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심리학, 그 위험과 희망 - 인간 악의 근원적 치료법, 사랑!
도덕적 판단의 위험 : 중세의 종교 재판, 유태인 대학살, 밀라이 참사…. 우리가 남을 악하다고 판단할 때마다 우리 자신이 악을 행하는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에 너무도 충분한 증거들이다. 악이란 하나의 도덕적 판단이다. 나는 그것이 과학적 판단이기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과학에도 위험이 있고, 도덕적 판단에도 위험이 있다. 그러나 도덕적 판단을 완전히 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엔 동정의 한계, 용납의 한계, 허용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들이 실재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일반적인 판단들과 특히 도덕적 판단들을 내리지 않고는 건전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비판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남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판단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지 결코 아무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었다. 악은 자기 성찰을 무서워한다. 나는 인간의 악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그 모습의 진실성을 한층 밝혀 줄 것으로 믿고 있다. 비록 우리가 선과 악의 문제를 포함한 인간 실존의 의미를 궁극적으로 분별해 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책임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또한 삶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도덕적 판단들을 계속해서 내려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만 어떻게 지혜롭게 판단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다.
사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일반 대중에게 심리학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그들의 도덕적 지적 수준이 극적으로 향상되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우리에게 편견, 숨은 적대감, 비합리적인 공포, 지각의 맹점, 정신적 강박 그리고 성장에의 저항 등의 실재성과 그 근원에 대한 관심들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진보와 도약은 가능해지는 것이다. 오히려 악의 심리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늘어가는 것 자체가 그것의 남용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방법론 : 악의 추함에는 또 다른 측면이 남아 있다. 악의 음울함, 저속하고 하찮고 천박한 음울함이다. 만약 우리에게 행운이 주어져 살아 있는 성인(聖人)을 직접 만나 보게 된다면, 그들의 인격이라는 것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되었던 것이다. 인간을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놓고 보았을 때, 한쪽 끝에는 성인이 있다면 다른 한쪽 끝에는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해 가장 자유롭지 못한 악인이 있다. 악한 사람들이 온전한 정신의 탈을 쓰고 벌이는 가면 무도회가 이토록 성공가도를 달릴 때, 그들의 파괴성이 이토록 ‘정상적인’ 것이 되어갈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이 가면 무도회를 묵인하는 일과 그 위장에 속는 일을 멈춰야만 한다.
그리고 나선 무엇을 해야 할까? 아주 오래된 격언에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다. “적을 알라.” 우리는 이 가련하고 어리석고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단지 가려내는 데서만 그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연구해야만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나는 사랑이라는 방법을 통해 악을 안전하게 연구하고 취급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생이 의미를 갖는 것은 선과 악 사이의 싸움 속에서이고, 나아가 선이 이길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다. 그 희망이 바로 우리의 대답이다. 악은 선에 의해 패배 당할 수 있다. 즉 악이란 사랑에 의해서만 정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에 대한 우리의 공격, 과학적 공격은 물론 다른 공격들까지도 그 방법론은 바로 사랑이어야만 한다. 그들을 사랑한다는 출발선에서만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에서 요약 발췌, M. 스캇 펙 지음/윤종석옮김,비전과리더십>
<사철쑥,인진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