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아들인 쥘리엥 소렐은 나폴레옹 같은 군인이나, 유명한 사제를 꿈꾸는 야망이 가득한 젊은이다. 명석한 그는 시장인
드 레날씨의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에서 시장의 부인인 드 레날 부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부인과의 애정관계가 들킬 위험에 처하자 그는 브장송의 신학교로 들어간다. 그는 교장의 신임을 받을 정도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지만 다른 학생들의 시기를 받는다. 그를 염려한 교장은 파리의 유명 귀족인 드 라몰 후작의 비서로 천거해준다. 쥘리엥은 후작의 신임을 받아 자리를 잡아가고 동시에 그의 야망도 키워나간다.
그는 그곳에서 후작의 딸 마틸드와 사랑에 빠지고, 마틸드는 그와의 결혼을 결심하는데...(요약)
▣ 등장인물
쥘리엥 소렐 ---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언제나 신분 상승을 꿈꾸는 야심만만 한 젊은이 사회현실에 불만이
많으며, 사랑과 야망의 갈림길에서 언제나 고뇌한다.
드 레날 부인--- 쥘리엥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신분과 사랑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한다.
마틸드------- 드 라몰 후작의 딸. 매우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의 소유자
드 레날------ 베리에르의 시장. 명예를 최우선으로 하고, 금전 문제에 상당히 민감하다.
쉘랑 사제 --- 쥘리엥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 그의 야망적 성격을 걱정하고 불행을 막으려 노력하는
베리에르의 주임사제
목수 아들의 야망
쥐라산맥 줄기의 산들로 둘러싸인 소도시 베리에르. 베리에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될 엄청난 굉음을 발산하는 못공장이 있는데 그 공장 주인은 드 레날이었다. 그는 또한 이곳 베리에르의 시장이기도 했다. 그는 화려한 저택과 엄청난 수익을 안겨다주는 못공장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직업에 공업인이라는 딱지가 붙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는 남과 비교될 때, 특히 베리에르의 빈민수용소장인 발르노와 비교될 때 자신이 뒤지는 것을 참지 못했고, 파리를 비롯한 대도시 사람들이 베르에르 같은 소도시를 무시하는 것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또 나폴레옹 편에 선 자유주의자를 경멸하는 왕당파였다.
드 레날은 부인에게 고집스런 제재소집 주인인 소렐의 아들을 가정교사로 고용하자고 제안한다. 그는 이전부터 이곳의 사제인 셀랑 신부를 통해 소렐의 아들은 라틴어도 잘하고 견실하다는 이야기를 이전부터 들어왔던 터였다. 언제나 남편에게 순종적인 부인은 그의 말에 동의한다. 드 레날은 곧장 소렐을 만나러 간다. 라틴어에 출중하다는 어린 사제 소렐을 어쩌면 발르노가 먼저 데려갈지 몰랐기 때문에 그는 그처럼 서둘렀다. 드 레날은 소렐을 만나자마자 아들을 가정교사로 고용하겠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아도 형들과는 달리 책만 읽고 조용한 막내아들이 늘 눈에 거들려왔던 소렐은 제법 괜찮은 보수를 제시한 드 레날의 제안을 상당히 기분좋게 받아들인다.
그는 열아홉 정도의 키가 자그마한 젊은이였는데, 겉으로는 약해보였으며 선이 고르지는 않았으나 섬세한 얼굴 모습과 매부리코를 하고 있었다. 조용할 때는 깊은 생각과 열정을 나타내 이는 커다란 검은 눈이 이 순간에는 더없이 사나운 증오의 표정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소렐의 아들인 쥘리엥은 드 레날의 가정교사가 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가정교사는 하인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나폴레옹의 책을 읽고, 또한 사제의 위엄을 보고 자라면서 초라한 모습에서 벗어나는 길은 바로 나폴레옹 같은 군인이 되거나 유명한 사제가 되는 것이라고 굳게 믿어온 터였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강압으로 드 레날의 집으로 가야 했다.
