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무위

[중산] 2010. 12. 3. 12:29

선각자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All That Is)은 완벽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참존재가 모든 것 안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몸은 저절로 작동하고 신체적 기능을 정확하게 수행한다. 힘들이지 않고 걷고 자연스럽게 숨 쉰다. 몸은 자체의 동력에 따라 자동적으로 움직인다. 그 안에 존재하는 참존재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참존재는 도처에 두루 존재한다. 서양인은 이것을 만물 속에 나타나는 신성神性 즉 The Presence of God이라고 부른다. 노자는 이것을 도道라 부른다. 나는 무어라 부르든 관계하지 않는다.

 

혜능은 말한다. 마음은 하나다. 단지 정지해 있지 않다. 끝없이 움직인다. 항상 흐르는 강물처럼 어느 때는 맑고 어느 때는 흙탕물이다. 어떤 때는 잔잔하고 어떤 때는 소용돌이친다. 이것이 마음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끝없이 흘러 어느 한 곳에 고이지 말아야 한다. 어디에도 머무름 없이 마음을 써야 한다. 이 뜻은 기존의 관념이나 판단에 집착하거나 물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걸림이 없이 자유롭다. 혜능은 이것을 무념無念이라 말한다. 생각이 없거나 생각을 끊는다는 뜻이 아니다. 무념은 생각이 자유롭다는 뜻이다. 혜능의 무념이 바로 노자의 무위無爲와 직방으로 통한다.

 

노자는 무위란 하지 않으면서도 못하는 것이 없음(無爲而無不爲)이라고 말한다. 혜능은 무념이란 생각하지 않으면서 생각 못함이 없음(無念而不無念)이라고 말한다. 혜능은 마음의 자유를 구하고 노자는 행위의 자유를 구한다. 나는 자유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았다. 자유는 선택이 아니다. 선택은 두 극단의 하나를 택하고 다른 것을 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집착이다. 자유는 오히려 떨어져 나오는 것이다. 대립되는 것들을 융합하여 그 중도를 취하는 것이다. 있음과 없음, 밝음과 어두움, 움직임과 정지, 맑음과 흐림, 성스러운 것과 평범한 것, 길고 짧음, 올바름과 그릇됨 등 모든 대립을 넘어설 때, 참자아를 발견하고 자유로워진다.

 

갈등과 대립이라는 이원론이 더 높은 차원에서 서로를 받아들이며 합쳐질 때 서로를 낳게 된다. 이때 우리는 어디에도 부딪치거나 갇히지 않는 바람이 된다. 우리는 이미 기존의 관념을 넘어서 한 단계 높은 곳에 서게 된다. 치솟아라. 치솟아라. 높은 곳에 올라라.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나 문득 내가 자유롭다고 느껴질 때, 내 안에 신이 머문다는 생각이 들 때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홀로 엎드려 경배하니 내 몸이 확장되어 엎드린 마루로 흘러내리는 듯하다. 이런 순간이 내 삶 속으로 기어드는 날이 있으니 삶은 얼마나 찬란한가? 그러다 이런 깨달음을 까맣게 잊고 다시 찌푸리고 살다 또다시 마음이 맑아질 때가 있으니 잊었던 기쁨이 다시 몰려든다. 그러니 그날이 또한 얼마나 좋은 것이냐! 마음은 저 혼자 계곡의 밑을 구름으로 감돌기도 하고, 돌연 산의 정상을 향해 기쁨으로 치달리듯 한다. 맑은 날 비 오는 날 흐린 날 바람 부는 날, 그날이 어느 날이든 날마다 그날로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이 마음을 따라 사는 것이다. 종심從心.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마음을 흐른다. 그러니 또한 오늘은 얼마나 좋은 날이냐.

조그만 물결이 강 안에 자라는 물풀을 어루만지는 강......

이 땅 위에서 가장 순수한 물은

아무것도 감추고 있지 않으면서도 무엇인가를 품고 있는 듯.

- 단테의 『신곡』 연옥편 제 28곡 중에서

<“구본형의 노자 읽기 / 노자의 무위경영“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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