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믿음!
신과 믿음은 매우 유사한 인식과 확신을 가지고 지난 수천 년 동안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이어져왔다. 하지만 반드시 평화적으로 찬양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신과 믿음은 오늘날에도 지배를 위한 수단과 구실로서 종교적 권력 도구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 현대의 종교 중에는 대단히 공격적으로 변한 종교도 있다. 그 종교는 전투적인 무언가를 믿음과 신으로 대체하여 가공할만한 공격력을 보이기도 한다. 나는 기독교적인 제도와 이미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지만, 믿음의 영적인 면에서는 아직도 매혹되어 있다.
흔히 사람들은 기독교의 양대 교파인 가톨릭과 개신교의 건물에서, 19세기 말까지는 종교적인 장중한 양식을 보며, 영혼이 깃들어 있는 깊고 자연스러운 확신을 가졌고, 또한 느꼈다. 이런 건축물이 원래대로 보존되어 있다면, 그 건축물들을 보면서 인간의 믿음으로부터 어떤 힘이 생겨났었는지를, 그리고 인간이 모든 예술품, 건축물, 장식품에서 어떤 업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를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이슬람교와 불교 등 모든 종교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말이다. 이런 믿음은 물질주의 -물질주의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왔지만, 영성이 결여된 채 형식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라 할 수 있다. 도덕성과 믿음을 통해 우리는 의심 대신 안정과 확신을 느낄 수 있고, 간혹 생기는 종교적인 회의를 떨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내게 가장 가까이 있는 곳, 예를 들어 나의 가정, 주위의 자연, 내가 손 댈 수 있는 예술, 창조의 의무라고 느끼는 내 행동에서 신성한 것을 찾고자 한다.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창조의 위대함은 우리가 그 창조에 직접 참여할 때 경험할 수 있다. 즉 신을 경험하고 싶어 하고, 창조라는 힘의 원천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에게만 신의 존재 증명이 가능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창조라는 힘의 원천은 그 숭고함에 있어서 어느 곳에서든지,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순간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인류의 계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미약하나마 이바지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종교적인 영성에 대한 보편적인 욕구를 악용하는 이데올로기화된 행동주의자들은 결코 건전한 종교적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삶의 원천은, 즉 믿음은 독선적이지도 공격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평화롭고 건설적이며 모든 인간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 이런 모습일 때에야 비로소 믿음은 의지할 수 있는 터전이 될 수 있으며, 평화로운 공존의 토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가는 길은 항상 열려 있다. 또 조건도 없다. 믿음으로 가는 길이 조건 없이 열려 있다는 사실 역시 나는 창조의 커다란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남자 나이 50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에서 일부 요약 발췌, 홀거 라이너스 지음 / 김용현 옮김, 한스미디어 >
<산비장이, 어린순을 나물로 식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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