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는 서시, 왕소군, 초선과 더불어 중국의 4대미인 중 한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고 중독시키는 아편 꽃에 양귀비란 이름을 붙인 걸 보면 그녀의 미모는 어지간히도 치명적이었던 것 같다. 본명은 양옥환이며 잠시 도가에 입문했을 때 법명은 태진(太眞)이다. 양옥환은 노래와 춤에 능하고 미모가 출중해 17세에 당 현종의 18번째 아들인 수왕 이모의 비가 되었다. 수왕 이모는 당 현종과 무혜비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로 황제계승권으로부터는 멀리 떨어진 수많은 왕자 중 한 명에 불과했다
며느리 양옥환(양귀비)에게 연정을: 일반적으로 말해 특수한 신분이었던 황제의 일생에 진정한 사랑이 존재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예외적인 인물도 있기 마련이다. 역사적으로 명성을 떨친 당현종과 그의 며느리인 양귀비의 사랑이 바로 그러했다. 당현종은 풍류를 즐기던 천자였다. 그는 많은 여인을 좋아했는데, 그의 가장 큰 특징은 정이 많다는 점이었다. 왕비인 무혜비가 마흔 살에 세상을 떠났을 때 현종은 쉰두 살이었다. 무혜비가 죽자 후궁전에는 미인이 수천이었지만 현종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정이 많던 현종의 입장에서 마음을 둘 곳 없다는 것은 큰 고통이나 다름없었다. 울적하게 지내던 현종이 자주 화를 내자 곁에 있던 대신들이 양옥환(楊玉環)이 절세미인이라는 말을 꺼냈다. 이 말을 들은 현종은 매우 기뻐하며 자신의 며느리라는 사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보러 갔다.
포주(浦州) 영락(永樂) 사람인 양옥환은 수나라 양군통수(梁郡通守) 왕(汪) 씨 4세손이자 양현염(楊玄琰)의 딸로 태어났다. 양옥환은 낮은 관리 집안 출신이었는데 어려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 집에서 자랐다. 이후 그녀는 당현종의 아들 수왕(壽王) 이모(李瑁)의 왕비로 간택되어 궁에 입궐했다. 겨우 열세 살에 수왕비로 책봉된 그녀는 5년 동안 왕비의 신분으로 살고 있었다. 현종은 양옥환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 아름답고 요염한 미인 앞에서는 평범한 남자들도 마음이 흔들리기 마련인데 풍류를 즐기던 현종은 어떠했겠는가? 현종은 분부를 내려 먼저 양옥환의 신분을 바꿨다. 그녀에겐 태진(太眞)이라는 호칭을 내려 여도사로 입적시켰다가 다시 자신의 후궁전으로 불러들였다. 그때 현종의 나이 쉰둘이었고 그녀는 겨우 열여덟 살이었다.
수왕은 부황에게 자신의 비를 빼앗겼지만 감히 그 일을 입 밖에 낼 수 없었기에 울분을 삼킬 뿐이었다. 현종은 이에 대한 보상으로 아들에게 위조훈(韋詔訓)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게 했다. 수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부황의 명에 순순히 따랐다. 만약 현종이 색에 눈이 어두워 예법을 무시한 채 자신의 며느리를 빼앗지만 않았더라면 양옥환은 평탄한 일생을 살았을 것이고 이렇게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이 많았던 풍류황제 당현종이 사랑에 눈이 멀어 그녀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고 심지어 현종 자신의 인생까지 바꾸어 놓았다.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대당나라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매혹적인 귀비: 양옥환은 어떻게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하던 양귀비는 더욱 아름다워지고 말도 총명하고 재치 있게 하여 그녀의 아름다움이 만 가지 자태로 나타났다.
