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 시대에도 철학이 필요한 이유 – 해리 프랭크퍼트(프린스턴 대학 철학과 교수)
철학자는 일반 대중의 지지나 참여 같은 것과 무관하게, 자신만의 연구를 수행하는 직업이다. 과거에도 철학자들은 이런 길을 걸어왔다. 따라서 철학자들에게 사회복지나 도덕적 이상 같은 것을 널리 알리거나 발전시켜야 할 책임 같은 것은 없다. 명확한 조건, 엄격한 논리, 증거 같은 것을 추구해야 할 철학자가 사회복지나 도덕적 이상 같은 것에 대해 떠들고 다닌다면 그것은 바로 허튼 소리가 되고 만다. 당장 더 좋은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현실적인 이상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철학처럼 더 엄격한 이상을 추구하겠다는 자세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 세상에 균형이 유지될 수 있다.
오늘날 철학은 바람이 불지 않는 무풍지대에 있다. 철학이 사람들에게 창의적인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그 충동에 대해 모든 사람이 반응하는, 즉 사람들의 지성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바람을 전혀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최첨단 기술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이와 관련한 문제들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철학이 사람들에게 그 길을 제대로 제시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미래에 커다란 물결이 종교 쪽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까지 철학분야에서 종교적 분야가 터부시되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의 많은 지식인들이 종교를 과거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믿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도덕철학의 범위 안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용서, 충성, 인생의 의미 등을 주제로 논문과 책을 쓰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철학자들이 가까운 미래에 당장 종교에 대해 앞 다투어 연구하고 토론을 벌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의 꺼져 희미해진 이 불꽃에 누군가 다시 불을 붙이기만 하면, 그 불길은 크게 타오를 것이다.
<“WHAT’S NEXT(왓츠 넥스트)”에서 일부 요약 발췌, 제인 버킹엄, 티파니 워드 지음, 웅진윙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