년에는 무료함과 외로움이 쉽게 찾아들 수 있다. 이럴 때 역시 침묵의 친구가 손을 내민다. 알코올이다. 이 친구와 친하게 지내다 보면 알코올성 치매는 물론 죽을 때까지 함께 해야 할 중독의 늪에 빠지게 된다.

 

산골 농원에는 으레 담금주 몇 병 정도는 놓여 있다. 철따라 귀한 과실이나 약재가 생기면 이를 놓치지 않고 담가 두어 두고 두고 마시기 위해서다.

 

TV프로그램 자연인에 나오는 출연자들의 산골 창고에는 갖가지 발효액과 담금술로 가득 차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아는 지인들에게 나눠 준다는 말들을 하지만 결국은 본인이 많이 마실 수밖에 없다.

 

전원생활 초기에는 필자도 갖가지 산야초에다 오디, 매실, 오미자, 보리수 등에 설탕을 넣어 해마다 담그기 시작했다. 햇수를 거듭할수록 쌓여가고 생각보다 안 먹어지게 되었다.

 

발효액을 자주 먹다보면 필요이상 당질을 섭취하게 되어 당 수치를 높이게 된다. 따라서 요리나 차로 마실 때 외는 그렇게 많은 양이 필요치 않다.

 

담금술 역시 한 번에 적정량보다 많은 양을 들이키게 되고 결국 중독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중단해야겠다고 결심한 어느 해 이후로는 술을 일체 담그지 않기로 하였다.

 

가까운 지인들이 어느 날 산골에 들렸기에, 백숙과 말벌 담은 술(일명 봉술)을 내어 놓고 각자 한두 잔만 권했는데, 애주가 한분이 몸에 좋다는 말에 혼자서 거의 반병 이상을 마시고 떠났다.

 

며칠 뒤 연락이 왔는데 그날 마신 술로 몇 시간 동안 혼절했고 밤새도록 고생했다는 것이다. 말벌 독이 술과 중화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많이 독했을 것이다. 그 이후로는 토종벌을 공격하러 오는 말벌을 잡아 봉술을 담그지 않았다.

 

막연히 알고 있는 담금술은 검증되지도 않았고 자칫 맹신하다간 본인 건강은 물론 타인들 건강마저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주는 무료함, 긴장감과 노동 강도에 어느 정도 연관이 있고 습관적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농원 초기 시절 밭일로 땀을 많이 흘리고 나면 냉장고에 냉장된 시원한 막걸리를 꺼내 마시는 재미가 쏠쏠했다. 갈증이 나면 신기하게도 물보다 막걸리가 머릿속에서 먼저 떠올랐다. 뇌가 보내는 신호였다.

 

이미 중독으로 가는 단계였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시원한 산골바람을 쐬면서 한잔 후 정자에 드러누워 낮잠 청하는 것을 하나의 소확행으로 여긴 것 같다.

 

이러다 막걸리 중독에 빠지겠다 싶어 쉬는 중간에 물부터 마시면서 갈증을 해소해 나갔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차분한 상태로 휴식을 취하면서 막걸리대신 산야초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술을 늘 가까이하는 사람은 건강을 해쳐서 병원 치료를 위해 조기 하산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가까운 시골 친구는 몇 년 전부터 금주병원에서 입원해 있다.

 

매월 130만원 정도 병원치료 겸 요양비를 지급하고 퇴원을 아직 하지 못하고 있다. 퇴원 후 다시 술을 마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가족들의 반대가 거세기 때문이다.

 

이미 간은 회복 불능의 상태이고 염증 수치도 높고 뇌 또한 온전하지 못하여 뇌전증이 가끔 생겨서 긴급히 입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 번 술을 마시게 되면 더는 손을 쓸 수가 없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젊었을 때는 금주 6단계를 통과하여 사회생활을 적응할 수 있지만 나이 들어 농익은 중독자에게는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처음 판정 받은 상태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려시대 때는 숭불정책으로 불교문화가 전파되면서 차 문화가 자연스레 성행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중기 이후로 차문화가 여전히 귀족들 사이에 즐겼다지만, 성리학과 유교문화가 번창하면서 부터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모임이나 관혼상제 등에는 반드시 술이 올라왔다.

 

관대한 음주문화가 오늘날까지 자연스레 흘러들어 온 것 같다. 한 번 혼미한 정신을 초기화하거나 자극을 주기위해 극소량일지라도 1급 발암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를 아무렇지 않게 음료수를 마시듯 한다.

 

문학에서도 이 무서운 알코올과 마약에 대해 날카롭게 해부한 작가가 있어 소개해보고자 한다. 작가 본인이 창작활동에 몰입하면서 강한 압박감에 못 이겨 알코올에 완전히 중독된 사례이다.

 

필자의 나이보다 몇 살 더한 미국의 스티브 킹 작가는 알코올 중독에서 못 헤어나고 힘들었던 것을 그의 책에서 소상히 밝히고 있다. 그는 50여권의 책을 출판한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로커스상, 휴고상, 브램스토커상 등을 유수의 장르 소설 상을 석권하기도 했다. 그의 소설 <쿠조>를 쓸 때는 하루 밤에 맥주 한 박스를 해치웠다고 한다.

 

그는 <미저리>라는 소설을 무려 11년간 쓰면서 과도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었고 이 재활 과정에서 자신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다는 간호사를 떠올리며 이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로 마약과 알코올을 은유로 표현하면서 소설을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토미노커스>라는 소설을 쓰면서 술에 대해 더욱 각성을 하기 시작했다고 술회한다. “사람들은 에너지 일종의 피상적 지능을 갖게 된다(정신적 감응으로 작동하는 타자기, 원자력을 이용한 온수 난방기를 만들어 낸다). 그 대신 영혼을 잃어버린다.”

