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력의 네 가지 기둥
설득력은 특히 회사 생활을 하는 데 가장 필요한 능력 중 하나로 꼽힌다. 직원들은 좋은 대우를 받기위해 경영진을 설득하고, 관리자들은 직원들이 회사의 비전에 매료되도록 설득하며, 영업사원들은 고객들이 자사의 제품을 구매하도록 설득한다. 회사에서 벌이는 거의 모든 대화와 커뮤니케이션이 사실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나와 연구진은 한 소프트웨어 어플리케이션의 지원 기능을 대표할 캐릭터 도우미를 선정하기 위해 미국, 독일, 일본 등의 여러 나라에서 대규모 표본을 확보하여 수치 자료들을 모았다. 연구 결과, 한 캐릭터가 아주 적합해 보였다. 개성이 있고, 상품에도 잘 어울리며, 기업들이 캐릭터를 선정할 때 고려하는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었으며,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기 편한 캐릭터였다. 분명하고 명확한 선택이었다. 나는 연구 결과에 만족하고 최종 추천 결과를 이렇게 발표했다. “지금까지 컨설팅을 해오면서 이처럼 확실하고 분명한 선택을 내린 적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 그리고 한 가지 결론으로 귀결되었다고 솔직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완벽한 캐릭터를 찾아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나는 내 역할을 마쳤다고 확신하며 회의실을 나왔다. 그로부터 며칠 뒤에 그 회사의 한 임원이 연락을 해왔다. 도무지 믿기 어려웠지만, 그는 우리의 추천을 재고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보여줬더니 그의 아내가 뭔가 이상하다고 얘기를 했다는 거였다. 아내의 직감을 믿은 그는 연구진이 연구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보여주었던 현란한 그래프와 차트, 수학 모델들을 기억해보라고 하면서 그를 설득했다. 그럼에도 그 회사는 결국 연구 결과보다 자신들의 마음이 더 끌리는 다른 캐릭터를 선정했다. 그들의 선택은 결국 실패로 이어졌지만, 그 사실은 내게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나는 내가 아무리 옳다고 해도 상대를 완전히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참고로 현대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칼 호블랜드와 그의 예일 대학교 동료들, 심리학자 월터 와이스는 설득력은 언제나 ‘전문성’과 ‘신뢰성’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먼저 전문성은 설득하는 사람이 그 내용과 관련된 지식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를 의미한다. 그리고 신뢰성은 설득하는 사람의 말을 경청해도 되는지, 즉 설득하는 사람이 진심으로 우리를 생각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잣대가 된다.
친밀감, 상호의존 관계, 유사성에서 생겨나는 신뢰성과 명칭에서 드러나는 전문성은 분명히 설득력을 높인다. 하지만 두 가지 전략을 동시에 사용하지 못할 때도 있다. 1장에서 살펴봤듯이 칭찬할 때보다 비판할 때 더 지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칭찬할 때 호감과 신뢰를 더 많이 얻게 된다. 그리고 4장에서 살펴봤듯이 감정에 호소하면 신뢰를 얻을 수 있지만 능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만약 신뢰성과 전문성을 드러낸다면,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을까? 예로 여행을 떠난다면 함께 다니는 동료가 추천하는 곳을 가고 싶을까, 여행지에 사는 주민이 추천하는 곳을 가고 싶을까? 동료는 나와 친하고 비슷한 점도 많겠지만(신뢰성), 현지인은 여행지에 익숙하고 관광 명소를 많이 안다(전문성). 나는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먼저 실험에 사용할 관광 명소 추천 사이트를 개설했다. 뉴욕과 스톡홀름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했으며, 피실험자들이 사전 지식이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임의로 추천 관광지를 만들었다. 사이트에는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그곳에 이미 다녀온 관광객들이 작성해놓은 듯한 추천 글을 게시했다.
[스톡홀름/뉴욕]을 방문했다면 가지각색의 환상적인 요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저는 태국 요리를 즐겨 먹는데, 제가 즐겨 찾는 태국 식당에 대해 조금 알려드릴게요. [갈마스탄 행 버스/퀸즈 7번 지하철]을 타고 ‘시호와’라는 간판이 붙은 식당 앞에서 내리세요. 이 식당에서 파는 요리를 먹어보면 정말 깜짝 놀랄 겁니다. 가격도 저렴해요. 해산물, 닭고기, 돼지고기, 고추, 카레 등을 섞어서 만든 최고의 태국 요리와 태국 전통 술을 함께 주문해서 드세요. 식사를 다 하시면 태국식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을 맛보세요. 결코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겁니다. 장담합니다.