양귀비가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빼어난 미모 이외에도 총명하고 눈치가 빨랐기 때문이었다. 『장한가전』에서는 그녀를 ‘재주가 뛰어나고 지혜로웠으며 황제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음악과 가무에 뛰어난 재능은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 또 하나의 이유였다. 현종은 음악과 예술의 애호가였고 양귀비도 음악에 소질이 있어 음악으로 두 사람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현종이 직접 지은 <예상우의곡>에 맞춰 양귀비가 춤을 췄는데, 특히 취기가 올랐을 때 그녀의 춤 자태는 바람에 흩날리는 눈송이같이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 모습에 현종은 양귀비가 음악을 완벽히 해석했다고 생각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양귀비는 마치 인간 세상에 있는 천당에서 사는 것 같았다. 그녀는 후궁전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살았다. 후궁전에 양귀비 한 사람의 옷을 만드는 전문 인력이 700여 명이 넘었으니 말이다. 귀비가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생활에 몰두하자 출세를 노리던 사람들은 앞 다투어 진귀한 보물들을 양귀비에게 바쳤다. 뇌물을 바친 관료들 중에서 영남절도사(嶺南節都史) 장구장(張九章)과 광릉장사(廣陵長史) 왕익(王翼)이 바친 보물이 가장 진귀하여 양귀비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 그래서 장구장은 출세했고 왕익도 호부시랑으로 특급 승진했다. 이런 이유로 당시 조정 안팎의 관료들이 경쟁적으로 양귀비에게 보물을 바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현종은 양귀비와 사랑을 나누느라 조회를 거르기가 일쑤였는데 이는 백거이의 <장한가>에서 ‘짧은 봄밤 한탄하며 해 높아 일어나니, 황제는 이로부터 조회를 보지 않았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현종과 양귀비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으며 잠자리를 했다. 더운 여름 날이면 두 사람은 더위를 피해 흥경지(興慶池)로 갔는데, 그곳에서 밤새도록 육체적 쾌락을 나누다가 날이 밝아도 침상을 떠나지 않았다. 현종과 양귀비가 성적 쾌락에 빠져 지내자 아첨하길 좋아하는 자들이 잇따라 춘약(최음제)을 바쳤다.
이렇게 소인배들이 황제의 총애를 받으면서 조정은 점점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양귀비처럼 화려한 생활을 하며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여인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하지만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이고 정점에 이르렀을 때 다시 내려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양귀비 역시 이러한 운명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755년 그녀의 친척 오빠인 양국충과의 반목(反目)이 원인이 되어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안사의 난), 황제·귀비 등과 더불어 쓰촨(四川)으로 도주하던 중 장안(長安)의 서쪽 지방인 마외역(馬嵬驛)에 이르렀을 때, 양씨 일문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호위 군사가 양국충을 죽이고 현종에게 양귀비의 목숨을 요구하였다. 현종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자, 호위병사들은 현종에게 양귀비를 죽일 것을 강요하고 결국 현종은 사랑하는 양귀비에게 스스로 목을 맬 비단천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양귀비의 나이는 37세였다. <황궁의 성, 시앙쓰 지음, 미다스북스>
* 백거이(白居易)는 양귀비와 현종과의 비극을 영원한 애정의 곡(曲)으로 하여 《장한가(長恨歌)》로 아래와 같이 노래하였으며 이들은 중국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주인공이 되었다.
漢皇重色思傾國 한 황제 사랑 그리워함에 나라는 기울어가네
御宇多年求不得 오랜 세월 세상을 살펴도 구할 수 없구려.
楊家有女初長成 양씨 가문에 갓 장성한 딸이 있었으나
養在深閨人未識 깊숙한 규방에서 자라니 누구도 알지 못하나
天生麗質難自棄 타고난 아름다움 그대로 묻힐 리 없어
一朝選在君王側 하루아침 뽑혀 군왕 곁에 있도다.
回眸一笑百媚生 눈웃음 한 번에 모든 애교가 나오니
六宮粉黛無顔色 육궁에 단장한 미녀들의 안색을 가렸다오.
春寒賜浴華淸池 봄 추위에 화청지에서 목욕함을 허락하여
溫泉水滑洗凝脂 매끄러운 온천물에 기름진 때를 씻으니
侍兒扶起嬌無力 시녀들 부축하여 일어나니 아름다움에 당할 힘이 없도다.
始是新承恩澤時 그 때부터 황제 사랑 받기 시작하였네
雲鬢花顔金步搖 구름같은 귀밑머리, 꽃 같은 얼굴, 흔들거리는 금장식
芙蓉帳暖度春宵 부용휘장 안은 따뜻하여 봄 깊은 밤을 헤아리니
春宵苦短日高起 짧은 밤을 한탄하며 해 높아서 일어나니
從此君王不早朝 이를 좇는 군왕은 이른 조회를 보지 않았고
承歡侍宴無閑暇 총애로 연회에 매이니 한가할 틈 없어
春從春游夜專夜 봄을 좇는 춘정을 즐겨 온밤을 지새우니
後宮佳麗三千人 빼어난 후궁에 미녀 삼천 있었지만
三千寵愛在一身 삼천의 총애가 그녀에 있으니
金屋粧成嬌侍夜 금 같은 방 단장하고 교태로 밤 시중들어
玉樓宴罷醉和春 옥루 잔치 끝나면 춘정을 이루니
姉妹弟兄皆列士 자매와 형제 모두가 열사라.
可憐光彩生門戶 예쁘게 여기 가문에 광채가 나니
遂令天下父母心 이로 하여금 세상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不重生男重生女 아들보다 딸 낳기를 중히 여기도다.
