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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에 기댄 위태로운 삶

[중산] 2011. 10. 7. 12:42

 

빚에 기댄 위태로운 삶: 2007년 봄부터 시작된 금융위기가 점점 고조될수록 각국 정부 및 중앙은행은 국제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더욱 대규모로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고, 금융위기가 채무위기로 변질되고 심각한 경기후퇴로 악화되자, 이제는 국가부도라는 유령이 잠자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공공 예산이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지고 예산 적자가 증가하게 될 때 국가의 지급 불능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국가가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화폐를 찍어낸 사례는 여러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이라고 이런 역할을 무한정 해낼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되고 결국에는 화폐개혁까지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특히 예민한 나라가 독일이다. 1923년과 1948년 두 번에 걸쳐 화폐개혁을 겪었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시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가부도와 화폐개혁에 대한 우려는 공허한 말이 결코 아니다. 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7년부터 진행된 일련의 사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미국에서는 2007년 봄부터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많이 소유한 은행뿐 아니라, 다수의 은행 및 보험회사가 존립의 압박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금융기관의 파산이 야기할 연쇄 도산을 막기 위해 미국의 발권은행(연방 준비제도 이사회, 이하 연준)이 대대적으로 뛰어들었다. 연준은 즉각 거의 무한대의 금융 지원을 제공했고, 동시에 이후에도 그와 같은 자금 지원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 결과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연준은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로 올라서게 되었다.

 

 

2007년 8월부터는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유럽 중앙은행, 잉글랜드 은행 등)도 뛰어들었는데, 미국의 연준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도 통화 보유량이 고갈되면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바로 이것이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전개의 시초였다. 2008년에는 금융위기가 더 심각해졌다. 이제 많은 나라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큰 규모로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가들은 예금, 은행 여신, 위기에 빠진 민간 기업에게 포괄적인 보증을 제공했다. 이는 국가로서는 일단 잠재적 신규 부채에 해당한다. 그러나 심각한 사태, 즉 국가의 보증을 받은 업체가 파산하고 이로 인해 국가가 채권을 상실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잠재 부채는 실제 부채로 변하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자본 수혈은 특히 은행에게 불가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쓰레기 유가증권의 손실 때문에 심각하게 잠식된 은행 자기자본을 확충하는 일이었다. 여기에는 민간 은행뿐 아니라 투기로 인해 결정적인 손실을 입은 공영 은행도 해당된다. 결국 공적 기관은 은행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악성 유가증권까지 몽땅 사주기 시작했고, 일부 국가는 배드뱅크까지 설립했다. 그런데 이를 위한 자금 역시 빚으로 조달되었다. 그리고 2008년의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를 덮쳐 경기후퇴의 심각성이 뚜렷해지자 각국 정부는 부채 유입을 통제하는 갑문을 더 활짝 열어버렸다. 이로 인해 경기 부양을 위한 거대한 대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특히 중국, 미국, 유럽연합 내의 대형 국가들에게서 두드러졌다. 그 규모는 미국만 해도 8조 달러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부채는 민간 부문에서 공공 부문으로 옮겨갔다. 즉 부채는 사회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공공부채는 우려스러울 정도로 높이 치솟았다. 그 결과 최초로 준국가부도에 이른 나라는 아이슬란드였다.

 

크로나화의 환율은 투기 세력 때문에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결국 그 투기의 거품이 터져버렸다. 크로나화는 대폭락하고 은행들은 크로나화를 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 은행의 붕괴를 막기 위해 아이슬란드 정부는 2008년 10월 8일, 모든 은행을 국유화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하지만 이는 나라가 감당하기에는 과도한 부담이었고 결국 나라 자체가 지급불능의 언저리에 이르렀다. 국가부도 사태를 막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이 뛰어들었다. 헝가리, 우크라이나, 라트비아 등에서도 이러한 사태가 이어졌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준파산 상태에 이르자 세계는 이제 국가부도라는 유령을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초미의 관심사는 다음은 어떤 나라가 국가부도의 위기를 겪느냐 하는 것이었다. 1차적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떠오른 나라는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였다. 참고로 사람들은 국가 경제에 적신호가 들어오면 IMF에 큰 희망을 거는 편이다. 그런데 여기서 쉽게 간과하는 게 있다. 만약 회원국들이 분담금을 제때 납부하지 않으면 IMF조차도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 2009년 7월, 미국 어느 곳에서 욥(Job)의 사자(使者)가 암울한 소식을 전해 왔다. 캘리포니아 주가 지급불능에 빠지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는 오래전부터 차입에 의존해 자금을 조달했다. 그러다가 결국 와야 할 일이 오고야 만 것이다. 사실상의 파산이었다. 책임은 무엇보다 해당 지역의 직접민주주의에 있다. 주지사와 의회가 재정 건전화 조치를 계획해도 주민들이 투표로 이를 좌초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 주 및 특히 뉴욕 시 같은 매머드 급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되리라고 여기는 것은 다가올 현실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무튼 금융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신규 부채는 전쟁이 없는 평화 시기 사상 최대 규모로 증가했다. 참고로 유로존 국가에 대해서는 국내총생산(GDP)의 3%라는 신규부채 상한선이 적용된다. 그러나 이미 거의 전 회원국이 이 상한선을 넘겼고, 몇몇 국가의 경우 국가 차원의 경기부양계획, 은행에 대한 지원 또는 저축에 대한 지급보증 같은 것도 없다. 참고로 프랑스의 경우 그 사이 신규부채 규모가 GDP의 약 6.5% 수준에 이르렀고, 이탈리아 등 몇몇 나라는 10%를 웃돌기도 했다. 영국은 2009년 중 예산적자 규모가 GDP의 12%에 근접했다. 신규 부채의 규모는 유로존 이외의 지역에서도 기록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예를 들면 특히 발트 해 연안 국가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가 그랬으며, 스웨덴, 폴란드, 헝가리, 스위스조차 마찬가지였다.

 

 

공공 예산에서는 일반적으로 부채 및 그 증가율에만 주로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는 복잡한 문제의 일부에 불과하다. 당연히 고려해야 할 다른 영역도 있다는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지급이 약속된 공무원 연금과 일반 연금보험, 개인 부채, 온갖 종류의 부동산을 담보로 한 담보대출, 금융 부문(은행과 보험회사)을 비롯한 민간 기업의 부채 등이 그런 예이다. 이들은 모두 금융위기 및 그로 인해 야기된 경제위기로 힘겨운 압박을 받고 있다. 이는 단기적인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문제이며 당연히 그에 따른 영향을 수반한다. 그러므로 부채 의존적 경제, 즉 빚에 기댄 삶이 심각한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인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국가부도라는 유령에 정면으로 대처하는 것, 경제적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하는 일은 모두에게 필요하고도 유용하다. <“국가부도”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발터 비트만 지음, 역자 류동수, ▣ 역자 류동수님, 비전코리아>

 

                                                                                                          애 기 봄 맞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