집 앞에서 머뭇거리는 쥘리엥을 레날 부인이 발견한다. 그녀가 말을 걸자 쥘리엥은 너무나 희고 화사한 그 모습에 더욱 얼어붙어버린다. 부인 역시 더럽고 형편없는 사제로 상상했으나 곱상하고 수려한 쥘리엥을 보자 너무나 놀란다. 그것이 쥘리엥과 드 레날 부인의 첫 만남이었다. 여성미마저 느껴지는 쥘리엥에게 라틴어라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그는 페이지만 지적하면 라틴어 성경을 쉬지 않고 암송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드 레날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실력에 경탄했고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도 그를 보러 집으로 쇄도한다. 쥘리엥의 모습에 우쭐해진 드 레날은 그를 오래 잡아두려 장기계약을 제안하지만, 쥘리엥은 자신의 야망과 반대되는 현재 상황에 거부감을 느끼고 정중히 거절한다.
야망과 사랑 사이에서
쥘리엥은 너무 일찍부터 경계심을 품고 자랐다. 그는 드 레날 부인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했으나 그 아름다움 때문에 그녀가 미웠다. 어쩌면 자신의 출세를 가로막을지도 모를 최초의 암초로 여겨졌던 것이다. 처음 만나던 날 그녀의 손에 키스했던 황홀함을 잊기 위해 그는 되도록 그녀와 이야기하기를 피한다.
한편, 쥘리엥에 대한 부인의 애정은 점차 강해져간다. 그녀는 줄리엥의 모든 행동에 관심을 갖는다. 지금까지 연애라고는 몰랐던 그녀는 줄리엥에게 사로잡혀 완전한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그녀는 아들의 교육 이외의 대화를 하려고 노력해보지만, 쥘리엥의 소심한 모습과 신분 차이로 이야기를 이어가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부인에게 연적이 생긴다. 하녀 엘리자가 쥘리엥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엘리자가 부인에게 쥘리엥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을 때, 그녀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내색도 못한 채, 그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고민을 계속하다 결국 병까지 걸린다. 하지만 쥘리엥이 엘리자의 구애를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은 치유된다.
한편 이러한 생활에 불만을 가졌던 쥘리엥도 점차 속박된 가족과의 삶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며 만족스러운 삶을 보내고 있었다. 읽고 싶었던 나폴레옹의 일대기도 저녁 때마다 몰래 읽을 수 있었다. 드 레날 부인과 대화도 잘 이어지면서 그가 가지고 있던 부담감도 줄어들었다.
그런데 쥘리엥은 어느날 저녁 실수로 부인의 손을 건드리자, 반사적으로 손을 피하는 그녀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러한 모습은 열등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고민하던 그는 부인의 손이 자기 손 안에 머물러 있도록 해야 한다고 결심한다. 그날 저녁은 아주 어두웠다. 옆 사람의 행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한 밤, 마치 결투하러 나가는 사람처럼 긴장한 쥘리엥은 자신을 가다듬고, 열 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을 잡는다. 부인은 뿌리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결국 쥘리엥에게 내맡겨버리고 만다. 부인은 행복감에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후로 그를 향한 애정은 더욱 강해진다. 드 레날이 쥘리엥에게 화를 내고 그에 쥘리앙이 흥분하자, 처음으로 남편에게 복수심 같은 것을 품게 될 정도였다. 그 사건으로 쥘리엥은 부자들을 혐오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혐오감은 그녀에게까지 이른다.
하지만 그 다음날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드 레날이 집안에 있는 침대 매트를 교환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쥘리엥은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 급히 부인에게 이야기를 청하고 부탁을 한다. 방 침대 밑에 초상화를 넣어둔 박스가 있는데, 초상화는 절대 보지 말고 다만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달라는 부탁이었다. 부인은 쥘리엥의 부탁을 들어주마 한다. 그리고 집안 사람들 몰래 초상화를 꺼내나온다. 하지만, ‘그러니까 쥘리엥은 사랑을 하고 있고 나는 지금 그가 사랑하는 여자의 초상화를 들고 있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고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것은 나폴레옹의 초상화였다. 쥘리엥은 언제부턴가 자신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두려워서, 그리고 왕당파인 드 레날에게 걸려서는 안되는 것이었기에 부인에게 부탁했던 것인데, 그녀는 그것을 오해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엔 부인이 쥘리엥을 멀리한다. 쥘리엥은 그녀마저 자신을 멸시한다고 생각하고, 이제 떠나는 일밖에 안남았다는 생각에 사직을 표명한다. 하지만 드 레날은 그가 발르노의 집으로 옮기려는 것으로 착각하고 급여인상을 내세워 그를 회유한다. 갑작스런 드 레날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쥘리엥은 자신이 그들을 이긴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와 함께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분노도 사그라진다.