驪宮高處入靑雲 화청궁 높이 솟아 구름속에 들어 있고
仙樂風飄處處聞 신선의 풍악은 바람 타고 어디서나 들려오네
緩歌慢舞凝絲竹 느린 노래 오만한 춤이 비단결과 피리에 맺히니
盡日君王看不足 군왕은 종일 넋 잃고 보아도 부족하도다.
漁陽瞽鼓動地來 돌연 어양 쪽 땅을 울리는 악관의 북소리 들려오니
驚破霓裳羽衣曲 예상우의곡에 깜짝 놀라도다.
九重城闕煙塵生 구중궁궐에 연기 먼지 솟아오르고
千乘萬騎西南行 수천수만 관군들은 서남으로 가고
翠華搖搖行復止 천자의 기 흔들리며 가다가 서곤 하며
西出都門百餘里 도성문 서쪽 백여리 마외역에는
六軍不發無奈何 육군을 보내지 못해 어찌 할 수 없어
宛轉蛾眉馬前死 미인의 긴 눈썹이 구부러지며 굴러 군마 앞에 죽었네
花鈿委地無人收 땅에 떨 군 꽃비녀 거두는 사람 없고
翠翹金雀玉搔頭 취교, 금작, 옥소두 땅에 흩어졌네
君王掩面救不得 군왕은 얼굴 가린 채 구하지 못하고
回看血淚相和流 차마 돌린 두 눈에 피눈물이 흐르네
黃埃散漫風蕭索 누런 흙먼지 일고 바람 쓸쓸히 부는데
雲棧縈紆登劍閣 구름 걸린 굽은 잔도 검각산을 오르네
峨嵋山下少人行 아미산 아래에는 오가는 이도 드물어
旌旗無光日色薄 천자 깃발 빛을 잃고 햇빛도 희미하네
蜀江水碧蜀山靑 촉강 맑게 흐르고 촉산은 푸르건만
聖主朝朝暮暮情 황제는 아침저녁 양귀비 생각에 잠겨
行宮見月傷心色 행궁에서 보는 달에 마음 절로 상하고
夜雨聞鈴腸斷聲 밤비에 들리는 방울소리는 애간장 끊어지는 소리요
天旋地轉回龍馭 천하 정세 변하여 황제 돌아오는 길에
到此躊躇不能去 마외역에 이르러는 걸음 뗄 수 없었네
馬嵬坡下泥土中 말 높은 고래아래 진흙더미 속에는
不見玉顔空死處 고운 얼굴 어디 가고 죽은 자리만 남아
君臣相顧盡沾衣 임금 신하 서로 보며 눈물 옷깃 적시네
東望都門信馬歸 동쪽 도성문 향해 말에 길을 맡겨 가니
歸來池苑皆依舊 돌아와 본 황궁의 정원은 변함 없어
太液芙蓉未央柳 태액지의 부용도 미양궁의 버들도
芙蓉如面柳如眉 부용은 양귀비 얼굴 버들은 눈썹
對此如何不淚垂 이들을 대하고 어찌 아니 눈물 드리우리
春風桃李花開日 봄바람에 복숭아며 살구꽃이 만발하고
秋雨梧桐葉落時 가을비에 젖어 오동잎이 떨어져도
西宮南內多秋草 서궁과 남원에 가을 풀 우거지고
落葉滿階紅不掃 낙엽이 섬돌을 덮어도 쓸지 않으니
梨園子弟白發新 이원의 자제들은 백발이 성성하고
椒房阿監靑娥老 양귀비 시중들던 시녀들도 늙었네
夕殿螢飛思悄然 반딧불 나는 저녁 궁궐 더욱 처량하여
孤燈挑盡未成眠 등불 심지 다 타도록 외로이 잠 못 드니
遲遲鍾鼓初長夜 더딘 종과 북소리에 밤이 길다는 것을 알았네
耿耿星河欲曙天 은하수 반짝이며 새벽은 다가오고
鴛鴦瓦冷霜華重 원앙같이 금슬좋은 기와는 차고 서리꽃이 심해지나
翡翠衾寒誰與共 함께 덮을 이 없는 싸늘한 비취금침
悠悠生死別經年 생사를 달리한 지 아득하니 몇 년인가
魂魄不曾來入夢 꿈속에 혼백마저 만나볼 수 없네
臨邛道士鴻都客 임공의 도인이 도성에서 머무는데
能以精誠致魂魄 정성으로 혼백을 불러올 수 있다하니
爲感君王輾轉思 양귀비 그려 잠 못 드는 군왕을 위해
遂敎方士殷勤覓 방사시켜 양귀비 혼백 찾게 하였네
排空馭氣奔如電 허공을 가르고 번개처럼 내달아
升天入地求之遍 하늘 끝에서 땅 속까지 두루 찾아
上窮碧落下黃泉 위로는 벽락 아래로는 황천까지
兩處茫茫皆不見 두 곳 모두 망망할 뿐 찾을 길이 없는데
忽聞海上有仙山 홀연 들리는 소문 "바다 위에 선산 있어
山在虛無縹緲間 그 산은 아득한 허공 먼 곳에 있고,
樓閣玲瓏五雲起 누각은 영롱하고 오색 구름이 일어
