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하여
사랑에는 네 종류가 있다. 첫 번째가 ‘정열적인 사랑’이다. 샤밀리 백작에게 보낸 연애편지로 유명한 포르투갈 마리안나 수녀의 사랑, 스콜라 학파 최고의 철학자였던 아벨라르를 연모한 제자 엘로이즈의 사랑,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연인과 함께 음독을 선택한 첸토 헌병의 사랑처럼 간절하고 격정적인 사랑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이 사랑에는 사회적 신분이나 세상 사람들의 이목, 단 하나뿐인 목숨마저 하찮게 여기는 마법이 있다. 우리가 흔히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사랑이다.
두 번째 사랑은 ‘취미적인 사랑’이다. 1760년 경 파리에서 지배적이었던 사랑으로서, 당시의 회상록이나 소설, 예를 들어 크레뷔용, 로잔, 뒤크로, 마르몽텔, 샹폴, 데피네 부인 등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사랑은 장밋빛으로 물든 한 폭의 그림이다. 취미적인 사랑에 능숙한 남자들은 어느 단계에서 어떤 행동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언제쯤 어떤 일을 겪게 될지 훤히 알고 있다. 이들에게 사랑이란 잘 짜여진 각본 위에서 벌어지는 계획된 연극인지라 뜻밖의 일이 일어나는 법이 없다. 그림으로 치자면, 예쁘긴 하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힘은 없는 세밀화 같은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정열적인 사랑에 사로잡혀 혼돈스러운 경우에 비해 한결 섬세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정열적인 사랑이 온갖 이해관계를 초월하게 하는 데 반하여, 취미적인 사랑은 항상 그것들과 타협할 수 있다. 이 빈약한 사랑에서 허영심을 제외하면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일단 허영심을 빼앗기면 이 사랑은 겨우 혼자서 걸을 수 있는 회복기의 환자와 다름이 없다.
세 번째는 ‘육체적인 사랑’이다. 사냥하러 가서 숲 속으로 도망치는 아름답고 싱싱한 시골 처녀를 발견했다고 생각해보자.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드리워진 이마에서는 작은 땀방울이 빛나고 있고 차가운 산 공기에 자극된 뺨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다. 소박한 드레스 위로 봉긋이 솟아오른 가슴은 잔뜩 고조된 숨결 때문에 들썩이고 있다. 그 순박한 처녀는 거칠 것 없는 건강과 활기를 내뿜으며 거부할 수 없는 쾌락을 속삭인다. 아무리 무미건조한 성격의 불행한 남자라도 16세쯤 되면 가슴속에서 이런 사랑이 샘솟아 오르게 마련이다.
네 번째는 ‘허영적인 사랑’이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이라면 사치를 위해 좋은 말(馬) 한 마리를 갖고 싶어한다. 바로 그런 기분으로 사교계의 인기 있는 여자를 손에 넣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 사랑은 상대방에게 배반을 당하는 경우에는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우울해서 죽고 싶어진다. 자신에게 매우 소중한 허영심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때때로 이 사랑에 육체적인 사랑이 동반되기도 하는데, 육체적 쾌락이 커지면 이 사랑도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추억이 쌓이다보면 이런 관계 역시 진정한 사랑으로 조금씩 발전해가게 된다.
이처럼 사랑을 네 가지 종류로 구분하는 대신에, 여덟 개 내지 열 개 정도로 구별할 수도 있다. 아마도 인간에게는 각자의 견해처럼 사랑을 느끼는 방법도 가지각색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상의 구별은 다음과 같은 추론을 조금도 변경시키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똑같은 법칙에 의해 생기고, 자라고, 죽거나 혹은 불멸에까지 승화된다.
사랑의 발생에 대하여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끼려면 마음 속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첫 번째 단계는 상대방의 매력에 감탄이 터진다. 두 번째 단계는 ‘저 사람하고 키스하면 얼마나 좋을까! 저 사람이 갑자기 내게 키스를 해 온다면…’ 하고 상상에 빠진다. 세 번째 단계는 희망이다. 마음은 저도 모르게 상대방이 얼마나 완벽하고 멋진 사람인지 살펴본다. 육체적 쾌락을 느끼기 위해 여자가 몸을 던져야 하는 것도 바로 이 순간이다. 아무리 정숙한 여자라도 희망을 품는 순간에는 눈이 번뜩인다. 네 번째 단계는 사랑의 탄생이다.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자기가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해주는 이를, 되도록 가까이서 모든 감각을 통하여 보고 만지고 느끼는 데서 얻는 기쁨을 가지는 것이다.
