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하면 1달러가 연상된다고 하더니 실제 그런 것 같다. 한때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운 거대한 유적지를 둘러보다 최빈국으로 빠진 현재의 모습, 특히 수상가옥등 을 둘러본 후 만감이 교차하게 되었다. 참고로 앙코르는 "거대한" 뜻이고, 와트는 "사원"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앙코르와트 (Angkor Wat)
고대 캄보디아왕국(앙코르왕조, 9세기∼1432)의 왕도(王都)에 있던 사원. 앙코르 바트(Angkor Vat)라고도 한다. 캄보디아 북서부 시엠레아프시 근교에 있다. 앙코르와트란 크메르어로 <사원(에 의해 세워진)도시>라는 뜻이다. 수르야바르만 2세의 통치 아래 1113년 무렵부터 약 30년에 걸쳐서 건립된 사원이다. 이 사원은 해자(垓字)의 길이가 5.4㎞, 나비가 190m, 사원의 서쪽 진입로가 540m이고, 3중회랑, 본전의 높이가 65m나 되는 중앙사당을 중심으로 둘러싼 5기(基)의 탑당(塔堂)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원의 규모가 매우 크고, 크메르건축의 정연한 기하학적 평면과 탑당이 입체적으로 배치되어 조화와 원숙미를 보여주는 웅대한 가람이다. 서쪽 진입로에는 포석이 깔려 있고 양쪽에 나가(큰 뱀)의 난간이 있으며 진입로의 좌우에 경장(經藏)과 성지(聖池)가 있다. 동쪽 진입로는 흙으로 쌓은 성채 그대로 남아 있고 남북 진입로 자취도 남아 있다. 사원건립의 사상적 배경은 크메르적 신의 세계(우주관)를 지상에 구현한 것이다. 5기의 탑당이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須彌山, 메루산)을, 주위의 벽이 히말라야의 영봉을 모방하였고, 해자는 깊고 무한한 대양을 상징한 것이다. 부조의 화면은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 취재한 대전쟁그림(서면 남측), 크리슈나가 폭풍우에서 목자와 가축을 지키는 장면(南西隅塔), 수르야바르만 2세의 위업을 칭송한 역사이야기(남면 서측), 천국과 지옥의 장면과 죽음과 재판을 다루는 신 염마천(閻魔天, 남면 동측), 천지창조에 관한 유해교반(乳海攪拌)의 그림(동면 남측), 가루다(독수리신)의 어깨에 타고 적을 공격하는 비슈누신(동면 북측), 크리슈나와 괴물 바나의 전투(북면 동측), 라마야나에서 채화(採話)한 라마군과 악마 라바나군의 치열한 전투장면(서면 북측) 등이 볼 만하다.
이 회랑부조는 구도·묘사·도상 등에서 솜씨의 차이는 있지만 약동적인 묘사와 파도치는 표현으로 서면과 남면의 회랑이 미술적으로 특히 우수하다. 먼 곳을 화면 상부에 겹치는 방법을 썼고, 2중·3중으로 그려서 입체감을 주는 기법 등으로 수㎞에 달하는 회랑의 벽에 조금의 빈틈도 없이 새겼으며 전체적으로 웅장·절묘하다.
3층으로 쌓은 흙 위에 제1회랑이 세워져 있고 십자형 중회랑(프리아 포앙;千體佛)의 계단을 올라가면 약간 높아진 제2회랑이 나타난다. 안뜰을 빠져나가면 급경사의 큰 계단이 나오는데 높이 솟은 5기의 탑당과 제3회랑으로 연결된다. 앙코르와트의 조영에 이르기까지는 약 10차례에 걸친 건축양식의 변천이 있었는데, 건축기술의 개량과 경험을 축적하여 미술양식이 발전하면서 이 대가람을 건축하기에 이르렀다. 이 건물벽의 공간을 메운 아름다운 모습의 네바타(여신)상 및 문미·합각(合閣) 등의 아름다운 조각, 줄지어 늘어선 기둥과 네모기둥에 새긴 정교한 장식무늬, 원주창(圓柱窓)과 포탄형(砲彈形)의 탑당 등 독창적인 조형과 뛰어난 미술적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방대한 석재(회색사암)는 북동쪽 약 40㎞ 떨어진 푸논쿠렌구릉의 채석장에서 채취하였다. 이 사원의 건축에는 수십만 명의 인부와 포로가 동원되었고, 또한 수천 명의 석공과 불사(佛師)·대경사(大經師) 등 기능인들이 동원되었다. 1432년 앙코르왕도가 다른 곳으로 천도된 뒤 상좌부(上座部;소승)불교의 사원이 되었고 중앙사당에는 5m 크기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앙코르와트는 1908년부터 프랑스의 극동학원에 의해 보수가 시작되었으나 1971년부터의 내전으로 중지되었으며, 이 내전으로 회랑벽에 탄흔이 생겼고 일부가 파괴되었다. 앙코르와트는 앙코르유적 가운데에서 백미를 이루는 사원이다.
