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사냥꾼에서 야가마나로
야생동물을 포획하여 가둬놓고 충분히 순치될 정도로 오랜 세월 격리 생식을 해왔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나는 수렵시대 힘센 사냥꾼이 야가마나(Yajamana), 즉 초기 사육시대의 희생제의를 주관한 제주였다고 제안하고 싶다. 야가마나라는 용어는 다소 익숙하지 않은 어휘인데, 문자적인 의미는 고대 인도의산스크리트어로 제사를 주관하는 ‘제주’를 의미한다. 나는 야가마나를 논의의 편리를 위해 왕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야가마나는 자기 백성들을 대신하여 희생제의를 수행하고 명령하는 자였다. 그는 일반적으로 희생제의에 자기 백성들이 참석하도록 허락하고 희생동물의 고기를 나누어 가지도록 했다. 동물을 죽이고 결과적으로 그 고기를 분배함(신성시된 고기인 제례의 제물은 후원자들과 공동체에게 영적 만족과 사회적 만족을 가져다준다)으로서 힘센 사냥꾼과 야가마나라는 용어 속에서 ‘왕족’의 위상과 종교적인 제의가 결합하게 된다.
전기사육시대 힘센 사냥꾼이 사냥을 통해 자기 공동체에게 제공되었던 고기가 사육시대로의 이행과 더불어 야가마나에 의해 살아 있는 동물(포획되어 마침내 길들여지는)로 대체되어 희생물로 바쳐진다.
희생제의는 정기적으로 거행되었을 수도 있다. 혹은 즉위식, 통치자의 매장, 영광스러운 손님의 방문과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 일어났을 수도 있다. 또한 비상사태로 인해 희생제물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렇게 희생제물을 바쳐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냥감을 찾아나선 사냥꾼이 매번 살아 있는 야생동물을 잡아올 것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제주들은 사냥꾼이 어쩌다 우연히 마주친 야생의 새끼 양을 잡아오거나, 야생 멧돼지를 그물로 생포하여 산 채로 마을로 데려오는 데만 의존할 수가 없다. 희생 동물을 손에 넣는 일은 골칫거리였음이 분명하다. 때문에 살아 있는 동물의 도살을 요구하는 제의로 인해 동물을 살려두는 것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가둬놓고 키운 희생물은 처음에는 아마도 야생동물의 대용물이었을 것이다. 포획한 짐승을 번식시키고 빨리 잡아먹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사실상 사냥은 지속적으로 필요했을 것이다. 동물이 더 많아지고 더 커지면 흘리는 피 또한 많아지고, 고기도 많아지며, 신들도 더 좋아할 것이고, 그럴수록 야가마나의 위상은 올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희생제의의 가장 끔직한 면은 수세기에 걸쳐 줄어들었다. 유혈 희생제의가 사라지게 됨에 따라 동물에게 보이지 않는 신성과 영혼의 세계와 접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전기사육시대의 신앙도 함께 사라졌다. 전기사육시대 후반부에 출현한 예술은 인간/동물 관계가 영적이고 미학적인 감수성에 서로 깊게 스며들어 있는 세계를 묘사한다. 많은 신화와 민담에서도 동물을 이용해 미래를 예측하거나 특정한 동물을 보이지 않는 세계의 사자로 간주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사육시대가 진행됨에 따라 전부 사라지거나 무의식적으로 가라앉게 되었다. 동물이 보이지 않는 정령의 세계를 매개한다는 믿음은 사육동물이 보다 유용해짐에 따라 사라져 신비감을 상실하게 되었다. 사육시대의 고급문화는 종종 예술적인 목적으로 그것을 소생시킬 뿐이다. 전기사육시대적인 신앙은 사육시대에도 여전히 오랫동안 지속되다가 물질적인 용도에 압도됨으로써 마침내 잊혀진다.
