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사회적 계약을 향하여
사회계약의 개념은 보통 루소와 홉스 그리고 로크 같은 17~18세기의 사회계약론자들과 최근의 존 롤스 같은 학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루소의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발상은 모든 사람이 동등한 목소리를 내고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집단적 의지에 참여해 인류 평등적인 공동체를 자발적으로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어서 언급한 홉스는 이와 반대로 무정부적 혼란이 발생하는 자연 조건을 상상했다. 홉스는 상호 자기 보존을 위해 인류의 조상들이 국가의 지배 질서에 개인의 권리를 양도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편으로 로크는 좀더 자비로운 자연 국가를 그리며, 이런 국가에서는 자유로운 개인이 상호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제한된 계약을 만들어내고 나머지 권리도 제한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 후 데이비드 흄과 다른 철학자들은 이런 계통의 추정을 수정했다. 강력한 비판서인 『인성론』에서 흄은 자연계의 일부 깊은 특성 ‘자연법’은 인간의 도덕적 계율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흄은 특히 쾌락과 고통의 원칙이 우선한다는 벤담의 공리주의적 주장과 인간의 권리 및 의무를 강조한 사회계약론자들의 주장을 모두 배격했다. 흄이 지적한 것은 무엇보다 실제로 인간 사회의 기원이 이와 같은 가설적인 동기와 시나리오에 합치된다 해도(현재의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인류의 먼 조상들이 맺은 낡은 사회계약을 그대로 따를 논리적인 의무가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다.
자연법에 대한 주장이 수그러들면서 사회계약론이 일반적으로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시들어졌지만 중요한 예외로 존 롤스의 연구를 들 수 있다. 1971년에 나온 롤스의 『정의론』은 사회 이론에서 기념비적 역작으로 꼽힌다. 몇몇 결함이 없지 않지만 롤스가 말한 ‘원초적 상태’라는 개념(자연 상태에 대한 가설적인 유추)은 무엇이 공정성과 사회 정의를 구성하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하는 폭넓은 흐름을 불러왔다. 그러나 미국의 비참한 경제 통계라든가 부정적인 추세를 고려하면 학계의 반응 외에는 이렇다 할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회계약론의 퇴조 속에서도 매우 중요해 보이는 예외가 있다.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행동경제학자, 게임 이론가, 진화심리학자들이 수학을 기초로 게임 이론과 경험적 연구를 결합해 훌륭한 아이디어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일부 이론가 중에서 수학자로 변신한 경제학자 켄 빈모어와 철학자 브라이언 스컴스는 이 주제와 관련한 연구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루어 사회계약론을 새로운 기반 위에서 되살리는 하나의 도구로서 게임 이론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2005년에 출간한 『자연적 정의』로 절정에 오른 빈모어는 자신의 접근 방법을 ‘정의에 대한 과학적 이론’으로 묘사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이론이 진화론과 적응의 관점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 빈모어의 이론은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진화된 공정성 감각 그리고 게임 이론에서 비롯된 새롭고 강력한 통찰에 대한 행동경제학과 실험경제학이라는 연구 분야에 기반을 둔 것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해서 빈모어는 사회적 행동의 안정된 ‘협동’이라는 광범위한 틀에서 사회계약을 규정한다. 이런 형태의 사회계약에는 핵심적인 문제가 빠져 있다는 것을 빈모어도 인정한다. 그것은 바로 실체적인 의미에서 공정성을 어떻게 규정하는가라는 문제다. 바꿔 말하면, 빈모어의 사회계약은 플라톤의 국가라든가 공상 자본주의나 마르크스의 공상 사회주의와 매우 유사한 이상화된 형태를 담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는 (비록 목표가 자주 뒤집어지기는 하지만) 자치 정부와 인간의 공동 욕구 추구를 위한 도구 기능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단언할 수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라는 개념에서 국가의 기본적 목표를 이해했으며,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최상의 기능으로서 법이 다스리는 혼합 정부라는 처방을 내렸다. 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공정성을 지향하는 정의의 형태가 공공의 이익에 필수적인 요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형태의 정의만이 장기적인 측면에서 정치적인 안정과 사회의 화합을 보장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회 정의의 실체적 내용은 공로에 대한 공평한 보상이나 상호주의와 더불어 인간의 기본 욕구 충족으로 이루어진다. 실제로 공로에 대한 적절한 보상은 인간의 기본 욕구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노동의 광범위한 결합을 위한 유인 수단을 제공한다. 또 생물사회적 계약은 성장 중인 현대 진화생물학과 이 분야를 조명해주는 인간과학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리고 생물사회적 계약은 그동안 좌우 진영의 정치 이론가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낸 주장을 화해시키는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이런 구조가 조화로운 사회를 향한 열쇠가 되는,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자발적 동의의 상태를 성취하고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희망을 제공한다고 믿는다.<“공정 사회란 무엇인가”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피터 코닝 지음, 역자 박병화박사님, 에코리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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