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쾌락·행복

[중산] 2011. 4. 24. 17:38

 

 

 

쾌락

누구나 살기를 바라는 까닭에 또한 쾌락을 욕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활동이요, 또 사람마다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것에 관해서 가장 사랑하는 능력을 가지고 활동한다. 가령 음악가는 여러 가지 음률에 관해서 자신의 청각을 가지고 활동하고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론적인 문제에 관해서 자신의 이지(理知)를 가지고 활동한다. 그런데 쾌락은 이러한 활동을 완전하게 하므로 또한 사람들이 욕구하는 삶도 완전하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쾌락을 찾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쾌락은 모든 사람의 삶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고, 또 삶은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쾌락 때문에 살기를 택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산다는 것 때문에 쾌락을 택하는가 하는 것은 여기서 문제 삼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산다는 것과 쾌락은 사실 활동이 없으면 쾌락이 생기지 않으며, 또 모든 활동은 거기 따르는 쾌락으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뻔히 추한 것을 쾌락이라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아주 타락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다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좋다고 생각되는 쾌락들 가운데 어떤 종류의 쾌락이 그리고 어느 쾌락이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쾌락은 활동에 수반하는 것이므로 거기 대응하는 활동에서 명백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완전하고 다시 없이 행복한 사람의 활동이 한 가지이건 혹은 그 이상이건, 이러한 활동을 완전하게 하는 쾌락이야말로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에게 고유한 쾌락이요, 나머지 쾌락은 제2차적이고 부분적으로 그렇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쾌락과 고통의 고구(考究)는 우리가 반드시 고찰해야만 할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도덕적인 덕과 악덕은 고통 및 쾌락에 관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은 쾌락을 수반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쾌락에 대하여 크게 세 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즉, 어떤 이들은 선과 쾌락은 같은 것이 아니므로, 어떤 쾌락이나 선이 아니다 -그 자체에 있어서나 또는 수반적으로나- 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약간의 쾌락은 좋은 것이지만 대부분의 쾌락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셋째로 모든 쾌락이 선이기는 하지만 쾌락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일 수는 없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

 

쾌락은 선이 아니고, 또 최고선도 아니라는 귀결이 반드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쾌락은 필연적으로 하나의 선이다. 설사 어떤 쾌락이 나쁜 것이라 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어떤 쾌락이 최고선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마치 인식 가운데에는 나쁜 인식도 있으나 어떤 인식은 최고선이 될 수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만일 쾌락이 선이 아니라고 하면 행복한 사람이 즐거운(즉, 쾌락 있는) 생활을 한다고 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쾌락이 선이 아니고 행복한 사람이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는 수도 있다고 하면 무엇 때문에 그에게 쾌락이 필요하겠는가? 쾌락이 선도 악도 아니라면, 고통도 역시 선도 악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고통을 피할 까닭이 무엇인가? 그러므로 만일 선한 사람의 활동이 더 즐거운 것이 아니라면, 그의 생활 역시 다른 어느 사람의 생활보다도 더 즐거운 것이 못 될 것이다.

 

 

육체적인 여러 가지 선에는 지나침이 있을 수 있고, 또 나쁜 사람은 필수적인 쾌락을 추구함으로써 나쁜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그것을 추구함으로써 나쁘다(누구나 어느 모로는 맛있는 음식이나 술이나 성교를 좋아하지만, 누구나가 알맞게 좋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통의 경우에는 사정이 이와 반대이다. 왜냐하면 그는 고통의 과도를 피하는 것이 아니고, 고통이면 덮어놓고 피하기 때문이다. 사실 쾌락의 과도에 반대되는 것은 고통만이 아닌데, 이런 과도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도 쾌락의 과도가 아니면 고통밖에 없다.

 

 

사람들에게 육체적 쾌락이 가장 바람직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쾌락이 고통을 몰아내며 격렬한 것으로서 다른 쾌락에서 기쁨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짐승들과 어린 아이들은 좋지 않은 종류의 쾌락을 추구하고, 사려있는 사람은 이런 것들로부터 조용히 해탈하여 고통 없는 상태에 이르기를 추구한다. 즉 짐승들과 어린 아이들이 추구하는 쾌락은 욕정과 쾌락이 따르는 쾌락, 즉 육체적 쾌락(바로 이 쾌락이 그런 성질을 띤 것이기에 말이다)과 과도한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바로 방종한 사람으로 하여금 방종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들이다. 이런 까닭에 절제 있는 사람은 이런 쾌락을 피한다. 그는 또한 자기 나름의 쾌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

행복이야말로 인간이 영위하는 모든 일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행복은 그 자체로 바람직한 것들에 속하고, 다른 어떤 것 때문에 바람직한 것들에 속하지 않는다. 행복은 아무 것도 결여되어 있지 않고 자족적인 것이다. 행복한 생활은 덕 있는 생활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덕 있는 생활이란 노력을 요하는 것이요, 오락적인 것이 아니다. 그리고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들은 재미있는 오락적인 것들 보다 더 좋으며, 또 무엇이든지 두 가지 것 가운데 보다 좋은 쪽의 활동에 좀 더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지 그것에 고유한 것이 본성상 그것에 가장 좋고 즐거운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성을 따르는 생활이 가장 좋고 즐거운 것이다. 이성은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을 인간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생활이 또한 가장 행복한 생활이다.

 

 

자기의 이성을 따라 활동하고 그 이성을 가꾸고 자라게 하는 사람은 최선의 정신 상태에 있으며 또한 신에게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만일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신들이 인간의 여러 가지 일을 조금이라도 살펴준다면, 가장 좋은 그리고 가장 그들을 닮은 것(즉, 이성)을 그들이 기뻐하고 이것을 가장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보답해 준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사람이 신들에게 소중한 일에 마음을 쓰고 또 옳게 그리고 고귀하게 행동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속성을 누구보다도 많이 지니고 있는 것은 철학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철학자는 신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그리고 철학자는 또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Ethica Nicomachea)”에서 극히 일부요약 발췌,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라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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