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해석학
R: 우리는 지각할 수 있는 세계 너머에, 신까진 아니더라도 어떤 신적인 것, 영적인 세계가 있다고 믿도록 배웠습니다. 그리고 해석학은 우리가 자신을 그 신성과 통합하도록 이끕니다. 다른 한편으로, 예를 들어, 우리는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갈 때 일련의 신앙, 신화, 의례가 새로 구축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이고 ‘유물론적인’ 과학을 알면서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변화들과 연관된 신앙이 초역사적인 의미, 초월을 내포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습니까?
E: 정령이나 천사가 아닌, 실족하는 인간에게, 성스러움의 경험은 특정한 몸, 특정한 정신, 특정한 사회적 환경을 매개로 일어나는 것이 명백합니다. 종교학자에게 중요한 것은, ‘농경의 발명’으로 인간이 생명의 순환적 성격을 보다 깊이 통찰하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물론 사냥꾼도 동물들이 봄에 새끼를 낳았다는 것을 알았겠죠. 하지만 파종과 수확의 인과관계, 씨앗과 정액의 비슷한 관계를 알아차린 건 바로 농부였어요. 또 동시에 여성의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 중요성이 확고해졌죠. 아시다시피, 바로 기술적 발견, 농경을 통해서, 사냥꾼들이 직면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오한 ‘신비’가 인간 의식에 드러났어요. 사람들은 이 우주가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 생명과 죽음이 밀접하게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리듬과 주기의 지배를 받고, 그래서 씨앗이 죽지 않고는 다시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기술적인 발견이 인간의 고유한 존재 양식을 보여준 것입니다.
요컨대 제가 정확한 답변을 드리자면, 기술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서 고대의 종교적 가치들은 폐기되진 않았어도 덜 중요해진 것이 분명합니다. 다른 경제적 조건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들이 수립되었는데, 이 새로운 경제가 이내 종교적이고 창조적인 의의를 드러냈다는 것도 분명해요.
비非신비화의 비泌신비화
R: 한편의 시詩가 그 작품을 가능케 한 역사적 상황이나 기교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환원해 버린다면, 참 딱한 일이지요!······ . 시가 그렇다는 걸 이해한다면, 종교도 마찬가지라는 걸 왜 이해 못하겠습니까?
E: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래서 내가 항상 종교적 상상의 세계와 시적 상상의 세계를 비교하는 것이에요. 이 비교를 통해서, 종교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도 종교에 쉽게 접근할 수 있지요.
R: 종교 분야가 상상과 상징의 영역이라는 말씀이신가요?
E: 물론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모든 상상의 세계가, 불행한 용어를 쓰자면, 종교적인 세계였다는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왜 ‘불행한 용어’라고 했냐 하면, 우리가 그 용어를 쓸 때는 보통 이교의 다신론이나 유대-기독교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춤, 시, 조형 미술이 자율성을 획득한 것은 최근이에요. 원래는 그 모든 상상의 세계들이 종교적인 가치와 기능을 갖고 있었죠.
<“미로의 시련”에서 극히 일부요약 발췌, 미르체아 엘리아데 지음, 북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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