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은 손실을 극도로 싫어한다
손실회피성
‘손실회피성’(loss aversion)은 이익보다는 손실을 크게 평가하는 경향을 말한다. 즉, 사람은 플러스적인 자극보다 마이너스적인 자극에 훨씬 민감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익과 손실의 절대치가 같더라도 가치면에서 손실의 절대치가 더 크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같은 규모의 이익과 손실에서 인간이 느끼는 강도는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문제 - 내기 금액은 얼마?
시인 장 콕토가 음악가 친구들과 파티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여가수 에디트 피아프가 장 콕토에게 다가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있잖아, 장.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상금을 받고 뒷면이 나오면 벌금을 내는 게임이 있어. 앞면이 나오면 당신은 상금을 타겠지만, 만약 뒷면이 나오면 벌금으로 100유로를 내야 해. 단, 상금 액수는 당신 마음대로 정할 수 있어. 앞면이나 뒷면이 나올 확률은 각각 50퍼센트지. 그렇다면 당신은 상금이 얼마 이상이면 게임에 도전하겠어?”
여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질문을 좀더 쉽게 설명해보자. 이 동전 게임은 뒷면이 나오면 100유로를 잃게 되고, 앞면이 나오면 x유로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이 x의 값이 얼마일 때, 게임에 참가하겠는가? 이것이 질문의 요지다. 정답은 없다. 자신의 답과 이상적인 답을 비교해보자.
ANSWER
χ는 200유로를 넘어야 이상적이다. 당신은 얼마를 제시했는가? 아마도 돈을 잃게 될 경우의 2배 이상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행동경제학인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프로스펙트 이론의 진전」이라는 논문을 통해 손실이 이익보다 크다고 느끼는 정도의 중앙값을 2.25로 추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절대치가 같을 경우 사람들은 손실을 이익보다 2.25배 더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 수치는 일반적으로 2~2.5배로 보기도 한다. 100유로를 획득하거나 상실할 확률이 반반이라면 구태여 모험을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승패의 확률이 절반이라고 하더라도 획득할 수 있는 상금이 200유로에서 250유로 사이라면 도전해볼 만하다. 상금이 이 금액에 미치지 못한다면, 굳이 내기에 응할 이유가 없다. 즉 100유로의 손실은 200~250유로의 이익에 상응하는 가치를 지닌다.
<“불합리한 지구인”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하워드 댄포드 지음, 역자 김윤경님, 비즈니스북스>
<바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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