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은 선택이 너무 괴롭다
어째서 이런 성가신 일을 하는 걸까?
커다란 쇼핑백을 손에 든 우주인 존스가 내 연구실로 들어섰다. 유명한 컴퓨터 매장의 쇼핑백이다.
“어이! 우주인 존스, 쇼핑했나 보네?”
“네. 번역 소프트웨어인데요. 8개 국어 지원이라나. 근데 댄포드 씨, 이게 무슨 뜻이죠?”
존스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지금 당장 50달러 캐시백!’이라고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아, 50달러를 돌려준다는 거야. 상자를 열어봐. 아마 응모용지가 들어 있을 거야. 거기에 내용을 적어서 보내면 돼. 그러면 자네의 은행 계좌로 돈이 반환되는 거지.”
“어? 하지만 이해하기 힘든데요. 처음부터 50달러를 싸게 팔면 되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어쨌든 50달러를 돌려받을 수 있으니 좋잖아?”
“하지만 이해가 잘 가지 않아요. 합리적인 설명을 들을 때까지 이 응모용지를 보내지 않을 거예요.”
캐시백의 비밀
캐시백에 대해서 알아보려면 구매자의 심리와 판매자의 의도를 모두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문제 - 경제적으로 충격이 큰 사람은?
두 학생이 각각 다음과 같은 경험을 했다. 이들 중 더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누구일까?
1) 퍼시픽대학 이공계 학생 테리는 노트북이 갑자기 망가져 수리하는 데 175달러를 지불했다.
2) 퍼시픽대학 이공계 학생 체리는 노트북이 갑자기 망가져 수리하는 데 200달러를 지불했다. 그리고 같은 날 도전한 즉석 복권에 당첨되어 25달러가 생겼다.
테리와 체리 중 누가 더 큰 경제적 충격을 받았을까? .
ANSWER
테리의 충격이 크다고 대답한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는 같은 실험을 코넬대학교 학생들에게 실시했다. 그 결과 대다수의 학생들이 1)의 경우가 충격이 더 크다고 답했다. 하지만 테리와 체리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들이 입은 손실은 175달러로 둘 다 똑같다. 다만 체리는 뜻밖의 횡재로 25달러를 얻는 행운이 있었지만, 테리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결국 이 점이 결정타가 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테리의 충격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심리는 캐시백에서 구매자가 느끼는 심리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가령 우주인 존스가 구입한 소프트웨어의 판매가격이 300달러였다고 치자. 고객이 이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면 그 비용은 물론 300달러다. 이 300달러를 손실로 파악하면 테리의 경우와 비슷한 상황이 될 것이다. 한편 제조사가 가격을 50달러 높게 설정해 소프트웨어의 판매가격이 350달러가 되었고. 그 대신 50달러의 캐시백을 혜택으로 제공한다고 하자. 캐시백을 받으면 결국 상품에 지불한 비용은 300달러가 되므로 고객이 지불한 금액은 상품의 판매가격이 300달러일 때와 같다.
하지만 고객에 따라서 달라지는 사항은 되돌려 받는 ‘50달러’이다. 이것은 앞의 문제에서 2)의 체리가 얻은 복권의 당첨금에 해당된다. 그래서 같은 300달러라도 반환금 50달러의 가치를 높게 책정할수록 캐시백의 혜택이 포함된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사람의 만족도는 높아진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캐시백이 있는 상품을 선호하게 된다. 제조사는 이러한 심리를 활용해서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캐시백을 받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한 사람은 제조사에게 ‘굴러 들어온 복’이다. 이때 중요한 키워드가 가격차별과 자기선별이다. ‘가격차별’(price discrimination)은 같은 상품을 팔 때 비싸도 사는 사람에게는 비싼 가격을 매기고, 저렴해야만 구입하는 사람에게는 그에 적합한 가격을 책정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여기에 디지털 음악 플레이어가 있다고 하자. 당신은 이 제품에 200달러를 지불할 마음이 있다. 한편 나는 150달러라면 사겠다고 생각한다.
가령 제조사가 이 제품을 200달러에 판다면 당신은 살지 모르지만 나는 사지 않는다. 결국 제조사의 총 매출은 200달러밖에 안 된다. 자, 그럼 이번에는 제조사가 이 제품을 150달러에 판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라면 단연코 살 것이다. 200달러에도 사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도 150달러라면 사겠다. 결과적으로 제조사의 매출은 300달러가 된다. 하지만 이 경우 제조사는 얻을 수 있었던 50달러를 손에 넣지 못했다. 200달러라도 구입의사가 있던 당신에게 받을 수 있었던 바로 그 50달러 말이다. 결국 가장 이상적인 판매 방법은 가격이 비싸도 살 사람에게는 비싼 가격에 팔고, 싼 가격이라야만 살 사람에게는 손해를 보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팔아 매출을 최대한 올리는 것이다.
이렇게 똑똑한 제조사 측에도 약점은 있다. 이 디지털 음악 플레이어에 어떤 고객이 얼마 정도의 돈을 지불할 것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객을 가려내 선별하는 일을 스크리닝(screening)이라고 하는데 이때 제조사측은 고객을 스크리닝할 수 있는 유용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제조사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나는 200달러라도 사겠어.”, “나는 150달러라면 살거야.” 등 고객 자신이 스스로를 선별하여 의사를 밝히도록 한다. 이것을 ‘자기선별’(self-screening)이라고 한다. 결국 제조사들은 고객들의 자기선별을 유도해 매출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다.
존스가 산 번역 소프트웨어의 경우 제조사는 300달러에 팔아도 괜찮겠지만 350달러로 가격을 올리고 50달러를 캐시백으로 돌려주는 방법도 쓸 수 있다. 이 상품에서 350달러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캐시백의 유무에 상관없이 구입할 것이다. 한편 300달러여야만 사겠다는 사람은 50달러의 캐시백이 있으므로 구매하게 된다. 이렇게 캐시백을 이용해서 비싼 가격이어도 살 사람과 저렴한 가격일 때만 사는 사람, 양쪽 모두를 공략할 수 있다. 다만 이때는 자기선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점이 캐시백의 특징이다. 싼 가격일 때만 구입하는 사람은 구입 후 캐시백에 반드시 응모해서 50달러를 돌려받을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 ‘저렴한 가격이 아니면 절대로 사지 않겠다’고 자기선별을 하는 것이다. 한편 비싼 가격이라도 사는 사람은 ‘캐시백 신청 같은 것은 너무 귀찮아!’라고 생각하고 응모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캐시백에 응모하지 않는 사람은 ‘나는 비싼 가격이라도 사겠어!’라고 자기선별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제조사는 감쪽 같은 자기선별에 의해 고객을 스크리닝함으로써 가격차별을 통해 매출 극대화를 실현한다. <“불합리한 지구인”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하워드 댄포드 지음, 역자 김윤경님, 비즈니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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