유사성-매력 효과와 전문성의 효과를 비교 분석하기 위해, 본래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 사람들과 스웨덴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스웨덴 사람들을 실험에 참여시켰다. 추천 관광지를 영어로 소개했기 때문에 스웨덴 사람들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로 뽑았다. 이어서 미국 사람들의 절반과 스웨덴 사람들의 절반은 사이트에서 뉴욕 홍보 페이지를 보게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스톡홀름 홍보 페이지를 보게 했다. 사이트에서 관광 명소 한 곳을 선택하면 그곳을 소개하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실험에 참가한 미국 사람들의 절반과 스웨덴 사람들의 절반은 미국 억양의 영어로 관광 명소 소개를 들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스웨덴 억양의 영어로 관광 명소 소개를 들었다. 사람들은 관광 명소 소개를 들은 후 설문을 통해 관광 명소 소개가 어땠는지 소감을 밝히게 했다.
설문 결과는 유사성-매력 효과가 작용했음을 보여주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 사람들은 미국 사람의 음성을, 스웨덴 사람들은 스웨덴 사람의 음성에 호감을 보였다. 또 사람들을 소개하는 장소가 뉴욕이든 스톡홀름이든 상관없이 고향 사람이 제공하는 정보가 유익하고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즉 소개하는 장소에 상관없이, 미국 사람들은 미국 사람이 제공하는 정보가 더 정확하다고 평가했으며, 스웨덴 사람들은 스웨덴 사람이 제공하는 정보가 더 정확하다고 평가했다. 요컨대, 전문성이 분명히 드러날 때도 유사성과 그로 인한 신뢰성이 결합되면서 설득력이 더욱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실험 결과를 보면, 이번 장을 시작하며 밝혔지만, 캐릭터 모델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내 의견을 관철하지 못한 이유가 분명해진다. 나는 회사에서 비용을 받고 독립적인 자료를 제공하는 객관적인 외부 컨설턴트로 내 자신을 포지셔닝하여 회사와 상호의존 관계를 맺지 못했다. 게다가 나는 회사 사람들 중 그 누구보다도 많은 연구를 수행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그들과 다르다는 점을 너무 드러냈고, 충분히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설득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전문성뿐만 아니라 유사성을 강조해야 했다. 이를테면, 우리 연구 팀에 대한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기보다, 우리가 모두 캐릭터 선정과 디자인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었어야 했다. 그리고 함께 토론하며 연구 결과도 공유했어야 했다. 또 하나 지적하면, 나는 “오랜 세월 컨설턴트로 일한 경험에 따르면”과 같은 말을 하여 회사 사람들과 내가 다르다고 강조했는데, 그보다는 “정말 믿기 어려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모두 우리가 열심히 준비하고 계획한 덕분입니다”라고 말했다면 나의 아첨과 팀워크, 유사성-매력 효과가 결합되어 엄청난 효과가 나타났을 것이다. 또 우리가 개발한 캐릭터를 티셔츠에 새겨서 팀원들에게 배포하고 팀원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면, 팀원들이 캐릭터를 팀의 일원으로 생각하여 그 캐릭터가 회사를 대표할 만하다고 흔쾌히 생각했을지 모를 일이다.
실험에서 대체로 신뢰성이 전문성보다 더 설득력이 있음이 밝혀졌지만, 상대방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수준을 토대로 둘 중 하나를 강조하는 전략은 효과가 있다. 우리의 제안을 받은 상대방이 ‘중심 경로’나 ‘주변 경로’로 설득 메시지를 처리하는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중심 경로로 정보를 처리할 때는 자신이 들은 얘기를 깊이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설득 메시지를 세부적으로 검토하여 반론과 대안을 제기하려고 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신뢰성보다 전문성이 돋보여야 설득력이 높아진다.
사람들은 문제나 문제의 결과가 자신과 깊이 관련될 때, 또 자신의 판단을 스스로 책임져야 할 때 정보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체계적으로 사고한다. 반면에 주변 경로를 선택할 때는 골똘히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껏 가장 분명하고 단순한 기준에 근거하여 제안이나 주장의 타당성만을 급히 판단할 뿐 대안을 찾지 않는다. 어쨌든 사람들이 주변 경로를 선택할 때는 전문성을 드러내기보다 신뢰감을 줘서 설득하는 것이 효과가 있는데,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을 때, 또 시간 압박에 시달리기나 여러 업무를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변 경로를 선택하곤 한다.
아무튼 설득력을 발휘하면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지만, 가장 큰 혜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설득이 더 성공적인 설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에게 설득을 당해서 우리의 부탁을 들어준 사람은 나중에 우리의 부탁을 또 들어주는 경향이 강하다. 사막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천막을 친 주인에게 낙타가 밤에 추우니 코만 천막에 넣고 자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주인은 낙타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런데 낙타는 천막 안에 목까지 집어넣고 자게 해달라고 주인에게 한 번 더 부탁한다. 주인은 또 들어준다. 이렇게 낙타는 조금 더 조금 더 하면서 텐트를 차지하고, 주인은 결국 밖에서 잠을 잔다. 여기서 교훈을 하나 얻을 수 있다. 사소한 부탁을 들어주도록 한 후에는, 그 다음에 하는 부탁도 당연히 들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여 훨씬 더 쉽게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관계의 본심”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클리포드 나스, 코리나 옌 지음, 역자 방영호,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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