불륜과 사랑의 차이
쥘리엥은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 현재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나폴레옹이 그랬던 것처럼 수세에 몰린 편을 더욱 강하게 공격해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친 김에 요구조건을 하나 더 내세운다. 급여인상을 약속 받은 상태에서 며칠간의 휴가를 요구한 것이다. 드 레날은 달리 응대하지 못하고 그를 허락한다.
드 레날 부인은 눈감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 때까지는 진정으로 살아온 것 같지가 않았다. 쥘리엥이 자기 손에 불같은 키스를 퍼붓는 것을 느끼던 순간의 행복감에서 그녀는 헤어날 수가 없었다.
날이 갈수록 쥘리엥을 향한 사랑은 깊어만 가는데, 하지만 그와 함께 간통이라는 끔찍스런 상상도 떠오른다. 도덕적인 부담감과 더불어 어쩌면 쥘리엥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으리라는 무서운 생각도 엄습했다. 언제부턴가 그녀에게 있어 밤은 너무나 긴 시간이 되어버렸다.
쥘리엥은 아침 일찍 여행채비를 마치고 곧장 부인을 만나러 간다.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홍조 띤 그녀의 모습은 천사 같았다. 그 모습에 황홀해진 쥘리엥은 그녀가 기대했던 응대를 잊고, 냉담해진다. 그녀 역시 의도적으로 차갑게 대하자, 쥘리엥은 그녀를 기다리려고 보낸 1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들은 인사도 없이 헤어지고 만다. 그날 아침, 베리에르 시장집 식사시간의 주제는 쥘리엥의 휴가 이야기였다. 드 레날은 그가 다른 곳에서 좀더 좋은 계약을 하고 배신하려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며 분통을 터뜨리고, 부인은 그가 휴가를 빌미로 애인을 만나러 갔으리라는 상상을 한다.
부르주아를 압도했다는 승리감과 휴가라는 자유로운 기쁨을 만끽하며 쥘리엥은 목재상인인 친구 푸케를 만나러 갔다. 반갑게 쥘리엥을 맞이한 푸케는 동업을 제안한다. 그리고 현재의 가정교사 수입의 몇 배 되는 수입을 약속한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전세계를 호령하며 다녔을 그 나이에 자신은 돈 몇 푼으로 위안을 삼는다고 생각하니 그의 야망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푸케의 제안을 종교적 이유를 들어가며 거절한다.
다시 드 레날의 집으로 돌아온 쥘리엥은 부인이 그를 너무나 그리워했음을 알아차린다. 그녀는 혹시 그가 떠나버리지 않을까 걱정하던 터였다. 그를 생각하는 마음은 갈수록 깊어져, 국왕이 베리에르에 행차할 때 국왕을 호위하는 영광스런 행렬에 쥘리엥을 참석시키려고 애쓴다. 그런 노력 덕에 행렬에 참여한 쥘리엥은 이전에 전혀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을 만끽한다. 하지만 행렬을 구경하는 사람들, 특히 자유주의자들은 목수 아들이 행렬에 참가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왕당파인 드 레날의 월권행위라 여겨 그를 비난한다.
그 경험을 통해 쥘리엥이 또 하나 좋은 경험을 한 것은 바로 아그드의 주교를 만난 것이다. 그는 젊었음에도 아주 예절바른 사람이었다. 쥘리엥은 그를 보면서 이전에 스승인 쉘랑 사제가 강제로 은퇴당하면서 가졌던 사제에 대한 회의감을 말끔히 씻어버릴 수 있었다. 야망은 다시 사제로서의 성공을 향하기 시작했다.