허구적 동물의 출현
사육시대 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일치하는 점이 있다. 첫째, 공들여 만들어낸 사육사회는 동물을 착취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야생동물과 거리를 유지한다. 둘째, 대다수 개인들은 길들여진 동물들과 함께 자랐으며, 반려동물을 가시적·상상적 풍경 속에서 정상적인 일부로 간주한다. 셋째, 사육동물들과 그들이 제공하는 산물들은 교환과 소비의 대상으로서 경제적· 사회적 시스템의 일부로 통합된다. 이러한 특징들은 동물의 희생제의와 같은 정서적 용도와 동물에 관한 정령 신앙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쇠퇴한 것과는 달리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경제적 발전과 병행하여 사육시대에서 후기사육시대로 이행하면서 동물에 대한 인식에는 괄목할 만한 변화가 생긴다. 산업화와 인구 성장은 영국의 도시화 정도와 결합되어 있었다. 당시 미국,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는 여전히 농촌사회(사육사회)였다. 결과적으로 영국은 일찍부터 축산품을 위한 사육동물을 도시 거주자로부터 격리시키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데 약간 앞서나갔다. 대신 19세기가 시작될 무렵 점화되었던 동물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은 세기가 진행됨에 따라 많은 영국인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동물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증폭됨에 따라, 그들의 사상은 해외의 영어권 인구들 사이에 급속하게 퍼져나가게 되었다. 상상력의 영역에서 미국과 영국의 작가, 만화가, 영화제작자들은 개별 동물들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옷을 입히고 스토리 안에서 곤경을 헤쳐나가는 주역으로 만들었다. 이 장은 이렇게 출현한 허구적 동물들을 소개한다.
인간과 동물 관계의 미래
후기사육시대적인 불안이 영국과 미국에서 분명히 드러나 있는 반면 일본에서는 그다지 심하지 않은 편이다. 오늘날 일본 문화는 전기사육시대 전통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는 동물에 대한 태도, 즉 공자의 자비심 원리와 감정을 가진 동물을 존중하라는 불교의 가르침, 동물의 정령에 관한 신토(Shinto) 신앙에 바탕을 둔 태도에 의존하고 있다.
애완동물의 소유도 일본인 나름의 특이한 궤적을 그린다. 1990년대 초반부터 펫붐이 일어나 최근 들어 개와 고양이가 인기를 얻고 있다. 1996년 무렵에는 일본 전체 가구 중 49.1 퍼센트가 어떤 종류든 애완동물을 소유했다. 이 수치는 미국의 애완동물 소유 수치에 육박한다. 일본의 전자산업 또한 상상의 존재인 다마구치(‘사랑스런 알’) 같은 가상 애완동물과 로봇 애완동물의 발전시켰다.
고양이의 현대적인 변형은 헬로 키티에 잘 구현되어 있다. 헬로 키티는 만화적인 형상이다. 빨간색 머리 리본을 하고 있는 입이 없는 흰 새기 고양이이다. 산리오 사는 1974년 이 캐릭터를 개발했는데, 이제는 화장지에서 주방 용품, 팩스 기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소비 용품에 등장하고 있다. 산리오 사는 헬로 키티 캐릭터로 1년에 10억 달러의 로열티를 벌어들인다. 일본에서 그리고 미국의 많은 어린이들에게서 이 동물 아이콘의 압도적인 인기는 놀랍기 그지없다. 헬로 키티는 미국의 미키 마우스와 달리 영화로 상영되거나 만화책으로 출판된 적도 없다. 헬로 키티는 인간화된 만화적인 동물이라기보다는 영적인 아이콘이다. 여하튼 어떤 경우든 간에, 생명력을 가진 영혼의 개념이 서구의 애완 전통에서보다는 훨씬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일본의 사례는 일본인들의 역사에서 동물이 차지한 위치에 바탕을 두고 영적인 동물들을 이용하여 우리 시대의 관심사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후기사육시대 인간/동물의 관계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 동물과 접촉하면서 살았던 세대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후대에는 인간/동물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까. 인간/동물 관계의 실제 세계에서 마주 지체 될 인간/동물 관계의 미래는 후기사육시대적인 양식이 보여준 동물 착취가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팽창할 것이며 그로 인해 점점 더 분노하게 된 후기사육시대 활동가들이 그것에 얼마나 저항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당분간 어느 진영도 낙관할 계제가 못 된다. 육류가공업자와 채식주의자 들, 사냥꾼과 밍크 해방주의자 들, 제약회사와 동물실험 반대자 들 사이에 중도적 노선은 없다. 철학자들, 과학자들, 작가들, 영화제작자들은 엄청난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 들어왔다.
하지만 상상력에 미래가 있다. “진정한 천재가 나타나 전기사육시대의 마법을 재발견하도록 기다려야 할 것이다. 동물이 신과 교감하고 반인반수가 존경받던 시대, 동물을 죽이는 것이 경외감과 죄의식이 들도록 만들었던 시대의 마법을 재발견하려면 진정한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인간과 동물 관계의 역사를 ‘사육’이라는 개념을 통해 추적하고 있는 책이다. 인간과 동물의 분리 시기를 전기사육시대, 사육시대, 후기사육시대로 구분 짓고 사육의 핵심적인 특징들을 보여준다. 동물과 접촉하면서 살았던 세대가 사라져버린 후대에 인간과 동물 관계의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지 생각해보도록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육과 육식“, 리처드 W. 불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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