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합리적 판단의 적
혹시 지금까지의 글을 읽고 나서 여우에게 홀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은가? ‘문이 2개’이므로 ‘확률은 1/2’이라고 대답하는 것은 깊이 사고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는 바로 ‘휴리스틱’(heuristics) 때문이다. ‘휴리스틱’은 ‘간편법’, ‘발견법’, ‘어림셈’, ‘경험적 지식’ 등으로도 불리는데 의사결정을 할 때 오래 생각하지 않고 빠르고 쉽게 판단하기 위한 사고의 지름길을 말한다. 이는 사람들이 비합리적인 결론을 내리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물론 ‘휴리스틱’ 이외에도 지구인이 ‘비합리성’이라는 덫에 빠지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감정’도 합리적 판단을 방해하는 요인 중 하나다. 인간의 판단은 감정에 쉽게 좌우되기 때문에 자주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행동경제학이란 무엇인가?
지구인은 직감에 이끌리고 감정의 영향을 받은 채로 상황을 판단한다. 그래서 우주인 존스와 같이 손익계산이 철저한 ‘합리적 생명체’는 지구인의 그런 태도에 의문을 갖는다. “지구인은 왜 그렇게 손해 보는 일을 하는 거죠?” 이렇게 “왜?”를 묻는 것은 우주인 존스뿐만이 아니다. 경제학자들도 비합리적인 인간의 행동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원래 전통 경제학에서는 경제의 주체로 ‘합리적 인간’(rational being)을 꼽는다. 합리적 인간은 다양한 의사결정을 할 때 모든 정보를 꼼꼼하게 입수해서 완벽하게 처리하고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인간상을 전통 경제학에서는 경제적 합리성 또는 경제적 타산만을 좇아 행동하는 이성적이고 이상적인 사람이란 의미로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고 부른다. (우주인 존스가 태어난 별의 이름과 같다) 하지만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보통 인간과는 무척이나 동떨어진 존재다. 이러한 인간상을 전제로 하는 전통 경제학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하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종래의 경제학자들은 이런 수많은 일들을 ‘이상 현상’(anomaly)이라고 규정하고 방치해왔다.
그렇다. 인간이 어떤 일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려고 해도 호모 에코노미쿠스처럼 모든 선택사항을 검증해서 가장 적합한 행동을 취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대개는 “이것만 완벽하게 된다면 오케이!”라고 여기는 일정한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을 달성하면 만족해한다. 이와 같은 특성을 ‘만족화 원리’(Satisficing)라고 표현한다. 모든 정보를 샅샅이 조사하지 않고 일부의 정보만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만족화 원리에 따르면 ‘인간은 합리적인 동시에 비합리적인 존재’이다. 즉 제한된 상황에서만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런 지구인의 특징을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이라고 정의한다.
‘제한된 합리성’은 전통 경제학자들이 전제로 삼아온 합리적인 인간상, 즉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구인이 지닌 제한된 합리성을 기초로 경제활동을 파악하면 전통 경제학과는 다른 새로운 경제학의 지평이 열린다.
이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인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제한적으로 합리적이다’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경제활동에 대해 생각하는 학문이 행동경제학이다. 비합리적인 인간의 행동을 경제학적으로 활용하려면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학문, 즉 심리학과 밀접하게 협력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행동경제학은 ‘경제심리학’(혹은 심리경제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전통 경제학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이상 현상’들을 수집해 설명하고자 애써왔다. 그리고 제한된 합리성을 지닌 인간이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는지 연구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이론화하고 있다.
우주인 존스가 행동경제학자인 내게 접근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는 ‘지구인 조사’라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지구인들의 불합리한 습성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행동경제학적 지식은 그 설명을 가능케 하는 좋은 도구였던 것이다. 내가 존스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깨닫게 된 불합리한 지구인에 관한 수많은 기록들을 이제부터 자세히 살펴보자. <“불합리한 지구인”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하워드 댄포드 지음, 역자 김윤경님, 비즈니스북스>
<까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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