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슬퍼하며」
이 낡은 방에 쯔쥔이 없을 땐, 나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무료함 속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꺼내본다. 그게 과학책이건, 문학책이건, 무엇이든 마찬가지였다. 읽어 내려가다 퍼뜩 정신이 들어보면 벌써 십여 페이지가 넘어가 있었지만 책에 씌어 있는 말은 전혀 기억할 수가 없었다.
나는 곧 모자를 집어들고 그녀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녀의 숙부는 나를 앞에 세워놓고 욕한 적도 있다. 갑자기 한 발짝 한 발짝 그녀의 구두소리가 가까워졌다. 마중 나가보면 벌써 등나무 덩굴 밑을 지나오면서 얼굴에는 미소의 보조개를 띠고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의 것이에요. 그 분들, 아무도 내게 간섭할 권리가 없어요!” 이것은 우리가 교제한 지 반 년 만에, 이 곳에 있는 그녀의 숙부와 시골에 있는 부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한동안 말없이 생각하던 그녀가 분명하고 단호하게 그리고 조용히 한 말이다.
나는 그 때 나의 순수하고 열렬한 애정을 어떻게 그녀에게 표현했는지, 이미 잊어버렸다. 어찌 지금뿐이겠는가. 그 때 애정을 고백한 뒤에 이미 모호해졌고 밤에 다시 생각해 보아도 단지 몇몇 단편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동거한 지 한두 달 후에는 그 단편들조차도 종적을 찾을 수 없는 한바탕 꿈으로 변해 버렸다.
작년 늦봄은 가장 행복스럽고, 또 가장 바쁜 때였다. 내 마음은 안정되었으나 다른 걱정 때문에 몸도 마음도 분주하였다. 이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들은 함께 길을 걸었다. 공원에도 몇 번 갔지만 그보다도 살 곳을 찾으러 다닌 적이 더 많았다. 나는 길거리에서 때때로 탐색하고, 조소하며, 천시하고 경멸하는 눈초리와 마주치는 것을 느꼈다. 잠시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온몸이 움츠러들었기에, 즉각 나의 오만과 반항심으로 버티어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빛이 없고, 이런 일들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했으며, 의젓하게 느릿느릿 걸어가는 것이 마치 태연히 무인지경에 들어가는 듯했다.
집을 구하는 일은 사실 쉽지 않았다. 대부분은 저 쪽에서 이유를 내세우고 거절했다. 스무 군데 이상이나 보고서야 겨우 얼마 동안 그런 대로 살아갈 만한 곳을 찾아냈다. 우리의 가재도구는 아주 간단했다. 하지만 이미 내가 장만한 돈을 대부분 썼기 때문에 쯔쥔은 그녀의 유일한 패물인 금반지와 금귀걸이를 팔았다. 나는 그녀를 말렸지만 아무래도 팔겠다고 하기에 나 역시 더 이상은 우기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숙부와 다투고 나왔으므로 그녀의 숙부는 다시는 조카딸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노발대발하였다. 나도 역시 나를 위해 충고하는 체하면서, 실은 내가 하는 일에 겁을 먹고, 혹은 질투까지 하고 있는 몇몇 친구들과 잇달아 절교했다. 매일 일이 끝나는 것은 비록 저녁 무렵이었고, 인력거꾼은 그토록 느렸지만 그래도 어쨌든 둘만이 마주하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먼저 말없이 서로 지켜보다가, 이윽고 마음을 터놓고 친밀한 대화를 나누고, 그리고는 또 침묵에 잠기는 것이었다. 나는 점차 똑똑히 그녀의 육체와 그녀의 영혼을 읽고 있었다. 3주일이 못되어 나는 그녀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하였다.
쯔쥔은 나날이 발랄해졌다. 그녀는 동물을 좋아했다. 아마도 집주인에게서 전염되었는지 모르지만, 한 달도 못 되어 우리 가족은, 아쉐이라 부르는 얼룩 강아지 한 마리와 4마리의 병아리로 늘어났다. 애정이란 반드시 때때로 새롭게 생겨나고 성장하며 창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사실이다. 내가 쯔쥔에게 이 말을 하자 그녀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것은 얼마나 편안하고 행복스러운 밤이었던가!
안녕과 행복은 함께 응고되어야만 이렇게 영원한 안녕과 행복이 된다. 쯔쥔은 몸이 나고 혈색도 좋아졌지만 애석하게도 일이 바빴다. 집안일에 쫓겨 세상 이야기를 할 틈도 없었고, 하물며 독서 산책 따위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저녁때 집에 돌아와 그녀가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나 역시 불쾌하였다. 더욱이 나를 즐겁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녀가 억지로 웃는 얼굴을 꾸미는 일이었다. 다행히 그 내용을 듣고 보니, 별일은 아니었다. 주인집과 병아리 때문에 말다툼을 한 것이었다.