1.5Km-1.3Km의 인공호수를 둘레로 연꽃이 피어 있다!
앙코르와트는 1119-1150년 사이에 쇼바만 2세에 의해 30년간 걸쳐 지은 850m-1,050m의 크기를 가진 인류최대의 사원입니다. 절로 감탄사를 연발시키는 1.5Km-1.3Km의 인공호수를 둘레로 사방 약 1Km에 걸쳐 축조된 인류 최대의 석조 건물로 앙코르 와트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1998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 유산 지정을 받아 보존하기 위한 원조를 받고 있습니다.
탑들의 모양은 연꽃을 본 따서 만들었다. 모든 건물들은 동서를 축으로 정확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약 100만명의 인구가 살았던 크메르왕국의 수도 앙코르 톰에 있는 세계 최대의 석조건물로 이집트의 피라밋, 중국의 만리장성 버금가는 건축물입니다. 앙코르 와트가 세계에 알려진 것은 1980년 프랑스 탐험가 앙리 모어가 밀림속의 유적을 발견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서쪽 진입로에는 포석이 깔려 있고 양쪽에 나가(큰 뱀)의 난간이 있으며 진입로의 좌우에 경장(經藏)과 성지(聖池)가 있다.
가장 아름다운 고대 건축물 앙코르 와트는 수많은 탑이 모여 210m 높이를 이루고 있는데 크게 3개 층로 나뉜다. 1층은 미물계, 2층은 인간계, 3층은 천상계를 상징하는데, 천상계에는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을 상징하는 중앙탑을 기점으로 4개의 탑이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 건물벽의 공간을 메운 아름다운 모습의 네바타(여신)상 및 문미·합각(合閣) 등의 아름다운 조각, 줄지어 늘어선 기둥과 네모기둥에 새긴 정교한 장식무늬, 원주창(圓柱窓)과 포탄형(砲彈形)의 탑당 등 독창적인 조형과 뛰어난 미술적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라마야나에서 채화(採話)한 라마군과 악마 라바나군의 치열한 전투장면인지 잘 모르겠다!
불교의 나라인 이곳에 연꽃봉우리가 아름답게 솟구쳐 있다! 호텔 정원에서 찰칵!!
반데이스레이 사원의 고푸라 문 고프라(gopura)는 인도 건축에서 힌두교 사원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말하는데 유적지의 사원들과는 달리 건축술과 장식이 인도문화에 매우 가깝다고 합니다.
가장 오래된 앙코르 초기 유적군인 반데이 스레이 사원이다. 건축양식이 아담하며 조각이 아주 섬세하다.
각 사당 입구에는 짐승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가진 석상이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있습니다.
상인방(上引枋)의 문양들
반데이는 성채, 스레이는 여인 즉 '여인들의 성채'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사원은 분홍빛 사암과 붉은 라테라이트석을 사용하여
사원 전체가 아름다운 여성적 분위기의 부조로 장식되어져 있어 그런 이름이 지어진 듯 합니다. 사원은 인도 건축양식을 상당 부분 혼합했으며
규모는 작지만 정교한 장식과 조각품이 가장 아름다운 사원입니다
사원을 둘러싼 성벽, 해자, 사원을 오가던 다리, 번성기에는 3천여명의 승려가 기거했다는 사원들이 천여년 동안 버림받아 흔적만이 아련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뱀처럼파고드는 기묘한 스퐁나무뿌리!!
성스럽고 웅장한 사원들과 석각들을 거대하고 엄청난 케이폭(Kapok) 나무뿌리가 사이를 비집어 가르거나 통째로 휘감은 끔찍한 모습들!
Taprohm 사원은 1186년 Jayavarman(자야바르만)7세가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세운 불교사원이다.
그리고 뱀처럼파고드는 기묘한 스퐁나무뿌리!!
