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침과 콧물을 흘리는 것만으로 치매라면서 케어매니저에게 매달려 울었다는 딸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의 방귀 횟수가 너무 많다고 회사에게 문의하러 간 딸도 있다. 이 두사람 다 늙은 것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허리가 굽어 지팡이를 짚고 걷는 할머니를 본 어린아이가 “저거 뭐야?”라고 엄마에게 물었다고 한다. 아무리 핵가족시대라 해도 여기까지 오면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삼대 여덟 명이 모여 사는 가정에서 자랐다.
사춘기때는 식구들이 싫고 자유가 없어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행복한 시절이었다. 당시 우리집은 마치 침대를 낮게 한 것 같은 좁고 긴 식탁에서 가족 모두가 함께 밥을 먹었다. 맨 윗자리는 할아버지, 그 옆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오른쪽에는 아버지, 아버지 앞에는 어머니, 우리들은 아래쪽에 앉는다. 내 자리는 할아버지 건너편 맨 끝이다.
추운 겨울날 아침. 뜨거운 김이 솔솔 나는 된장국이 식탁에 오른다. 할아버지께서는 된장국을 드시며 늘 “아, 맛있다”라고 하셨다. 된장국을 썩 좋아하지 않던 나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신기하기만 했다. 된장국의 뜨거운 김이 할아버지 얼굴에 닿는다. 그러면 할아버지의 코에서 콧물이 흐른다. 그 콧물이 할아버지가 드시던 된장국에 떨어진다. ‘할아버지 콧물이 된장국에 들어갔네’ 하고 생각했지만, 근엄하신 할아버지께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된장국의 간을 맞추고 계신거야’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추운 데서 따뜻하게 김이 올라오는 음식을 먹으면 콧물이 나온다. 그것은 나도 경험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콧물에 강하다. 수건을 머리에 두르신 할머니는 마당에 있던 우물에서 솥과 냄비를 자주 닦으셨다. 닦은 솥과 냄비를 양손에 들고 대나무로 된 선반에 말리러 가신다. 걸으면서 뽕뽕 가벼운 방귀를 뀌신다. 걸음 수만큼 방귀가 나온다. 나는 할머니 뒤를 따라가면서 방귀를 세어보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방귀에도 강하다.
한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일은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결코 대충대충 할 수 없는 행위의 반복이다. 그렇기 때문에 익숙해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배설물과 마주하고 익숙해져야 한다. 콧물에 익숙해지면 다음엔 가래에도 익숙해진다. 소변에 익숙해진다. 대변에 익숙해진다. 익숙해지면 무서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 늙는다는 걸 받아들인다는 것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지식보다는 경험을 통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지혜가 생긴다.
같이 사는 시어머니 일로 상담을 받았다. 상담하러 온 사람은 상냥한 며느리였다. 그녀는 분주한 아침에 가족을 전부 보낸 뒤, 시어머니와 느긋하게 식사를 한다. 그때 곤란한 게 있는데, 시어머니가 치아에 야채가 끼면 틀니를 빼 그것을 손으로 떼서 입에 넣는다는 것이다. 틀니를 빼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그것을 보면서 식사를 계속해야 하는 며느리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나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됩니다. 그걸 보면 토할 것 같아요. 그렇다고 이제 와서 따로따로 식사를 할 수도 없고, 남편에게 말도 못하고….” 그녀는 가여울 정도로 침울해 보였다.
“그러면 테이블 중앙에 큰 꽃병을 놓고 꽃을 꽂아보세요. 시어머니가 틀니를 뺄 것 같으면 그 꽃으로 가리고 보지 않으면 어떨까요?” “아주 좋은 생각인데요.” 며느리는 무척 감탄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틀림없이 그 며느리는 꽃병을 놓지 않아도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어머니 틀니 안쪽에 미역도 붙어 있어요”라고 하면서, 시어머니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드릴 것 같다. 행복은 훈련이다. 늙는 것의 의미를 아는 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리고 그 길은 언젠가 자기가 가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노인수발에는 교과서가 없다”에서 일부요약 발췌“, 하나리 사치코 지음, 창해>
<풀솜대, 어린 순을 나물로 식용하며, 사지마비,생리불순,종기,타박상에 약으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