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군주론(Principe)』(1513)은 모든 윤리적, 종교적 양심의 가책을 일찌감치 저버린 군주들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들에게 “진정으로 선하고자 노력하기보다 그저 선하게 보이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비, 신뢰, 인도주의, 정직, 그리고 신앙심과 같은 덕목들이 군주에게는 해가 된다”고 하면서 “하지만 그러한 덕목들을 단지 보여주기 위해 갖추는 것은 군주에게 유용하다”고 했다. 특히 제일 마지막 덕목인 신앙심은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했는데, 절실한 신앙심의 표출은 나머지 네 가지 덕목들에 대해 저절로 긍정적 평가를 얻게 하고, 특히나 신앙심을 중시하는 이들에게서 더욱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로 그런 위선과 속임수의 통치 기술을 담은 책이 『군주론』이다.
마키아벨리는 ‘결과적으로 이득을 줄 수 있는 모든 악은 허락된다’는 가르침을 전했다. 이러한 그의 가르침은 무신론을 기초로 하는 발상이다. 만일 ‘선을 위해 악을 행하는 것이 필요한 선택’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려면 신과 영혼, 그리고 사후 영생을 부정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그 어떤 당위와 이득도 사후의 영생 이상으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바로 이점을 겨냥하고 기독교적 천국의 개념을 비판했다. 그는 기독교가 ‘천국과 지옥’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이용해 윤리적 규율로 인간의 두 손을 꽁꽁 묶어버리고 필요악을 행하지 못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는 군주들에게 ‘무엇이 옳은가’보다는 ‘무엇이 더 효과적인가’를 통치의 기준으로 삼도록 했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 20세기의 각종 혼돈의 경험에서 분명히 얻은 교훈이 있다. 바로 불확실한 선을 좇기 위해 시작한 악이 점차 더욱 불확실한 선을 위해 더 악한 행위도 서슴지 않게 만든다는 것이다.
군주의 인자함에 대해 논하는 부분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사랑을 받지 못할 바에는 두려운 존재라도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군주가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한 그들은 군주의 편이다. 인간은 이익이 되는 일에는 걸신이 들려 있기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더불어 "백성들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별도의 대비책을 마련해 두지 않은 군주는 멸망한다"고 주장한다.
<“세상을 망친 10권의 책“에서 일부 요약 발췌, 벤저민 와이커 지음, 눈과마음>
<개미취>
“군주된 자는, 특히 새롭게 군주의 자리에 오른 자는, 나라를 지키는 일에 곧이곧대로 미덕을 지키기는 어려움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신앙심조차 잠시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군주에게는 운명과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적절히 달라지는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면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이다. 일단 그렇게만 하면, 그렇게 하기 위해 무슨 짓을 했든 칭송 받게 되며, 위대한 군주로 추앙 받게 된다.”
인간의 나약한 심리를 역이용하라고 가르치는 부분을 읽을 때면 섬뜩할 정도다. 예를 들어 "실행할 권력이 없는 선(善)은 악보다도 못하다"랄지 "악행을 행해야 할 경우에는 한번에 몰아서 해야 한다. 그것이 악행을 되풀이하지 않는 방법이다. 반대로 은전을 베풀 때는 조금씩 오래 베풀어야 한다"는 구절이 그렇다.
`군주론`이 출간된 이후 몇 명의 군주들이 `군주론`을 금서로 지정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2세와 러시아의 예카테리나2세다. 둘은 `군주론`이 군주들에게 악덕을 가르치며 인간성을 파괴하는 책이라고 비난을 퍼붓는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폭군이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알 수 있듯 `군주론`은 민도가 낮고 정치하수들이 넘쳐나던 시기에는 `악의 꽃`이 됐고, 그렇지 않은 시기에는 현실정치의 본질을 담은 참고서가 됐다.
`군주론`은 뉴스위크나 타임이 선정한 세계 명저 리스트에서부터 대학생 필독서 목록에 이르기까지 우선순위로 거론되는 명저다. 성악설에 기인해 쓰인 이 불온한 책이 왜 21세기인 지금 명저로 꼽히는 것일까.
이유는 이렇다.
`군주론`은 명실상부한 국가중심주의를 모델로 한 첫 번째 정치이론서다. 교황 귀족 부자 등의 권력이 복잡하게 얽힌 시대를 살았던 마키아벨리는 본질적인 의미의 `근대국가`를 꿈꾸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자신보다 내 조국 피렌체를 더 사랑했다"는 그의 말은 이 책의 탄생 배경을 설명해준다. 군사력을 키우고, 내부를 단속하고, 외세에서 독립해 국가를 유지하는 방법을 사례 연구를 통해 분석한 부분은 탁월하다.
사실 `국가가 없으면 국민도 없다`라는 식의 현대식 구호는 `군주론`을 빼닮아 있다. `군주론`은 끝없는 논란에 시달린다. 인간이 모여 만든 정치체제라는 것이 계속 진화하는 유기체 같은 것이어서 `군주론`에는 부정되어야 할 부분도 많다.
하지만 그 부정과 대안 모색도 500년전 `군주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 아니었을까. <허연의 역사속 명저 산책에서...>
<가락지 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