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월급에 기대어 먹고 살며 도시의 아파트나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을 살아간다. 식구를 먹여 살리는 일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그래서 자기를 옭아매고 있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데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 소박하고 단순한 생활을 하기를 꿈꾼다. 삶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식구들과 친구들의 걱정 어린 충고와 알 수 없는 앞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발길을 막는다. 그러기에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많은 세월을 보내고 아직도 망설이고 있다.
정말로 시골 생활에 잘 적응 할 수 있을까? 땅을 일궈서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을까? 힘든 농사일을 몸이 감당할 수 있을까?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 너무 나이를 먹은게 아닐까? 시골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은 누구한테 배워야 할까? 농사일에 얼마나 얽매여 살게 될까? 시골일은 내 허리를 휘게 만드는 또 다른 중노동이 되지 않을까? 도시생활과 결별하기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몇 백 가지가 넘는 이런 의문들이 머리를 채우기 마련이다.
시골로 가니 희망이 있었다.
우리는 국내외 도시 몇 군데서 산적이 있다. 그 때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단순하고 고요한 삶을 방해하는 요소들인 복잡함, 긴장, 압박감, 부자연스러움, 만만치 않은 생활비와 맞닥뜨렸다.
오랫동안 도시생활에 살다가는, 사회가 주는 압력을 이기고 몸의 건강과 정신의 안정, 사회 속에서의 건전함을 지켜 낼 수 없다는게 점점 뚜렸해졌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우리는 더 올바르고, 더 조용하고, 더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가면 희망이 있었다. 도시를 떠날 때 세 가지 목표를 품고 있었다.
첫 번째는 독립된 경제를 꾸리는 것이다. 우리는 불황을 타지 않는 삶을 살기로 했다. 할 수 있는 한 생필품이나 노동력을 시장에서 사고 팔지 않는 독립된 경제를 계획했다.
두 번째 목표는 건강이었다.
우리는 건강을 지킬 뿐 아니라 더 건강해지고 싶었다. 건강한 삶의 토대는 단순했다. 땅에 발붙이고 살고, 먹을 거리를 유기농법으로 손수길러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세 번째 목표는 사회를 생각하며 바르게 사는 것이었다. 우리는 되도록 많은 자유와 해방을 원했다. 다양함과 복잡함, 혼란 따위 말고 단순함을 추구하고자 했다. 병처럼 미친 듯이 서두르고 속도를 내는 것에서 벗어나 평온한 속도로 나아가고 싶었다. 물음을 던지고, 곰곰이 생각하고, 깊이 들여다 볼 시간이 필요했다. 걱정과 두려움, 증오가 차지했던 자리에 평정과 뚜렸한 목표, 화해를 심고 싶었다.
스무 해의 체험 속에서, 어떤 것은 만족스러웠지만 어떤 것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 쓸모없고 거칠기만 하던 산골짝의 땅뙤기를 개간해 기름진 밭으로 가꾸어 풍성하게 가꾸었다.
둘. 집짐승 똥오줌,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도 농사일을 만족스럽게 해냈다.
셋. 몸을 누이고 쉴 집을 손수 지었고, 아무에게 빚지지 않고 살았다. 넘치지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잉여 농산물도 있었다. 우리가 쓴 것들 가운데 4분의3은 우리가 스스로 땀 흘려서 얻은 열매들이었다. 생필품도 거의 시장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미국경제가 점점 해체되어 가는 가운데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경제 단위였다.
넷. 작은 사업을 시작하여 임금이 나올 만큼 제법 훌륭하게 꾸렸다.
다섯. 스무 해 동안 의사를 만나거나 찾아가지 않았을 만큼 건강을 지켰다.
여섯. 도시의 삶이 요구하는 복잡함 대신에 몹시 단순한 생활양식이 자리 잡았다.
일곱. 해마다 먹고 살기위해 일하는 시간을 여섯 달로 줄이고 나머지 여섯 달은 여가시간으로 정했다. 여가는 연구, 글쓰기, 대화, 가르치기 들로 보냈다.
여덟. 우리 집은 늘 열려있어서 누구나 찾아와 함께 먹고 잘 수 있었다. 사람들은 며칠 동안 묵기도 했고, 몇 주 또는 그 보다 더 오래 머물기도 했다. 우리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경험하고 보니 분명하게 드는 생각이 있다. 활기차고 힘이 넘치며, 목표의식과 상상력과 결단력을 갖춘 보통의 집이라면, 경쟁을 일삼고 탐욕스러우며 남의 것을 빼앗는 문화의 멍에를 언제까지나 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경험을 통해 계획을 늘 고쳐 나갔지만 삶의 중심 원칙들을 세웠다.
1. 우리는 먹고사는데 필요한 것을 절반쯤은 자급자족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아서 자급자족 경제를 이루어 보려고 했다.