쥘리엥을 사랑할 때면 언제나 부인에게는 시련이 닥쳤다. 이번엔 아들이 병에 걸렸다. 그녀는 아들의 병을 자신의 불륜에 대한 신의 노여움으로 여긴다. 그녀는 다시 쥘리엥을 멀리하려 한다. 그러나, “나도 벌받게 해주세요, 나 역시 죄인입니다. 트라프스트 수도원에라도 들어갈까요? 그곳의 고행생활이 당신 하나님의 노여움을 진정시킬 수도 있겠지요...... 아아! 어찌 스타니 슬라스의 병을 내가 대신 앓을 수는 없단 말인가......”라는 쥘리엥의 말에 그녀는 그에 대한 애정을 재확인한다.
얼마 후 아들은 점차 호전되지만 그 둘 사이에는 커다란 문제가 발생한다. 드 레날 앞으로 익명의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부인이 누구와 불륜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드 레날은 배신감과 함께 이 내용이 공개되면 자신의 명예가 심각하게 손상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쥘리엥은 부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부인은 다음날 그에 대한 대책을 알려준다. 편지 속의 남녀를 그들이 아닌, 발르노와 엘리자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녀는 발르노의 문체를 빌려 편지를 써 보인다. 사전에서 단어를 오려 새로운 편지를 만드는 것은 쥘리엥의 몫이었다. 부인은 또 쥘리엥에게 잠시나마 떠날 것을 부탁한다. 그 다음날 분노로 휩싸인 드 레날에게 그녀는 아주 침착하게 그 이야기를 해주고, 전날 쥘리엥이 만든 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쥘리엥을 비하하면서 그를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자고 말한다.
쥘리엥은 잠시 집으로 돌아간다. 이때 엘리자는 쥘리엥의 연애사건을 상세히 고자질하기 위해, 물러난 셸랑 사제와 새로운 사제에게 동시에 고해하러 간다. 며칠 후 셸랑 사제는 그를 불러 푸케의 집이나 브장송의 신학교에 갈 것을 요구한다. 쥘리엥이 시장 집에서 나온 이후, 그의 명석함과 라틴어 실력을 아는 여러 부르주아들이 가정교사로 채용하려고 하지만 그는 결국 브장송의 신학교에 가기로 결심한다.
“이보다 더 불행할 수는 없을 거예요. 차라리 죽고 싶어요. 심장이 얼어붙는 것만 같아요......”
이것이 쥘리엥이 부인에게서 들을 수 있는 가장 긴 답변이었다. 그는 그렇게 부인과 이별하고 브장송의 신학교로 향한다.
시련 속에서 야망은 더욱 커지고.
셸랑 사제의 소개장을 가지고 쥘리엥은 브장송으로 향한다. 멀리 문 위에 달린 금박을 칠한 무쇠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천천히 다가섰다. 두 다리에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지상의 지옥이로구나. 나는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겠지!
그는 문지기에게 이곳 신학교의 교장인 피라르 사제를 만나고 싶다고 부탁한다. 그리고 잠시 후 법의를 입은 어느 사내의 안내를 받는다. 묵뚝뚝한 표정의 그는 쥘리엥을 무서운 눈길로 쏘아보았다. 그가 바로 피라르 사제였다. 그는 쥘리엥에게 라틴어로 몇 마디를 물어보고, 셸랑 사제의 말대로 명석한 학생임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성경만을 공부했을 뿐 교리에는 문외한인 그에게서 순수함도 발견한다. 또한 언제부터인가 쥘리엥에게 달라붙어버린 귀족식 말투를 삼가할 것을 알려준다. 그렇게 그의 신학교에서의 생활은 시작된다.
쥘리엥은 그 다음날부터 라틴어 실력을 발휘하여 다른 학생과는 차별화된다. 학생들의 호기심 대상이 된 것이다. 신학생들의 수준과 비교해 자신의 뛰어남을 발견한 쥘리엥은 학교생활에 자신감이 생긴다. 그리고 고해 사제를 선택할 때도 다른 학생들처럼 부교장인 카스타네드 사제를 선택하는 대신, 아무 거리낌없이 피라르 사제를 선택한다. 하지만 신학교 안에서 피라르 사제는 종파가 달랐기 때문에 부교장과 힘 대결을 벌이고 있었고, 세력 면에서는 부교장인 카스타네드 사제가 좀더 강했다.
