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은 사람들이 정치인을 고상한 존재로 인식하고, 인격적인 경건함이나 완벽성보다는 매우 적절한 표현으로 정치인을 정의함으로써 정치인에 대한 사람들의 지나친 기대를 바꾸기를 원했다. “인간의 완전함에 대한 큰 기대는 성직자에게는 적절하지만 수상에게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처칠은 정치인을 성직자라는 기준에서 볼 것이 아니라 변화무쌍하고 임기웅변에 능하며, 처세술에 밝은 범속한 인간으로 보아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처칠은 ‘여성이란 가정을 돌보고, 남편을 섬기는 한편 자녀를 낳고 키우는 것이 천직임을 진리로 알도록’ 교육을 받은 세대의 사람이었다. 다음과 같은 처칠의 의견은 그의 여성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여성은 네 명의 자녀를 가져야 한다. 어머니에게 한 자녀, 아버지에게 한 자녀, 사고(事故)에 대비한 한 자녀, 인구 증대를 위해 한 자녀.” 이 고백은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는 여성에 대한 처칠의 그림이었던 것이다.
처칠은 자신의 흉상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리치몬드를 다시 찾았을 때 엄청나게 뚱뚱한 여성이 정신없이 그에게로 다가와 정답게 속삭이면서, “처칠 씨, 당신의 흉상 공개를 보려고 새벽부터 일어나 100마일을 달려왔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해요.” 처칠은 그녀의 지독하게 뚱뚱한 몸을 보면서 “부인, 사실 저도 부인의 풍만한 몸매를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점을 부인께서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처칠은 이처럼 공식 석상에서든지, 사석에서든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익살과 재치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처칠은 아내를 고양이로 불렀고, 처칠의 아내는 처칠을 돼지라고 부를 만큼 처칠의 결혼생활은 활기와 웃음으로 넘쳤는데, 그의 다음과 같은 고백은 처칠의 결혼생활 조감도(鳥瞰圖) 같은 말이 될 것이다. “아내를 설득해서 나와 결혼하게 만든 것처럼 내 생애에서 뛰어난 업적은 없다.” 처칠이 아내와 결혼한 사실을 뛰어난 업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아내와 사는 것이 엄청난 짐이라는 말이 되기도 하고, 아내를 선택한 일이 매우 현명하고 지혜로운 결단이었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이것이 처칠의 진면(眞面)이기도 한데, 처칠은 항상 생각하게 하는 말을 남기면서, 또한 웃음을 흘리게 했던 것이다.
처칠은 둘째 딸 세라가 미국계 오스트리아인인 유명 코미디언 빅 올리버의 아내가 되었을 때 속이 너무 상했는데, 그 이유가 있었다. 올리버는 두 번의 이혼 경력이 있었고, 세라보다 20년이나 연상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저녁 식사 때 손님을 데리고 온 올리버는 장인과 가까워지고 싶은 심정으로 “장인어른, 장인어른이 알고 있는 가장 위대한 정치인은 누구입니까?” 처칠은 졸다가 갑자기 날카롭게 반응하며, “베니토 무솔리니라네.” “도대체 왜 그가 가장 위대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사위를 처형할 정도로 진정한 용기를 가진 유일한 정치인이 바로 무솔리니까.” 처칠의 생각에는 무솔리니의 사위이자 외무부장관이었던 카운트 키아노는 바로 그의 둘째 사위 올리버였으며, 나도 무솔리니처럼 사위를 처형해버리고 싶지만, 나는 무솔리니만큼 위대한 정치가는 못 된다는 개탄과 불만의 가시를 그 말 안에 숨긴 채 사위에게 대답한 것이다.
회의장에 도착한 처칠이 급히 화장실로 들어가 볼일을 끝내고 나왔는데, 그때 처칠을 유심히 훑어보던 어떤 사람이 처칠에게 “각하, 지퍼가 열려있습니다”라고 처칠의 바지를 가리키자 처칠은 껄껄대고 웃으며 “죽은 새는 새장 밖을 나갈 수 없는 법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당시 처칠은 고령이었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별 볼일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자조적인 농담을 한 것이다.
처칠은 자존심을 지키는 재치 넘치는 말과 경구를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그의 경구 중 다음의 묘비명처럼 유명한 경구는 없다. 이 묘비명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때 프랑스 마을에 처음 바쳐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 앞에서는 단호했으며
패배의 순간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승리의 순간에도 관대했으며
평화시에는 호의를 베풀었다’
그는 사람이 남긴 격언을 마지막까지 남을 인간의 규범처럼 생각했는데, 사실 격언은 시대와 상황을 초월해서 무한한 시간 여행을 하며 면면히 흘러가는 역사의 흔적 같은 것이다. 처칠은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격언의 가치를 피력하고 있다.
‘문명이 타락하면 도덕은 없어지지만 격언은 계속 남을 것입니다.’
처칠은 절대로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며, 현재에 충실하되 미래지향적인 인물로 살았다. 그가 77세에 두 번이나 수상 직을 역임한 사실은 꿈을 잃지 않고 미래를 향해 얼마나 역동적으로 살았는가를 보여준다. 다음과 같은 말은 처칠의 삶의 태도를 살피게 해 준다.
‘현재 자리에 있는 사람이 사람의 과거를 판단하려 할 경우, 미래를 잃게 됩니다.’
<“위트의 리더 윈스턴 처칠”에서 일부 요약 발췌, 도미니크 엔라이트 편저, 한스컨텐츠 >
<윈스턴 처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