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에 실려 파라다이스 호텔의 주차장으로 날아갈 때도 나는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곳에서는 등반 감시대장인 게이터가 나를 면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분의 이름이 마틴 그레이엄 맞습니까?” “네.” “나이가 어떻게 되죠?” “대략 56세 정도요.” “맞아요. 그 사람이었어요. 앤드루 씨, 1981년에 미국 역사상 최악의 등반 사고가 이곳 레이니어산에서 일어났어요. 그 비극적인 날에 일어난 눈사태가 등반객 11명을 잉그러햄 빙하의 깊은 구렁 속으로 밀어 넣었죠. 바로 오늘 사고가 일어났던 곳 근처입니다. 하지만 선생은 그때 워싱턴 대학교 의과대학의 젊은 교수였던 마틴 그레이엄이 그 눈사태가 발생한 지점 바로 위에서 홀로 등반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아마 모르실 겁니다.
사고가 일어난 뒤 조사를 진행할 때 그는 산림 경비대원들에게 자신이 눈사태를 유발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은 눈사태 직전에 미끄러져 떨어졌지만 바로 자기 제동해서 멈춰 섰다더군요. 하지만 그는 미끄러지면서 눈과 작은 얼음 덩어리들에 충격을 가해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지게 했는데, 그것이 곧바로 자신이 있는 곳 아래에서 대형 눈사태를 촉발시켰다는 겁니다. 우리 경비대원들은 즉시 올라가서 현장을 살펴본 후, 그의 말대로 그가 미끄러져서 눈사태가 발생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하지만 그레이엄 박사는 계속 자신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그레이엄 박사의 죽음은 나를 우울과 절망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그가 11명 등산객들의 죽음을 자기 탓으로 돌렸듯이 나도 그의 죽음을 내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샌드라는 내가 억지로 그를 끌고 간 것은 아니라면서 나를 위로하려 했다. 그레이엄 박사의 사고 소식은 100개가 넘는 케이블 TV 채널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그 이야기 - 워싱턴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1981년에 일어난 눈사태로 등산객 11명이 사망한 사건의 책임을 지고 시카고로 사라졌다가 시골 의사가 된다. 그는 시카고의 도심 지역과 브라질에 빈민을 위한 병원을 열어 수백 명의 생명을 구한다. 20년 후에 다시 레이니어산을 등반하다가 눈사태를 만나 산에서 영면한다. - 는 너무 감동적이어서 높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내가 더 이상 절망으로 깊이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 샌드라는 내게 독서를 권했다. 책들은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절망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책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힘이었다. 추도식이 끝난 며칠 뒤 행크가 방문해 말했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입니다, 앤드루 씨. 그레이엄 박사는 좋은 죽음 이전에 좋은 삶이 선행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좋은 삶을 사십시오. 그러면 절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좋은 삶을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매 순간을 사랑과 감사, 그리고 연민의 마음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그레이엄 박사는 그렇게 했습니다.”
사고 직후의 가장 암울했던 시기는 지나갔다. 대체로 모든 것이 아주 좋은 상태다. 그러나……. 그러나 뭐란 말인가? 여전히 뭔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여보, 얘기 좀 합시다.” 내가 말했다. “나 돌아가야 해.” “어디로요?” “산으로. 그레이엄 박사한테 작별 인사를 제대로 못했거든. 이 점이 계속 내 발목을 잡고 과거에 얽매이도록 하고 있어.” “오, 앤드루. 싫어요. 눈사태가 또 일어나면 어떡해요?” “어쩔 수 없어. 난 가야 해. 다음 주가 1주기니까 화요일에 떠날 거야.” 두 번째 산행은 첫 번째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나는 남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가명을 써서 단독 등산객으로 등록했다. 출발 다섯 시간 뒤 드디어 캠프 뮤어에 도착했다. 나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쳤다. “안녕하십니까, 앤드루 씨.” “안녕하세요, 게이터 씨.” “일 년이나 됐죠. 선생을 이곳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번 주에 근무를 자원했습니다. 계획이 어떻게 되십니까?” “한밤중에 잉그러햄 평원에 올라 거기서 밤을 보낼 작정입니다.” “저와 로프를 함께 묶는 게 어떻겠습니까?” “말씀은 고맙지만 전 이 일을 혼자 해야 합니다.” 산사람이었던 게이터는 나를 이해했다.
한밤중에 몸을 일으킨 나는 한 시간 뒤에 등산을 시작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그때 헤드램프의 불빛을 통해 로프를 쥐고 빙하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한 고독한 인물의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게이터였다. 이번에 나는 겸손하게 받아들였다. 우리는 로프로 몸을 이어 맸고 그가 길을 인도했다. 약 한 시간 후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는 잉그러햄 빙하 위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갑자기 내 발 밑에 있던 눈이 무너져 내렸다. “추락, 추락.” 본능적으로 나는 얼음에 피켈을 내려찍으려 했다. 그러나 피켈이 계속 미끄러지는 바람에 나는 크레바스 밑으로 더 멀리 떨어져갔다. 희망을 포기하려는 찰나 로프가 팽팽해졌고 나는 마치 뻣뻣한 고무 끈에 연결된 것처럼 엄청난 충격을 느꼈다. 저 위에서 게이터가 내 추락을 멈춰 세웠던 것이다. 크레바스에서 안전한 거리로 이동한 후 나는 멈춰 반성했다. 사람은 누구나 진정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내가 얼어붙은 듯 서 있는 동안 게이터는 텐트를 쳤다. 게이터는 텐트 안으로 쉬러 들어갔고 나는 밖에 머물기로 작정했다.