피라르 사제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쥘리엥은 차츰 다른 신학생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또한 속세에 대한, 특히 드 레날 부인에 대한 그리움과, 신성하다고 여겼던 신학교에서조차 패거리의식이 팽배해 있음을 경험하면서 그가 가지고 있던 자신감은 점차 시들어간다. 그에게 많은 힘이 되어 주리라고 생각했던 피라르 사제도 그에게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신학교에 들어오기 전 잠시 들렀던 여관 여주인이 적어준 주소가 그를 시기하는 신학생들의 폭로로 발각되면서 피라르 사제에게 엄한 처벌을 받기도 했다. 브장송 신학교에서의 생활은 다른 어떠한 때보다도 어려운 시기였다. 카스카네드 사제를 따르는 신학생들의 타락된 모습, 즉, 좋은 교구를 배정받기 위해 동전으로 순번을 정하는 모습에서 그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고, 다시 군대를 동경하게 된다. 하지만, 사제라는 이유로 면제된다는 사실에 더욱 실의에 빠진다.
이러한 삶 속에서 그에게 빛이 될 만한 사건이 일어난다. 신학생들의 성경복습 교사가 된 것이다. 이는 신학교 내에서의 승진이라고 할 만한 사건으로, 어느 정도 학생들과 다른 시간대에 생활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함께 있음으로 발생하는 그들의 조롱섞인 눈초리는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경계는 계속된다. 시험 때가 다가왔다. 모든 사제와 학생들이 그의 실력을 알고 있었지만, 피라르 사제의 제자인 그가 1등을 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시험날 감독관들의 유도질문에 넘어간 쥘리엥은 라틴어 시험에서 세속적인 작가의 이야기를 꺼내고, 거의 꼴찌에 가까운 성적을 받는다. 하지만 라틴어 세속작가에 대한 그의 학식은 결국 빛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주교의 내방을 통해서였다. 쥘리엥의 명성은 주교와 함께 식사하는 영예를 안겨주고, 거기에서 그는 호라티우스, 베르겔리우스 등의 작가의 시를 라틴어로 읊어나간다. 그는 주교에게 인정받고, 선물도 받는다. 그 이후로 신학생들은 갑자기 그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한다.
이때 피라르 사제는 신학교 교장직을 사임하고 평소부터 그를 매우 존경하던 드 라몰 후작의 초청을 받아 파리로 향한다. 후작은 그에게 자신의 비서가 될 것을 제안하는데, 피라르 사제는 그 자리에 쥘리엥을 천거한다. 피라르는 끝까지 쥘리엥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이 떠난 후, 더 힘든 생활을 보낼 쥘리엥이 염려되었던 것이다. 쥘리엥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드 라몰 후작의 집에 가기 위해 파리로 향한다.
연인과의 해후 그리고 새로운 생활
쥘리엥은 파리로 향하는 길에 베리에르에 들러 드 레날 부인을 만날 생각을 한다. 그는 저녁때 몰래 드 레날 시장의 집에 숨어 들어가 그녀와 감격적인 상봉을 한다. 그곳에서 그는 드 레날 부인이 자신에게 계속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편지는 피라르 사제가 쥘리엥 몰래 전부 불태워버린 것이다. 쥘리엥은 그녀에 대한 애정을 거듭 확인한다. 그때 드 레날의 집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발생한다. 그의 잠입을 도둑이 침입한 것으로 착각해, 하인들은 도둑을 잡겠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그는 발각될 위험에 처한 것이다. 그러자, “모든 게 끝장이에요!” 라면서 부인은 쥘리엥의 품 안으로 뛰어든다. “남편은 우리 둘 모두를 죽일 거예요. 저이는 도둑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게 아녜요. 난 당신의 품에 안겨 죽겠어요. 죽는 편이 살아 있는 것보다 행복해요.”
하지만 쥘리엥은 부인을 진정시킨다. 그리고 그녀에게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방을 빠져나와 파리로 향한다. 그리고 드 라몰 가족들을 만나면서 귀족사회와 사교계를 보게 된다. 그는 여러번 실수도 하고, 생소함 때문에 많은 고생도 하지만, 신학교에서 발휘했던 라틴어 실력으로 어느 정도 생활을 유지하고 후작의 비서 역할도 착실히 해나간다. 쥘리엥이 몇 달 동안의 시련을 겪어나가는 동안 후작은 끈기 있는 노력과 과묵함과 총명함을 보면서 그를 신임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영지 관리도 맡겼다.