 

다시 풀어서 말하자면, 오늘날 AI를 이용한 산업과 일상 활동, 모바일 폰을 통한 정보교류, 타자기(오늘날 컴퓨터) 앞에서의 창작활동 등의 문명의 이기에 일상을 송두리째 뺏기면서 순수한 영혼을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과도한 창작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지쳐버린 그는 재활 치료를 받아 가정을 지키느냐, 글쓰기를 그만 두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린 것이다.

 

창의적 활동, 정신을 좀 먹는 물질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합리화하는 이런 통념을 퍼트린 장본인으로, 그는 20세기 유명한 작가 헤밍웨이를 비롯한 4명(피츠제럴드, 셔우드 앤더슨, 시인 딜런 토머스)을 지목했다.

 

“나는 작가다. 그러므로 감수성이 대단히 예민하다. 그러나 남자이기도 하다. 진정한 남자라면 감수성 따위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짓은 계집애 같은 놈들에게나 어울린다. 그래서 술을 마신다. 술마저 없다면 이 실존적인 고통의 세계에서 어찌 살아 있으랴? 그리고 나는 술을 얼마든지 다스릴 수 있다. 진짜 남자라면 술 따위는 문제도 아니다.”

 

헤밍웨이가 직접 말한 것을 작가 스티브 킹이 유추해서 부연 설명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작가가 전하고 싶은 의도와 진실은, 많은 술꾼들이 창작 업무든 일상적인 일이든 헤밍웨이처럼 그럴듯한 술먹을 핑계를 댄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행위들은 술을 마시기 위한 핑계라면서 터무니없는 통념이라고 반박한다. 그는 결국 같은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로서 헤밍웨이의 전철을 밟지 않고 어렵게 술을 끊고 힘든 과정을 극복해냈다.

 

그 밖에도 음주 문화도 꼬집었다. ‘마저 마셔! 왜 빨리 안마시고 꿈지럭 거려?’ 과거 서양의 음주문화도 우리네 처럼 비슷했던 것 같다.

 

이 대목에서 작가 대신 자연인만 대입하면 그럴듯한 핑계거리(꺼리)가 될 수 있다. 자연인 역시 힘들고 외로우면 술을 마실 수 있고, 술을 이길 수 있고, 유유자적 즐길 수 있다고 큰소리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경험해봤을 때는 자칫 잘못 판단하면 술을 가까이 하기 가장 좋은 환경이 산골 속이다. 적적해서 한잔, 텃밭일로 힘들어서 한잔, 수확의 보람으로서 한잔, 제지할 사람마저 없는 곳이기에 편안히 허리띠 풀고 마음껏 들이킬 수 있는 곳이다.

 

이 태백 시인이 달이 져 다음 날이 밝아오는 걸 못내 아쉬워하며 밤새도록 퍼마시듯이 말이다. 오늘 날 보면 그의 시는 아름답지만 완전한 술 중독자임에는 분명하다.

 

스티브 킹 역시 하룻밤에 맥주 한 박스 퍼마시면서 쓴 작품<쿠조>는 지나고 보니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음주 시인 이백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그는 책 속에서, 비교적 쉰세 살 젊은 나이 인데도 숙취 따위는 없다지만, 시력이 안 좋고 한쪽 다리가 불편 하여 절뚝거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그것이 술의 후유증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뒤늦게나마 재활치료를 받아가며 술을 끊고 가정을 지키면서 작품을 쓰고 정상적인 일상생활의 궤도에 올라섰다는 게 놀랍다.

 

그리고 그는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라고 말한다. 유명한 소설가이지만 오히려 실존주의 철학자 같은 면모를 느끼게 한다.

 

젊었을 때는 술과 기름진 바비큐 고기가 있어서 산골이 더욱 낭만적으로 와 닿았다. 계속 이런 적극적 쾌락의 시간을 가졌더라면 어느덧 필자도 중독의 덫에 걸려들어 병원신세나 요양원에 갇혀 있었을 수도 있다.

 

필자는 담낭을 제거한 이후로는 그런 쾌락마저도 부담스럽고, 잠시 혀끝으로 즐기고 나면 긴 시간 동안 괴로움을 당한다. 소화력이 따라주지 못해 식중독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혀끝을 자극하는 그 반가운 음식도 어쩔 수 없이 멀리하고 내쳐야 한다.

 

이제는 나 또한 노년이 서서히 무르익어가는 걸 느끼기에, 술을 아예 멀리하고 명료함을 끝까지 유지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하고 싶다. 그래서 커피보다는 산야초와 녹차를, 기름진 밥상보다는 산골의 소박한 음식을 가까이 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이나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사색을 즐기고 있다. 무료함과 외로움이 범접을 못하게 몰입의 도구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이는 무기력이라는 포로수용소에 갇히지 않기 위한 불가피하면서도 지혜로운 대처 방법들이다.

 

장애요인이 되는 이들이 발붙이기 전에 적당한 육체적 노동과 휴식, 음악 그리고 독서 등으로 그 틈새를 촘촘히 메워가고 있다. 타인들이 보기에는 따분하고 외로울 듯한 산골 생활이, 필자에게는  어느덧 그저 뿌듯한 노년의 일상으로 자리 잡아 나가고 있는 것 같다!   - <'나만의 철학이 있는 전원생활'> 필자의 책 일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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