첫째. 우리 밥상에 올리기 위해 땅과 기후가 허락하는 한 곡식을 많이 가꾼다.
둘째. 거둔 곡식을 다른 곡식이나 물건으로 바꾼다.
셋째. 연료로 나무를 때며, 나무는 우리 손으로 해온다.
넷째. 농장에 있는 돌과 나무를 써서 필요한 물건을 짓되 반드시 스스로한다.
다섯째. 썰매, 짐수레, 모레치는 망, 사다리 같은 장비들을 만든다.
여섯째. 돈을 주고 사야만 하는 장비,연장,,부속품, 기계 같은 도구는 되도록 적게 쓴다.
일곱째. 만일 쟁기, 트랙터, 경운기, 불도저, 기계톱과 같은 장비들을 한 해에 몇 시간이나 며칠쯤만 써야 한다면 그 기계를 돈 주고 사 오는 대신 동네 사람들에게 잠시 빌리거나 다른 것과 바꿔 쓴다.
2. 우리는 돈을 벌 생각이 없다. 우리가 경제활동을 하는 목적은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한 것이다.
3. 우리는 모든 일에 들어가는 비용을 우리가 가진 돈만으로 치를 것이다.
땅이나 집을 담보로 넣어 융자를 얻은 뒤 이자를 갚느라 허덕이는 일은 결코하지 않을 것이다.
4. 우리는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수확물로 해마다 봄이면 단풍시럽을 능률있게 생산할 것이다.
5. 우리는 단풍시럽과 설탕을 팔아서 번 돈으로 필요한 것을 충분히 살 수 있는 한 우리 땅에서 아무것도 내다 팔지 않을 것이다. 채소나 곡식이 남는다면 이웃과 친구들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줄 것이다.
6. 평생 살 집을 지을 땅과 생활에 필요한 건물들을 지을 장소를 신중하게 생각해서 정할 것이다.
7. 자연에 있는 돌과 바위로 집을 지을 것이다. 가장먼저 세울 새집은 생나무를 저장해서 말릴 수 있는 목재창고가 될 것이다. 콘크리트를 만들려면 모래와 자갈이 있는 곳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내 생각에 새로운 고장에 살러 온 사람이 지켜야 할 첫 번째 규칙은 언제나 그 곳 풍습을 있는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곳에 완전히 눌러 살면서 그 곳 사람들과 하나가 되기 전까지는 섣불리 그 곳을 뜯어 고치려는 뜨거운 욕망을 자제해야 한다” <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손에 넣을 수 있는 음식을 먹는다. 다만 좋은 것을 먹는가 나쁜 것을 먹는가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자기 밭에서 나는 채소와 과일을 먹는 사람은 자기 밭을 갖고 있지 않은 부자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먹는다." <J.C루던>
“친구여. 뚜렷한 근거가 떠오르거든, 어리석음이 더 커져서 행동을 방해하기 전에, 그대를 묶어 놓고 있는 것들로부터 멀어지라. 시골이라면 그대와 잘 어울릴 것이다. 나무와 물에게 그대가 필요하게 하라. 곡식이 영그는 땅에 그대의 보금자리를 만들면, 땅과 풀이 그대를 먹여 살리리. 벌판의 바람이 그대를 둘러싸리라. 그대를 시기하는 사람들의 질투를 마음에 두지 말고 흘러가게 하라. 신에게 감사하고 축복하는 마음을 가질 것. 그리고 자네. 이제 앉아서 쉬게나.“<토마스 투서, ”좋은 농부가 되는 오백 가지 방법”에서>
문학가이며 환경운동가인 헬렌 니어링은 미국 뉴저지의 중산층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헬렌은 바이올린을 전공하기 위해 유럽으로 갔다가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와 교제하기도 했다. 스물넷에 뒷날 인생의 반려자가 될 스콧 니어링을 만나면서부터 그녀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이했다. 신념 있는 사회 운동가였던 스콧은 당시 반자본주의, 반전 운동으로 대학에서 거듭 해직되는 등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은, 미국이 일차 대전을 치르고 대공황의 늪으로 빠져들면서 모두의 안전을 위협하는 1930년대 뉴욕을 떠나 버몬트의 작은 시골로 들어간다. 직접 농작물을 기르고 돌집을 짓는 등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을 스스로 해결하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그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실천하며 소박하면서도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줌으로 해서 사람들의 의식을 각성시켰다. 헬렌은 가치 있는 삶뿐만 아니라 가치 있는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가르침을 전파했으며 그러던 중 91세가 되던 해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생을 마쳤다.
<“Living the good Life;조화로운 삶”에서 일부 요약 발췌, 헬렌니어링, 스코트니어링 씀, 류시화 옮김, 보리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