후작은 급기야, 자신이 쥘리엥을 귀족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쥘리엥을 영국으로 보낸다. 영문도 모른 채 두 달간 영국을 다녀온 쥘리엥에게 붙여진 것은 후작의 친구인 드 숀느 공작의 막내아들이라는 칭호였다. 영국에 가서 주영대사에게 받아온 것은 그를 위한 훈장이었다. 외관상이지만 그는 신분상승을 이루고 그 기쁨도 맛본다.
야망의 열매와 사랑의 씨앗
“저 귀족처녀는 참 마음에 안 들어!” 후작부인에게로 걸어가는 드 라몰 양을 바라보면서 쥘리엥은 생각했다. 처음에 마틸드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행동과 말투는 언제나 자신을 깔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으므로, 자존심 강한 쥘리엥이 그것을 무던히 넘기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자유분방한 모습과 미모는 이미 사교계에서 주목을 끌어왔다. 그런데 마틸드는 틀에 박힌 귀족집안에서 자란 그 숱한 남성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마틸드가 보기에, 쥘리엥의 저돌적이고 반항적인 말투와 외모에서 풍겨나오는 매력은 귀족들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새로움이었다. 어느샌가 쥘리엥도 그녀의 미모와 자신감 있는 태도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범접하지 못하는 그런 엄청난 귀족의 딸, 장차 공작부인이 될 그런 여인이었다. 쥘리엥이 혼자 있을 때 마틸드는 말동무가 되어주고, 그렇게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늘어갔다. 서로의 애정이 점차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쥘리엥에게 상당히 호의적이었던 마틸드의 오빠 노르베르 백작은 둘의 만남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지만 마틸드의 구애는 더욱 강렬해진다. 마틸드는 노골적인 구애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편지를 받은 쥘리엥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마틸드는 자신을 친자식처럼 여기며 믿어주는 드 라몰 후작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마틸드와 사귀는 것은 후작에 대한 배신이었다. 하지만, 쥘리엥의 가슴에는 이미 그러한 도덕적 고민보다는 마틸드의 감각적 매력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가 답장을 보내면서, 그들의 서신왕래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둘은 그녀의 방에서 밤을 함께 보냈다. 이전에 쥘리엥과 드 레날 부인의 사이처럼 그들의 관계는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틸드는 쥘리엥에게 청혼했다. 그녀의 대담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마틸드가 머리카락을 잘라내 그에게 던졌다. “당신의 노예가 당신께 드리는 거예요. 영원한 복종의 표시예요. 저는 이성을 포기했어요. 제 주인이 되어 주세요.” 그녀는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정신이 나간 쥘리엥은 다시 사다리를 끌어다놓고 그녀의 방으로 올라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쥘리엥은 마틸드의 청혼에 선뜻 답하지 못했다. 또 한 명의 은인인 드 라몰 후작 때문이었다. 얼마 후 마틸드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다.
찰나적 행복감, 그리고 나락
후작의 노여움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쥘리엥에 대한 배신감으로 그를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 장차 공작부인이 될 그녀가 베리에르의 목수인 소렐 부인이 된다는 것은 끔찍한 악몽이었다. 하지만 마틸드나 쥘리엥 모두 인생을 걸고 시도한 결행이었고 마틸드는 이미 쥘리엥의 아이를 가진 상태였기 때문에, 후작의 회유와 협박은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많은 고민을 하던 후작은 결국 그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준다. 또한 쥘리엥에게는 드 라 베르네이라는 기사 작위를 내려주고 군대에 보낸다. 쥘리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중위가 된 쥘리엥 드 라 베르네이는 군대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고, 그의 모든 행동은 귀족과 다름없었다. 그런 생활 속에서 그는 마틸드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아주 급한 내용이었다. 곧장 그녀를 만나러 간 쥘리엥에게 마틸드는 울면서, 비열한 쥘리엥과 결혼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긴 후작의 편지와, 또 한 통의 편지를 내밀었다.