요리 만드는 것이 비록 쯔쥔의 장기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이것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녀의 밤낮 없는 마음씀에 대해 나도 또한 고락을 함께 하기 위해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그녀는 아침부터 밤까지 온통 땀을 흘려서 짧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붙고 두 손은 또 그토록 거칠어졌다. 게다가 아쉐이를 기르고, 병아리를 돌보고… 모든 것이 그녀가 아니면 안 될 일들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충고를 했다. “나는 안 먹어도 괜찮으니 절대로 이렇게 애쓰지 말아요!” 그녀는 흘깃 나를 바라볼 뿐 입을 열지 않았으며,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힘겨운 일을 했다.
진작부터 예상하고 있던 타격이 마침내 닥쳐왔다.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서 내가 문을 열어 보니, 내 사무실의 사환이었다. 그는 내게 해고한다는 내용이 담긴 한 장의 프린트한 종이쪽지를 건네주었다. 동거한다는 이야기가 국장의 귀에까지 들어간 것이다. 사실 이것이 타격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려 애썼다. 남의 글을 베껴 써주거나 글을 가르쳐주거나 혹은 힘을 들겠지만 책 번역 같은 일을 할 수도 있다고 벌써부터 작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래도 나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그렇게도 겁이 없던 쯔쥔의 얼굴빛이 변한 것은 더욱이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녀는 요즘 마음이 약해진 것 같았다. 인간이란 참으로 우스운 동물이어서 아주 자질구레하고 조그만 일에도 매우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에 말없이 서로 지켜만 보다가 점차 의논을 시작했다. 수중에 있는 돈을 최대한 절약하고, 글을 베껴주거나 글을 가르칠 데를 구하는 작은 광고를 내며, 한편으로는 『자유의 벗』 편집장에게도 편지를 써서 현재 나의 처지를 설명하고, 나의 번역본을 채택하여 어려운 시기를 도와달라고 부탁해 보기로 했다. 그녀는 몹시 수척하고 쓸쓸해보였다. 이처럼 보잘것없는 작은 일이, 의연하고 두려움을 모르던 쯔쥔에게 이토록 현저한 변화를 주리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었다.
...헉슬리가 ‘우주에 있어서의 인류의 위치’에서 결론지었듯이, 나의 이 집에서의 위치가 개와 닭의 중간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그 후 몇 차례의 다툼과 독촉을 거쳐 닭들은 점차 반찬으로 변했다. 그 후로는 아주 조용해졌다. 단지 쯔쥔만이 매우 기운이 없고 항상 쓸쓸하고 무료함을 느끼는 듯했으며 별로 말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인간이란 정말 쉽게도 변하는 것이로구나!’하고 나는 생각했다.
차가운 날씨와 싸늘한 표정은 나를 편안하게 가정에 있을 수 없게 핍박했다. 나는 일반 도서관에서 나의 천당을 찾아냈다. 그 곳은 표를 살 필요가 없었고, 열람실에는 두 개의 난로까지 있었다. 거기엔 비록 내가 읽을 만한 책은 없었지만 내가 생각할 수 없는 편안함이 있었다. 혼자 멍하니 앉아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니, 지난 반 년 동안 오직 사랑을 위하여 -맹목적인 사랑을- 그 밖의 인생의 의의를 모두 소흘히 했음을 깨달았다. 첫째는 생활이다. 사람은 반드시 생활을 해야만 사랑도 비로소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녀의 용기는 모두 상실되었다. 단지 아쉐이 때문에 슬퍼하고, 밥상을 마련하기에 골몰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다지 야위지 않았다는 것이다. 쯔쥔도 알아차린 것 같다. 그 이후로는 무감각한 것 같았던 냉정을 잃고, 비록 감추려고 애를 쓰나 역시 때때로 근심과 의혹의 빛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게 대해서는 훨씬 부드러워졌다. 나는 그녀에게 확실히 이야기하려고 하면서도 차마 말을 꺼낼 용기가 없었다.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도, 막상 그녀의 어린아이 같은 눈을 보면 잠시라도 억지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와 한담하면서 고의로 우리의 지난 일들을 끄집어냈다. 문학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외국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해서 언급했다. <인형의 집> 같은 작품 이야기를 하며 노라의 과단성을 칭찬하기도 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작년에 낡은 방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 것들이었으나, 현재는 이미 공허한 것으로 변하였다. 나의 입에서 나온 말이 나의 귀로 전해 올 때마다 몸을 숨긴 나쁜 아이가 등뒤에 숨어 짓궂고 냉혹하게 나를 흉내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었다. 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당신, 제 생각에는 요즈음 당신이 아주 달라지신 것 같아요. 그렇지요? 당신 - 사실대로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당신은 내게 솔직히 말하라고 하는데, 옳은 말이오. 인간은 허위적이어서는 안 되오. 솔직히 말하겠소! 왜냐하면 나는 이미 당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오! 그러나 이것은 당신에겐 훨씬 다행스러운 일이오. 당신은 아무런 걱정없이 일을 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오.....”
