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영혼(psyche)'이란 '생명'뿐만 아니라 감각·감정·상상력·사유·추리·판단까지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었어요. 데카르트 이후에 '정신(mind)'이라는 개념이 일반화되면서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가 협소해졌습니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영혼(soul)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장영란(48)씨가 쓴 '그리스 신화와 철학으로 보는 영혼의 역사'(글항아리)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영혼' 개념을 탐구하는 책이다. 장씨는 1998년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을 다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까지 '장영란의 그리스 신화', '플라톤의 국가, 정의를 꿈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론' 등의 책을 썼다.
책에서 장씨는 먼저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타난 '영혼'을 분석한다. "호메로스에게 영혼이란 산 자를 살아 있게 해주는 생명의 원리였죠. 이러한 인식은 이후의 그리스인들에게도 영향을 끼칩니다. 그들은 영혼을 '생명'과 동일시했어요."
그리스인들은 또 '나' 혹은 '자신'이라는 개념과 '영혼'을 동일시했다. 장씨는 "영혼에 대한 관심은 결국 '나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철학적인 물음과 통한다"고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소크라테스의 말은 '사람들이 부(富)와 명예를 추구할 뿐 가장 중요한 영혼을 돌보지 않는다'고 아테네인들에게 경고한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지요."
장씨는 "플라톤은 '성장하는 시기에 육체를 잘 보살펴야 하는 것처럼, 영혼이 성숙해지는 시기가 되면 영혼의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썼다. "플라톤은 영혼을 '이성', '기개', '욕망'으로 삼분했는데, 진리 인식을 목표로 하는 '이성'과 명성을 떨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개'가 적절한 교육을 통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플라톤은 시가(詩歌·mousike) 교육과 체육 교육을 통해 영혼을 돌봐야 한다고 했는데, 시가 교육은 오늘날로 치자면 종합적인 인문학 교육입니다."
그렇다면 현대의 우리는 어떻게 영혼을 훈련해야 할까? 장씨는 "자신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하는 철학적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대인들의 고통은 욕망으로부터 기인하지요.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고, 자신에게 '운명'이란 이름으로 일어난 일들을 수용하면서 욕망을 다스리면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당면과제인 생태·환경문제 등도 고대 그리스 철학의 '영혼' 개념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장씨의 주장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동·식물도 영혼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은 단지 '이성(理性)'만을 추가로 가졌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인간이 세상의 다른 존재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생태·환경문제의 해법 아닐까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철학자들을 '영혼을 치유하는 자'라고 불렀죠. 현대인들이 고대 그리스 철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봅니다."<“그리스 신화와 철학으로 보는 영혼의 역사”, 장영란박사, 글항아리, 조선일보 인용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