가난하고 탐욕스런 그는 빈틈없는 위선을 이용해, 약하고 불행한 여인을 유혹함으로써 어떤 신분과 지위를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사심 없어보이는 겉모양과 소설투의 번지르르한 문구로 가장한 그의 유일한 목표는 그 집안의 주인과 재산을 자기 뜻대로 좌우하려는 데 있습니다. 그는 불행과 영원한 회한을 남기는 사람입니다.
분명 드 레날 부인의 필체였다. 쥘리엥은 마틸드에게 말한다. “나는 후작님을 비난할 수 없소. 당연하고 신중한 처사지요. 어떤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을 이런 작자에게 주려 하겠소! 잘 있어요!” 그리고 그녀에게서 떠나 곧장 베리에르로 향한다.
쥘리엥은 시장 집을 찾아가 그 자리에서 드 레날 부인을 쏘았다. 부인은 쓰러지고, 쥘리엥은 곧장 헌병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끌려갔다. 부인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지 않았고, 생명에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진심으로 죽음을 갈망하던 부인은 깊은 실의에 빠졌다.
한편, 쥘리엥은 자신의 행동을 절대 후회하지 않았다. 판사 앞에서 그는 “내가 행한 살인은 우발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입니다.”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했다.
야망의 끝에서 피어난 영원한 사랑
미안함과 의무감이 교차되면서, 쥘리엥은 마틸드에게 자신을 잊고 그녀를 좋아했던 드 쿠루아즈와 결혼하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는 간수에게서 드 레날 부인이 죽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려 했다는 것, 따라서 자신은 죽어야만 한다는 논법에서는 그다지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쉘랑 사제를 만났을 때, 그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감옥 속에서 생활하는 쥘리엥에게 가장 잔인한 순간은 바로 자신을 믿어주던 사람과의 만남이었던 것이다.
며칠 후 마틸드가 귀족이 아닌 평민으로 가장해 그를 면회왔다. 그녀는 쥘리엥을 살리기 위해 베리에르 마을 전체를 뛰어다닌다. 그 지방의 일급 변호사들을 만나서 금전공세를 취한 끝에, 변호를 맡겠노라는 승락을 받았다. 그녀는 브장송에서 중요한 비중을 갖는 사건은 모두 드 프릴레르 사제가 좌우한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부탁한다. 하지만 쥘리엥 소렐이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 그의 온화한 표정은 재빨리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만일 쥘리엥이 죽게 되면 자신도 죽겠다고 생각한다.
마틸드가 몸을 바쳐가며 뛰어다닐 때, 쥘리엥의 머리속에는 드 레날 부인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사실이 쥘리엥을 더할 수 없이 괴롭혔다.
쥘리엥의 재판 판결일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몰려들었다. 배심원실의 작은 문이 열리자, 드 발르노 남작이 맨 처음 들어오고 뒤이어 배심원단이 따라 들어왔다. 배심원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재판 결과, 배심원단이 만장일치로 결의한, ‘쥘리엥 소렐의 계획적 살인에 대한 판결은 유죄’가 선언되었다. 뒤이어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쥘리엥은 상소를 포기한다. 그의 생각은 현재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머리속에 남은 것은 추억뿐, 그것도 드 레날 부인과 함께 한 추억뿐이었다. 상소를 외치는 마틸드의 분노어린 목소리는 단지 무의미한 메아리로만 울려퍼졌다. 며칠 후 드 레날 부인이 찾아온다. 자신을 계속 사랑했다는 것, 그의 행동은 죄도 아니며, 용서라는 말도 필요없다는 부인의 말에 쥘리엥은 감동한다. 감옥에서 그들은 더없이 찬란한 행복한 순간을 보낸다. 그녀는 이미 드 레날로부터 도망쳐나온 상태였다. 그녀는 그와 함께 죽어, 저 세상에서 같이 살겠노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쥘리엥이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한 것은 절대로 자해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얼마 안 남은 시간 동안 같이 사랑하고 싶다고 이야기할 뿐이었다. 사형집행일이 다가오고, 죽음이 가까이 와도, 그 두려움은 잠시뿐이었다.
사형집행일이 되었다. 잘려나가려는 그 순간만큼 그 머리가 그렇게 시적(詩的)인 적은 없었다고 쥘리엥은 생각한다. 한때 베르지의 숲속에서 지냈던 가장 감미로운 순간들이 한꺼번에 강렬하게 되살아났다.