Spoan(스퐁)나무가 탑신에서 거대한 고목으로 자라면서 뿌리가 탑을 칭칭 감고, 틈새를 벌리고, 조이고, 지표에서는 들어 올려 성한 곳 없이 기울고, 일그러지고, 벌어지고, 파괴되어 아름다웠던 조각상과 불탑들의 돌멩이 잔해만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코끼리테라스, 앙코르 톰의 중앙 사원인 바이욘 사원을 둘러보기 위해 잠시 휴식 중인 2인용 트럭 오토바이!
★코끼리테라스★
* 왕의 공공행사나 군인들의 사열을 관장하던 곳이다.
* 동쪽 광장을 향하고 있는 단상은 3개인데 양 옆은 코끼리들이 부조되어 있고 중앙쪽의 단상은 가루다가 받치고 있다. 중앙의 것은 왕이, 양옆의 것은 신하들이 사용
하던 것 같다
* 단상 위에는 나무로 된 정자가 있었는데 지금은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이 곳에 올라 서면 아래 중앙광장에서 장대한 병사들의 분열과 코끼리 퍼레이드 등이 금방이라도 펼쳐질 것 같고 당대 세계 최고의 권력을 가진 왕의 위용을 가늠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광장 앞쪽 끝에는 12개의 탑(12 Prasate Sour Prat)이 열병하듯이 서 있어 위용을 더하고 있는데 파수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들 위에는 끄레응(The Kleangs)이라는 건물들이 있는데 이는 ‘창고’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건물의 용도는 외국에서 온 사실들을 접대하는 곳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앙코르 톰의 중앙 사원인 바이욘 사원!
앙코르 톰의 중앙 사원인 바이욘은 크메르왕조가 붕괴되기 직전인 1,200년 자야 바르만 7세에 의해 세워진 앙코르 사원 중 최후의 사원이다
생선, 개구리 등을 불위에 올려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
맛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신기하게 보인다. 오른쪽이 개구리 구이꼬지!
왼쪽은 물방개 튀김이고 오른쪽은 매미튀김이라는데 무지 크다!
두리안 열매와 선인장 열매
열대과일 맛보는 재미도 빼 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다!
4월의 날씨가 거의 38도 정도가 되니 호수에 수영을 위해 모인 피서객들! 유명한 곳이라고 하지만 파라솔과 주변을 보면 우리6,70년대를 연상케 한다.
호수 피서객들과 관광객들을 위해 꾸며 놓은 상점들! 스카프 등 일부 품목들은 공항 면세점보다는 싸다고 한다!
현지주민 사는 곳을 둘러보고 과일도 먹으며 우리일행과 함께 찰칵!
통풍을 고려해 지은 2층 집 같다, 내부에는 TV와 공부방 그리고 안방이 있었다.
더워서 그런지 해먹에서 주로 쉬며 누워자곤 한다. 주인장 손자가 시끄러워 잠시 눈을 뜬 후 이내 잠을 청한다. 튼실하고 잘생겼다!
닭을 의외로 많이 키운다. 말랐지만 맛이 괜찮다고 한다.
동양 최대의 담수호인 똔레삽 호수를 가기위해 탄 배이다. 강에 물이 빠져 교행하기가 더욱 힘들었다.
산이 드문 이 지역에서 그나마 산다운 산으로 모처럼 만난 구릉같은 산이다. 그 앞에 너른 호수가 펼쳐진다. 바로 똔레삽 호수다. 동양 최대의 담수호답게 그 면적이 엄청나다. 앙코르 제국은 이 똔레삽 호수란 수원지를 배경으로 번성했다. 수상가옥은 이 캄보디아의 상징같은 호수 중간에 있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꼬마들의 표정이 무척 밝다! 배에 그물이 실려있어 생계형 어부가족 같다.
모든 생활을 물위에서하는 그들이기에 물위 나무집에서 돼지도 키우고 텔레비젼도 보고 수상가옥 수퍼마켙, 공장, 경찰서, 학교 등등 모든 것이 있다고 한다.
현재 빨래 중인 것 같다. 흰옷을 어떻게 헹구는지 궁금하다!
우리를 수상가옥으로 데려가 줄 보트! 그리고 똘빵지게 생긴 미래의 선장이 노로 항로를 조정하고 있다. 배로 2,30여분 가다보면 넓은 똔레삽 호수가 눈 앞에
펼쳐진다
동양최대의 호수라는 톤레삽으로 가는 동안 캄보디아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았다. 열대 지방사람들이기에 적절한 높이로 기둥을 사방에 올려대고 집을 지었다. 모든 식구가 그 곳에서 함께 지낸다고 했다.