其中綽約多仙子 그 곳에 아름다운 선녀들이 사는데,
中有一人字玉眞 그 중 옥진이라 하는 선녀 하나 있으니
雪膚花貌參差是 눈같은 피부와 고운 얼굴 그인 것 같다하네
金闕西廂叩玉扃 황금 대궐 서쪽 방의 옥문을 두드리고
轉敎小玉報雙成 소옥시켜 쌍성에게 알리도록 말 전하니
聞道漢家天子使 한황제의 사자가 왔다는 말 전해 듣고
九華帳里夢魂驚 꿈에 깨어 놀라는 화려한 장막 안의 혼백
攬衣推枕起徘徊 옷을 들고 베개 밀고 일어나 서성이더니
珠箔銀屛迤邐開 길게 이어진 구슬발과 은병풍 열리니
雲髻半偏新睡覺 구름 같은 머리 한쪽으로 드리우고 막 잠에 깬 듯
花冠不整下堂來 머리장식 안 고친 채 당에서 내려오네.
風吹仙袂飄飄擧 바람 부는 대로 소맷자락 나부끼니
猶似霓裳羽衣舞 예상우의무를 추던 그 모습인 듯
玉容寂寞淚欄干 옥 같은 얼굴 수심 젖어 눈물이 난간에 흐르니
梨花一枝春帶雨 활짝 핀 배꽃 한 가지 봄비에 젖은 듯 하구나
含情凝睇謝君王 정어린 눈길 돌려 군왕에게 사뢰니
一別音容兩渺茫 "헤어진 뒤 옥음, 용안 듣고 뵙지 못하여
昭陽殿里恩愛絶 소양전에서 받던 은총도 끊어지고
蓬萊宮中日月長 봉래궁에서 보낸 세월이 오래건만
回頭下望人寰處 머리 돌려 저 아래 인간세상 보아도
不見長安見塵霧 장안은 보이지 않고 짙은 안개와 먼지 뿐
唯將舊物表深情 장차오래 지닐 물건으로 깊은 정을 표하려니
鈿合金釵寄將去 자개 상자와 금비녀를 가지고 가라하네
釵留一股合一扇 비녀는 반 쪽씩 상자는 한 쪽씩
釵擘黃金合分鈿 황금 비녀 토막내고 자개 상자 나눴으니
但敎心似金鈿堅 두 마음 이처럼 굳고 변치 않는다면
天上人間會相見 천상에든 세상에든 다시 보게 되리라네
臨別殷勤重寄詞 헤어질 즈음 간곡히 다시 하는 말이
詞中有誓兩心知 두 마음 만이 아는 맹세의 말 있었으니
七月七日長生殿 칠월 칠일 장생전에
夜半無人私語時 인적 없는 깊은 밤 속삭이던 말
在天願作比翼鳥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 땅에 나무로 나면 연리지가 되자고
天長地久有時盡 천지 영원하다 해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此恨綿綿無絶期 이 슬픈 사랑의 한 끊일 때가 없으리
이렇듯 한날한시에 같이 죽기로 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한편 중국 4대 미인 중의 한 사람이었던 양귀비지만 지금의 미인의 기준과는 좀 달랐던 것 같다. 당시 왕실의 시인으로 있었던 이태백은 양귀비에 대하여 '허리가 굵어 몸매가 아름답지 못하고 용모도 그리 신통하지 못하다'는 내용의 시를 썼다. 이 시를 읽고 발끈한 양귀비가 현종을 충동질하여 이태백을 먼 나라로 귀양 보내 버렸다고 한다. 어쨌든 얼굴만 빼어난 것이 아니라 시나 예능에 재능을 보이며 머리회전이 뛰어나 현종의 총애를 끝까지 받았다고 볼 수 있겠다. 13세에 현종아들 비로 입궁하여 17세 즈음 현종의 눈에 띄어 근 20여년간 행복을 누리면서 즐기다가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여 이를 두고 경국지색이니, 미인 박명이라고 하는 것 같다. <자료 모음 정리 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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