다섯 번째 단계에서는 제1의 ‘결정 작용(結晶作用, cristallisation)’이 생긴다. 이는 자신의 연애 상대를 극도로 미화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가 줄곧 생각난다면 당신은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겨울이 되어 잘츠부르크의 소금 광산 깊은 곳에 잎이 떨어진 나뭇가지를 던져 넣어두고 서너 달쯤 뒤에 꺼내보면 나뭇가지가 온통 반짝이는 소금 결정들로 뒤덮여 아름답게 빛난다. 소금 결정이 원래의 평범한 나뭇가지를 가려 다이아몬드 가지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내가 결정 작용이라 부르는 것은 눈앞에 상대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건, 어떤 행동을 하건 상대를 아름답게 미화해서 보려는 정신적 작용을 가리킨다.
여섯 번째 단계는 의혹의 발생이다. 남자가 사랑에 대해 너무 자신감을 보이면 상대는 무관심이나 냉담함, 혹은 노여움으로 거기에 응수한다. 예컨대 프랑스에서라면 ‘꽤나 자신만만하시군요’ 하고 비꼬는 것이다. 여자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신중한 성격이거나, 변덕이 심하거나, 문득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혹시 자기가 경솔하게 행동한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는 이때부터 굳게 믿었던 행복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왜 그토록 희망에 젖어 그녀의 사랑을 확신했는지, 그 이유를 엄밀하게 따지고 들어간다. 마음을 정리하기로 결심한 그는 이제 시선을 돌려 인생의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즐거움도 느낄 수가 없다. 바로 그렇게 사랑이 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의심이 엄습하면서 처음의 집중력이 되살아난다.
이때 ‘그녀도 나를 사랑한다’는 생각이 다이아몬드처럼 확고해지는 새로운 결정 작용이 시작된다. 이것이 일곱 번째 단계인 제2의 결정 작용이다. 의심에 사로잡혀 고통 속에서 보낸 끔찍한 밤이 지나가면, 사랑을 하는 남자는 15분마다 중얼거린다. ‘그녀는 역시 나를 사랑하고 있다.’ 그리하여 결정 작용은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또다시 매서운 눈초리를 한 의혹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갑자기 그를 멈춰서게 한다. 그는 숨이 막힐 것 같다. 그는 중얼거린다. ‘그런데 그녀는 정말 나를 사랑하고 있을까?’ 이처럼 비통한 심정과 감미로운 심정에 교대로 사로잡히면서 가련한 애인은 분명히 느낀다. ‘그녀가 아니면 안 돼!’ 이것이 바로 사랑의 진리다. 한 손에는 완벽한 행복을 거머쥐고 있지만 다른 한 손은 깎아지른 낭떠러지 끝에 걸려 있는 길을 더듬으며 위태롭게 전진해 가는 것, 제1의 결정 작용보다 제2의 결정 작용이 훨씬 더 강력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남자는 이제 세 가지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첫째, 그녀는 모든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둘째,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 셋째, 그녀로부터 사랑의 가장 큰 증거를 손에 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경우에 따라서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추측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이다. 그러면 결정 작용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
사랑의 행보
사랑의 일곱 단계가 진행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검토해 보자.
첫째, 상대방의 이성을 보고 감탄한다. 둘째, 키스하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상상에 빠진다. 셋째, 희망을 갖는다. 넷째, 사랑이 탄생한다. 다섯째, 제1의 결정 작용이 생긴다. 여섯째, 의혹이 생긴다. 일곱째, 제2의 결정 작용이 생긴다.
첫 번째 단계에서 두 번째 단계로 진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 년이 될 수도 있다. 두 번째 단계에서 세 번째 단계까지는 보통 한 달 정도 걸린다. 그러나 희망을 빨리 찾지 못하면 두 번째 접촉 욕망을 단념하게 된다. 그러나 세 번째 단계에서 네 번째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다. 희망을 품는 순간, 바로 사랑이 싹을 틔운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단계 역시 그렇다. 그 사이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친화력뿐이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단계는 성격과 열정의 정도, 혹은 그 사람이 속한 사회의 관습에 따라 진행되는 시간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여섯 번째 단계와 일곱 번째 단계는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여기서 여섯 번째 단계인 의혹을 벗어나지 못해 강렬한 제2의 결정 작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짧은 시간 안에 끝나버리고 마는 허무한 사랑이 되는 것이다.