톤레삽호수 중앙으로 나갔을때 그곳은 바다와 같았다. 그만큼 넓었다. 이 호수에는 물고기가 엄청 많아서 캄보디아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을 상당히 도와 주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캄보디아 톤레삽 호수의 수상가옥
킬링필드는 1975년에서 1979년 사이, 민주 캄푸차시기에 캄보디아의 군벌 샐로스 사르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라는 무장단체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을 말한다. 크메르 루즈는 3년 7개월간 전체 인구 700만 명 중 1/3에 해당하는 200만 명에 가까운 국민들을 학살했다. 사진은 쌓아둔 한 많은 유골들...
호텔 정원에서 아름다운 꽃들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캄보디아만큼 기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가 세계 어느 곳에 또 있을까? 지난 천 년의 역사를 되돌아 보라. 첫 5백 년의 영광과 뒤 5백 년의 치욕이 어떻게 그렇게도 극명한 콘트라스트로 나타날 수가 있단 말인가? 유럽이 중세 암흑기 속에 깊이 잠들어 있던 사이, 캄보디아 땅의 주인 크메르(Khmer)인들은 동남아 최고의 앙코르(Angkor) 문명을 건설했고, 반면 유럽 국가들이 모두 신대륙의 ‘발견’, 산업혁명, 근대화를 향해 대오를 지어 행진하는 사이 크메르인들은 외세에 굴종하고 동족이 상전하여 20세기 들어 최빈국으로 전락하고 인류사적 참극을 빚어 내었던 것이다.
여하튼 캄보디아의 과거는 비록 그 기록이 희소하다 할지라도 동남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중의 하나로서 존재하며, 또 그 역사는 가장 영광스런 역사이기도 하다. 물론 글로 쓰여져 남겨진 역사는 베트남에 따를 수 없으나, 적어도 10세기 초반까지 베트남의 역사는 동남아보다는 중국에서 경쟁하던 국가(왕조)들의 관계망 즉 “국가체계”(states system; 또는 국가간체계)나 지역질서에 더 속했다고 볼 수 있다.
1431년 아유타야(Ayuthaya) 왕국의 타이인들은 앙코르를 점령하여 약탈하였다. 이때부터 크메르인들은 앙코르 지역을 버리고 프놈펜 주변으로 옮겨가게 되는데, 이 시점은 위대한 앙코르 제국과 크메르 문화의 몰락의 시작이 되었다.
크메르왕국은 15-16세기 동안 태국의 아유타야, 라오스의 란상(Lan Xang), 베트남의 레왕조 등과 그런대로 힘의 균형을 이루다가, 1593년 아유타야 군대에 의한 프놈펜의 함락으로 위대하고 영광스런 크메르인의 시대는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만다. 이후 UN감시에 의한 자유선거로 평화가 다시 깃들게 되는 1993년까지 정확하게 500년 동안의 캄보디아 역사는 끊이지 않았던 외세의 간섭, 침략, 지배와 내부 정치세력간의 갈등, 내전, 학살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히고 갈갈이 찢긴 치욕과 야만의 역사의 표본이 되고 말았다. 그 긴 역사의 질곡을 벗어난 오늘, 크메르인들은 치유하기 힘든 상처와 지울 수 없는 기억을 간직한 채 여전히 되찾지 못한 풍요와 자유를 고대하며 제3세계 최빈국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여행후기>,
자연경관이 뛰어나거나 문화가 앞서고 명품이 즐비한 선진국 여행도 좋지만 어려운 나라에 갔다 오니 마음의 선물을 많이 담아온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여행정보를 알았다면 입던 옷이라도 많이 가져 갈 걸... 1달러 수십 장 바꿔서 손 내민 아이들 보다 구석진 곳에 축 처진 아이들에게 한 장 씩이라도 주었더라면... 다녀온 후 TV에서 연예인 최지수가 캄보디아에서 베푸는 영양제, 옷 등을 나눠주는 장면을 보니 마음이 더욱 울컥 해진다!
'취미1 > 해외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경 (0) | 2012.08.20 |
---|---|
장가계,원가계, 천문산 여행! (0) | 2011.05.13 |
베트남(하롱베이,하노이) 관광! (0) | 2010.04.06 |
유럽과 북경 (0) | 2009.06.22 |
유럽경치 몇장 (0) | 2009.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