나는 동시에 커다란 변화가 닥쳐오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침묵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안색은 갑자기 흙빛으로 변하고 마치 죽은 사람 같더니 금세 생기를 되찾고, 눈에서도 순진하고 반짝이는 밝은 빛이 나타났다. 그 눈빛은 마치 기갈이 들린 어린아이가 자애로운 어머니를 찾는 것같이 사방으로 쏘아보았으나 다만 허공 중에서 찾고 있을 뿐 두려운 듯이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다행히 아침이었으므로, 나는 추위를 무릅쓰고 일반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거기에서 『자유의 벗』에 나의 소품문들이 모두 게재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생활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현재의 상태는 안 된다. 나는 오랫동안 소식을 끊었던 친구들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추위의 바늘은 내 영혼을 찌르고, 나를 마비의 고통으로 영원히 괴롭혔다. 나도 아직 날개 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나는 생각했다. 별안간 그녀의 죽음을 생각했다. 그러나 곧 자책하고 참회했다.
며칠이 지난, 겨울에서 봄철로 접어들 무렵의 일이었다. 평소처럼 오랫동안 밖에서 배회하고 상당히 어두워져서 집에 들어갔는데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집주인의 부인이 그녀의 부친이 그녀를 데려갔다고 간단히 말했다. 아무 말도 없이 갔다고 한다. 나는 못 믿겠다. 그러나 방안은 이상하게 적막하고 공허했다. 나는 여기저기 돌아보며 쯔쥔을 찾았지만, 단지 몇 개의 낡아 거무죽죽해진 가구들만이 보일 뿐, 그것들이 사람 하나, 물건 한 가지를 숨길 능력이 없음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편지나 쪽지도 없었다. 다만 몇 십 개쯤 되는 동전이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우리 두 사람의 생활비의 전부였다. 지금 그녀는 정중하게 이것을 나 한 사람에게 남겨주고, 무언중에 이것으로 며칠이든 오래 생활을 유지하도록 일러주는 것이었다.
일자리를 부탁하러, 그간 문안도 드리지 않던 백부를 찾아갔다. 그는 우리들의 지난 일을 모두 알고 있었고, 매우 냉담했다. “물론 자네는 여기 있을 수 없네. 그 뭔가, 자네 친구인가, 쯔쥔이라는 여자, 자네도 알고 있을 테지만, 그 여자 죽었네. 정말이구 말구. 이유? 누가 아나? 여하튼 죽었다더군.” 나는 이미 어떻게 그에게 작별하고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쯔쥔은 이제 다시는 작년처럼 올 수 없게 되었다. 그녀의 운명은 이미 내가 준 진실로 결정지어졌던 것이다. - 사랑 없는 인간은 죽고 만다는 진실. 물론 나는 여기에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할까?’
주위는 광대한 공허이고 또 죽음의 정적이 있었다. 나는 이제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 다만 광대한 공허 속에 앉아서, 이 죽음의 정적이 나의 영혼을 침식하는 대로 맡겨두었다. 하늘이 잔뜩 찌푸린 어느 날, 한 마리의 작은 짐승이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야위어 거의 반은 죽어가고 있는, 온 몸이 흙투성이인 개, 그것은 아쉐이였다. 내가 지짜오 골목을 떠난 것은 집주인들이나, 그 집 식모의 차가운 눈초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태반이 이 아쉐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할까?’ 나는 쯔쥔의 장례식을 떠올렸다. 혼자서 공허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회색의 머나먼 길을 걸어간다. 그러나 이내 주위의 위엄과 차가운 눈초리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나는 정말로 귀신이라든가 지옥이라는 것이 있기를 바란다. 아직도 그토록 긴, 나는 살아 있다. 나는 반드시 새로운 삶의 길을 향해 발을 내딛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첫 걸음은 - 오히려 나의 회한과 비애를 적는 것이다. 쯔쥔을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 나는 역시, 단지 노래 부르는 것 같은 울음소리로 쯔쥔을 장송하고, 망각 속에 묻어버리리라. 나는 잊어야만 한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쯔쥔을 장송하는 것마저 결코 다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새로운 삶의 길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뎌야만 한다. 나는 마음의 상처 속 깊숙이 진실을 감추어 묵묵히 전진해야 한다. 망각과 거짓말을 나의 길잡이로 삼고서….
< “루쉰 소설 전집“,루쉰 지음 >
보수사회에서의 동거로 인한 해고, 문학인으로서의 배고픔을 겪어면서도 둘만의 사랑을 굳건히 지켰지만 고달픈 환경으로 인한 트러블...헤어짐의 단초가 되었던 말들! 지난과정은 분명 아름다웠지만 희미하게 느껴졌고 헤어짐은 짧고 단호하며 충격을 주었다. 사랑 결핍으로 인한 죽음 그리고 자책과 참회 그리고 산자는 살아야한다는 논리 등 소설속에서 또 다른 한 인간의 삶을 투영해 보았다!
<변산 바람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