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제와 자제하지 못함
방종한 사람은 뉘우칠 줄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의 선택에 충실하다. 그러나 자제력이 없는 사람은 뉘우칠 줄 아는 것이 보통이다. 방종한 사람은 고쳐질 가망이 없으나 자제력이 없는 사람은 고쳐질 가망이 있다. 왜냐하면 악덕은 마치 수종(水腫)이나 폐결핵과 같은 질환인 데 반하여, 자제력이 없는 것은 간질병과 같기 때문이다. 사실 전자는 지속적인 불행이고, 후자는 지속적이 아닌 불행이다. 또 자제력이 없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폭발적인 사람들>이 <이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보다 낫다. 왜냐하면 후자는 아주 약한 정념에도 넘어가고, 또 전자와는 달리 미리 숙고함이 없이 행동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자제력이 없는 사람은 대부분 사람들보다 훨씬 적은 양의 술을 마시고도 빨리 취하는 사람들과 같다. 그러므로 자제력이 없다는 것이 악덕이 아님은 자못 명백하다(물론 어느 의미에서는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왜냐하면 자제력이 없다는 것은 선택에 반대되는 것인 데 반하여 악덕은 선택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제력이 없는 사람은 확신이 없어 올바른 이치에 어긋나는 지나친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기가 쉽고, 방종한 사람은 본래 그런 쾌락을 추구하도록 된 사람인 까닭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전자는 쉽사리 마음을 돌리고 태도를 바꿀 수 있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결국 방종은 자제력이 없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다.
자제는 좋은 상태이고, 자제력이 없는 것은 좋지 않은 상태임은 분명하다. 어느 의미에서는, 자제하는 사람은 어떠한 억견에든지 따르고, 자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따르지 않는 것이지만, 무조건적으로는 참된 억견을 따르는 것이 자제력이 있는 사람이다. 사려(실천지)가 있으면서 자제하지 못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려있는 사람은 그저 알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실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제력이 없는 사람은 실천할 힘이 없다.
자제력이 없는 것과 자제력이 있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상태가 지나친 데로 나아간 것과 관계한다. 즉, 자제력이 있는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들 이상으로 자기가 결심한 바를 잘 지켜나가는데, 자제력이 없는 사람은 그 결심한 바를 지켜나가는 능력이 대부분의 사람들 이하이다. 또 여러 형태의 자제력이 없는 것 가운데 흥분하기 쉬운 사람은 숙고를 하되 자기가 결심한 바를 지켜나가지는 않는 사람보다는 고치기가 더 쉽고, 또 습관으로 말미암아 자제력이 없는 사람은 본성적으로 자제력이 없는 사람보다 고치기가 더 쉽다. 본성을 고치는 것보다는 습관을 고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Ethica Nicomachea)”에서 극히 일부요약 발췌,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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