내 머릿속에서는 일 년 전 있었던 사건 현장의 필름이 되풀이해서 돌아갔다.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까? 그때 일을 몇 번이나 곱씹어 봐도 죽음이라는 결과는 똑같았다. 나는 배낭의 한쪽 주머니에서 그레이엄 박사가 맨 처음에 내게 주었던 편지를 꺼냈다. 헤드램프의 불빛에 의지해 다시 읽어 나가자 그레이엄 박사가 내게 가르치려 했던 게 무엇인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편지를 내려놓자 내 마음은 방랑을 시작했다. 내 인생, 내 가족, 내 믿음에 대해 생각했다.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이었나? 나는 무엇을 하려고 세상에 태어났을까? 내가 어떻게 세상을 조금이라도 달라지게 할 수 있을까? 분이 시간이 되고 시간이 초가 되면서 시간은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눈은 뜨거나 감았다. 기온은 계속 떨어졌지만 나는 내 개인적 비전의 따뜻한 열기를 받고 있었다. 그것은 주변적이고 별 의미 없는 삶을 초월한, 어떤 차원 높은 삶에 대한 비전이었다. 떠오르는 태양은 서서히, 남동쪽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워싱턴 주는 잠에서 깨어나 새 날을 맞이하고 있었고, 나는 새 삶에 눈뜨고 있었다.
존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나는 게이터와 짐을 꾸리고 하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산을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들를 곳이 있었다. 마침내 얼음 속의 깊은 구렁, 지금도 그레이엄 박사의 육체를 움켜쥐고 있는 공간에 도달했다. 그의 존재를 느꼈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그와도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그가 영원한 안식을 찾기를 기도했고, 작별을 고했다. 그날 오후 산을 내려오며 휴대전화로 샌드라에게 내가 살아 있음을 알렸다. 그 뒤 파라다이스 호텔로 들어가서 이온음료를 샀는데, 바로 그때 익숙한 목소리들이 일제히 들려왔다. “깜짝 놀랐죠!” 어찌된 일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샌드라와 켈리와 케빈이 크레이버 가(家)의 샌드위치로 숨을 막히게 했다.
모두가 파라다이스 호텔의 로비 한가운데서 한마음이 되면서 가족의 사랑이 내 온몸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모닥불에 나무토막을 던져 넣고는 모두를 가까이 불러모았다. 내 여행의 경험을 공유할 시간이었다. 말을 시작했다. “그동안 어리석게 살아와서 미안하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과거의 일이고, 과거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법이란다.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현재와 미래뿐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바로 이 아빠가 하려는 것이다. 삶은 우리 각자에게 긴 여행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사는 법을 배우고, 삶을 지각하는 법을 배우며, 죽는 법을 배우지. 내 여행이 너희들의 여행과 똑같지는 않지만 인생의 여정에서 배우는 교훈은 보편적이란다. 이 교훈들은 우리 모두가 삶에서 추구하는 것, 곧 진정한 부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주지. 한편 우리는 자신 안에 위대함의 씨앗을 갖고 있는데, 이 씨앗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해. 그 씨앗에 물을 주기 위해 비를 몰고 온 폭풍우가 필요하며, 또 씨앗에 성장 동력을 제공할 햇볕이 필요하다. 시련 없이 인생길을 여행하는 사람은 없다. 살면서 반드시 폭풍우를 만나게 되는데, 그 폭풍우를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결국에는 태양이 다시 떠오른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라.”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지난 2년간 그레이엄 박사, 행크, 타마라, 에드윈, 우리 가족들의 도움으로 아빠는 진정한 부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제 그것을 우리 가족과 나누게 돼서 무척 기쁘다. 아빠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배웠단다. 첫째, 삶을 변화시키는 사람의 힘, 그 힘의 살아 있는 화신이 되어라. 둘째, 핵심 가치에 충실해라. 셋째, 목적에 이끌리는 삶을 살아라. 넷째, 목표를 통해 도전의지를 불태워라. 다섯째, 관계를 소중히 하라. 여섯째, 건강을 중시하라. 일곱째, 물질적 자산을 현명하게 이용하라. 여덟째,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아홉째, 현명한 조언자에게 마음을 열어라. 만약 이 아홉 가지의 보편적 원칙들을 지키며 살아간다면 너희도 진정한 부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우리에게 상처를 준 자들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 자신이 고통의 원인일 때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아버지가 내 곁에 없었던 것에 대해 그분을 용서했다. 너희도 아빠가 그동안 곁에 있어주지 못한 것에 대해 용서해주기 바란다.”
< “블루 프린팅”에서 일부 요약 발췌, 스티브 샌듀스키ㆍ 론 카슨 지음, 리베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