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채무
2007년부터 금융위기가 진행되면서 세계의 시선은 전통적 부도국가인 라틴아메리카에서 벗어나 옛 선진공업국으로 옮겨갔다. 집중적인 주목을 받은 국가는 서유럽, 북미, 동아시아, 대양주까지 펼쳐져 있는 경제협력 개발 기구 회원국이다. 이들 나라들은 숨이 막힐 정도의 속도로 부채를 끌어들였는데, 이는 세계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와 관련된 온갖 신문의 제목들은 저축자들과 투자자들의 불안을 야기했다.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국가재정의 붕괴 속에서 경제적으로 몰락해 자신이 평생 일해 벌어놓은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걱정 속에서 살고 있다.
아무튼 대중의 눈길은 국가부채 문제로 집중된다. 하지만 일련의 다른 영역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민간기업 채무는 문제의 소지가 크다. 신문을 조금만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났다시피, 금융업계를 포함한 수많은 기업들은 적정 수준 이상의 빚을 지고 있다. 그래서 국가와 중앙은행은 국민경제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기업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을 정도로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울러 수많은 가계도 위험스러울 정도로 빚을 지고 있다. 이는 미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신문에서도 자주 “신용카드 위기” 같은 말이 등장한다.
소비자들이 무리하게 소비자 신용을 쓴 까닭에 되갚을 가능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개인 파산을 신청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새로 부동산 위기가 발생한 것과 더불어 또 다른 문제가 다시 떠올랐다. 바로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싶은 꿈을 실현하려 했던 이들이 쌓아놓은 빚, 바로 주택담보대출비율이었다. 여기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정은 생각하지 않고 크게 무리를 했다. 그 결과 그들은 담보대출을 해준 은행이 자기 집을 인수해 청산하는 것을 바라봐야만 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결코 원치 않던 존재, 그러니까 집주인이 아니라 세입자가 되어버렸다.
더 나아가 ‘감춰진’ 국가부채도 존재한다. 국가가 운영하는 사회보험이 그것인데, 실업보험, 의료보험, 산재보험, 법적 연금보험 등이다. 그 중에서도 사실상 문제가 되는 것은 연금보험이다. 왜냐하면 이 보험은 장기간, 심지어 평생 동안 급여를 지급하기로 되어 있지만 거기에 소요되는 자금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가 그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러므로 국가는 추가로 부채를 안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국가부채에 준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 아무튼 연금 보험료 인상이나 보험급여 축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부족분을 국가가 떠맡아야 한다. 이에 소요되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국가는 부채를 차입하게 되며, 급여 수령기간이 길어질수록 부채 규모는 더 커질 것이다.
시장경제의 측면에서는 공적 보장보다는 사적 보장이 우선시된다. 그래서 이 경우 개인이 납부한 보험료를 적립하지 않고 곧장 보험급여로 지출해 세대 간 급여 이전이 이루어지는 소위 ‘급여 개별분담’ 방식보다는, 개인이 내는 보험료를 자본시장에 투자, 적립한 다음 그 과실을 각 개인의 연금계좌에 적립해 나중에 다시 피보험자에게 보험급여로 지급하는 ‘개인별 자본적립’ 방식에 방점이 찍힌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본 적립 방식을 택할 경우 보험료 내지는 조합비 형태의 개인별 ‘납부금’은 계속적으로 투자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 방식은 금융시장 동향에 전적으로 좌우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자체적으로는 채울 수 없을 재정 공백이 여기에 나타나곤 한다.<“국가부도”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발터 비트만 지음, 역자 류동수, ▣ 역자 류동수님, 비전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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