친밀함에 대하여
사랑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은 사랑하는 여자의 손을 처음으로 잡는 일이다. 반면 육체관계에서 느끼는 행복은 그보다 훨씬 현실적이며 농담의 재료가 되기 쉽다. 정열적인 연애에 있어서 친밀한 관계가 되는 것은, 완전한 행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최후의 한 걸음인 것이다.
오늘 저녁 감수성 예민하고 솔직 담백한 어떤 남자가 내게 자신의 연애담을 들려주었다. 그는 예전에 기사(騎士)였다. 나 같으면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털어놓지 못했을 그의 연애담을 듣고 나서 친밀감이 형성되는 순간은 가장 아름다운 꽃이 피는 계절인 싱그러운 오월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치명적이어서 아름다운 꿈들을 한순간에 모두 시들게 할 수 있는 순간인 것이다.
사랑할 때의 자연스러움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덕목이다. 자연스러움은 베르테르식의 진지한 사랑에서 허용되는 유일한 교태인 동시에 정숙함에도 잘 들어맞는 최선의 전략이다. 제아무리 무뚝뚝한 남자라도 진실한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면 자기도 모르게 달콤한 말들을 속삭이고 생각지도 못했던 말들을 쏟아내게 된다. 이때 가식적으로 듣기 좋은 말을 꾸며내거나 의도적으로 접근하며 환심을 사려고 들면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잘 생기고 재기가 넘치는 사람이라 해도 이런 연애는 오래가지 못한다. 한순간의 가식이 수없이 많은 장점을 짓뭉개 상대의 마음을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여자들에게 말재주가 없거나 무뚝뚝한 남자보다 더 두려운 것은 바로 위선적인 사람이다. 여자들은 상대가 조금이라도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면 이를 민감하게 감지해낸다. 아무리 순수한 의도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라 할지라도 이런 이상 상태가 감지되면 그동안 느껴온 만족감은 순식간에 곤두박질 치고 그 대신 의심을 시작한다. 정숙한 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더 조심해야 한다. 이들은 지나치게 격렬한 태도나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이 두 가지는 정열의 특성이긴 하지만 여자의 수치심을 자극해 방어적인 태도를 만들어낸다. 자기 보호 본능이 발동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 옆에 서면 자연스럽게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잘 보이는 것도 쉽지 않지만, 잘 보이려고 꾸미지 않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럴 때마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며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솔직함으로 다가서야 상대도 반사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솔직하게 응대하기 때문에 말이나 행동에 가식이 들어차면 여자는 마음을 닫아버린다. 더 이상 감동하지도, 유혹에 넘어가지도 않는다. 물론 여자들 중에는 ‘매달리지 않으면 죽는다’는 신조를 운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 역시 자연의 법칙 중 하나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자를 행복하게 해주려면 결정적인 한 걸음은 최대한 늦추어야 한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자제심을 잃으면 안 된다. 그러다 남자의 진실성에 의혹이 생기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상황을 정리하는 편이 현명하다.
사랑의 고백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사실을 친구에게 털어놓을 때는 좀더 신중해야 한다. 당신은 이제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친구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란 걸 이 친구도 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걷잡을 수 없는 열병에 휩싸인 남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친구이기도 하다. 매순간 영혼을 엄습해오는 끔찍한 의심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해소해줄 수 있는 친구가 없다면 상상과 실재를 구분하는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더하다. 여자들에게 있어 남자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그 즐거움과 행복을 당신 친구도 모를 리 없으니, 당신만 편애하는 행운의 여신을 원망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때 여자는 자기 친구가 의리를 저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자기가 너무 연애에 대해서만 떠들어대서 친구를 질리게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취미적인 사랑은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으면서 감정이 강해지는 반면, 정열적인 사랑은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서 식어간다. 이처럼 고백은 위험하기도 하고 제대로 전달하기도 어렵다. 특히 정열적인 사랑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섬세한 감정이 있어 다른 사람이 이를 정확하게 간파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또 듣는 사람이 너무 감동을 받아도 객관적인 조언을 얻기가 어려우니, 이 또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사랑에 사로잡힌 마음을 털어놓기에 가장 좋은 상대는 어쩌면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당장 오늘 저녁부터 연인과 나눈 대화와 마음을 어지럽히는 어려움을 글로 써보자. 이때는 이름을 바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 객관적으로 적어내려가는 것이 좋다. 대신 특징적인 것들은 하나도 놓치지 말고 적어놓아야 한다. 일주일쯤 시간이 흐른 뒤 이 글을 다시 읽어보면 다른 사람에게 청해 듣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한 조언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치료약
고대에는 루카디아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아름답게 여겼다.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몸을 던진 그리스의 여류 시인 사포의 영혼을 찬미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가 보다. 사실 사랑의 열병을 치료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외적인 위협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보호 본능이 발동되기 전에는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사랑의 열병이다. 자기 보존을 생각하는 습관이 생길 때까지 이런 위험을 능숙하게 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필요한 외적 압력이라는 것도 돈 후안을 고립시킨 열엿세 간의 폭풍우나 배가 난파되어 사하라 사막에서 포로 생활을 했던 코슐레의 모험 정도는 되는 난관에 부딪쳐야 효과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도 습관이 되어 전쟁터에서 적을 코앞에 두고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행복에 젖는 불상사가 발생하게 된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전율을 느낀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그녀를 생각나게 해 하루 종일 비현실적인 감각에 들떠 있다. 이런 상상과 전율이 어찌나 달콤한지 그 외에 다른 일들은 모두 빛을 잃어버린다. 이렇게 사랑의 열병에 걸린 친구를 도와주고 싶다면 항상 그가 사랑하는 여자의 편을 들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지혜는 없고 의욕만 있는 친구가 꼭 반대로 행동해서 역효과를 낸다. 친구의 상사병을 고쳐 주고 싶다면 명심할 것이 있다. 즉, 사랑에 빠진 남자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당장 눈앞에서 일어나도 그것을 받아들인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여자
를 단념해야 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연인에게 명백한 결점이 있어도, 잔인하게 배신을 해도 그것을 부정한다. 정열적인 연애를 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상대의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따라서 친구의 상사병을 고쳐주려거든 노골적으로 그의 마음을 딴 곳으로 돌려놓으려고 하지 말고, 그가 자신의 사랑과 애인에 대해 실컷 얘기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여행도 혼자 하게 해서는 안 된다. 혼자 여행을 하면 어딜 가나 누구를 만나나 연인을 떠올릴 것이다. 또한 연애 과정을 충분히 돌아보며 반성하게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중에는 이 반성이 지겹고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자신의 연애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그저 평범한 해프닝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연애 사건이나 이별에 대해 작정하고 대화를 벌이는 것보다는 그냥 편안하고 즐겁게 식사를 하고 와인이라도 한잔 기울이며 아무렇지 않게 얘기를 꺼내 일상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베르테르와 돈 후안
친구가 사랑에 빠져 비웃음을 사거나 기운이 빠져 있으면 남자들은 여자를 사귈 때 돈 후안이 되는 것이 나은지, 베르테르가 되는 것이 나은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곤 한다. 감성적인 사람의 대표로는 베르테르가 어울리는 것 같다. 돈 후안 같은 남자들은 떠벌리고 다니는 데 익숙하고 베르테르와 같은 남자들은 비밀스럽게 조용한 사랑을 만들어간다.
희대의 바람둥이로 명성이 높은 돈 후안 쪽이 되려면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 감탄할 만한 대담함, 비범한 지능, 활발한 성격, 냉철함, 유머 등이 필수 항목이다. 돈 후안 같은 남자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도 잘 알고 임기응변에 뛰어나지만, 노년은 초라한 경우가 많다. 또 그들 중 상당수가 노후를 맞지도 못하고 인생을 마감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세상을 버리고 마는 순수한 영혼의 베르테르처럼 사랑한다면 그 영혼은 예술과 감미롭고 로맨틱한 감정, 은은한 달빛, 아름다운 숲, 회화의 아름다움에 맞닿게 된다. 눈에 보이는 세속적인 가치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금으로 장식한 드레스보다 낡은 수도사의 옷에서 영혼이 아름다움을 느낀다. 베르테르식 사랑은 금전과 상관없이 행복 자체를 느끼게 해준다. 이런 영혼들은 감성이 지나쳐 상처받기 십상이다.
베르테르와 돈 후안 중 어느 쪽이 더 낫다는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내가 베르테르 쪽이 돈 후안 쪽보다 더 행복하다고 믿는 이유는 돈 후안은 사랑을 흔해빠진 일상사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베르테르는 현실을 욕구에 맞춰 만들어가는 반면, 돈 후안의 욕구는 냉정한 현실 때문에 완벽하게 충족되지 않는다. 야망, 탐욕, 그 밖에 다른 열정들처럼 말이다. 결정 작용의 마법같은 몽상 속에서 길을 잃은 대신 돈 후안은 작전 성공만을 바라는 장군처럼 사고한다. 그는 한마디로 말해, 사랑을 죽여 버린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는 오히려 사랑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다.<연애론(De l’amour), 스탕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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