모든 것이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끝났으며, 쥘리엥은 아무런 가식 없이 최후를 마쳤다. 마틸드는 쥘리엥이 선택한 무덤까지 따라갔다. 자기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남자의 머리를 두 무릎 위에 얼싸안은 채로. 그는 사제들의 장례의식에 따라 산중턱의 야생동굴에 안장되고, 마틸드의 정성으로 그 야생동굴은 대리석으로 장식되었다. 그리고 드 레날 부인은 쥘리엥과의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 조금도 자신의 생명을 해하려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쥘리엥이 떠난 지 사흘 후, 드 레날 부인은 자기 아이들을 포옹하면서 죽었다.
더재미있게읽기위하여
스탕달의 대표작에 관해서는 독자의 취향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 작가의 이름이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은 『적과 흑』과의 연관 하에서 일 것이다. 이 작품을 접하면서 우선 가지게 되는 의문점은 제목이 주는 상징이다. 이 작품이 출판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과연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는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여러 해석을 간추려본다면, 당시에 유행하던 색깔 명칭에 기인한 제목 붙이기에 편승하여 아무 의미없이 작가가 붙였다는 것이 있으며, 교회에 들른 쥘리엥 소셀이 어두컴컴한 교회바닥에 뿌려진 성수에 비친 진홍빛 커튼의 그림자를 보는 순간, 핏자국을 본 듯 전율하는 장면에서 기인한 것으로, 주인공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한 장면과 제목을 연결한 것도 있다. 또한 적색을 군인의 복장과 주인공의 급진주의에, 흑색을 사제의 법의와 수도회의 음모에 이중으로 연결시키는 해석도 있다. 우세한 해석은 있지만, 확실한 해석이 없는 이유는 작가 자신이 제목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과 흑』은 상당히 흥미를 유발하는 소설이다. 연애소설이 주는 강점 외에도 다른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이 작품은 상당히 현실참여적이다. 당시의 역사적 현실을 잘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당시 귀족층에 대한 비판은 이러한 특성을 잘 보여준다. 당시 낭만주의의 특성과 대비될 뿐만 아니라, 사실주의로 넘어가는 징검다리에서 함께했던 발자크, 위고 같은 작가와도 대비되는 부분이다. ‘소설은 거울처럼 세상의 모습을 비추는 것’이라는 『적과 흑』 속의 유명한 말은 스탕달의 의도를 잘 설명해주는 것이다.
『적과 흑』은 ‘사실주의’이라는 개념적 단어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현실의 반영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묘사에서도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 베리에르라는 도시를 묘사해나가는 장면은 그 기법상 상당한 평가를 받는다. 화자는 여행자라는 관점으로 도시를 훑어나간다. 여행자가 언덕에서 베리에르를 바라보고, 여행자가 그 언덕을 내려오고, 이 도시 안으로 들어가는 움직임과 풍경과 소리가 그대로 표출된다. 이러한 기법은 현재 우리 대하소설에서도 상당히 자주 이용되는 기법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주인공에 관한 부분이다. 쥘리엥 소렐은 명료하고 확고한 계급의식과 의식적인 계급투쟁의 개념을 소설 문학 속에 끌어들인 최초의 소설 주인공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불평등한 사회 질서에 도전하다 죽어간 반항아로서만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다양한 성격의 주인공이다. 그는 이전의 영웅적 인물과는 약간 다른 모습이다. 그는 과거와 현재의 우리들을 대변해준다. 그에게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야망이 있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애착도 있다. 또한 동시에 질투와 변덕이 있으며, 보편적 인간의 모습이라고 할 만한 우유부단함과 증오도 표출된다.
쥘리엥 소렐의 비극은 현재에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일 수 있다. 이 비극적 주인공의 이야기는 참수와 함께 더불어 끝장난 것이 아니라 수많은 형태로 되풀이되어 나타났으며, 또 계속해서 나타날 이야기다. 쥘리엥의 이러한 모습을 추적해가면서 소설에 동화돼 읽어나가는 것도 『적과 흑』을 읽는 즐거움이다.
언젠가 프랑스인들이 ‘프랑스인을 대표하는 소설 주인공은 누구일까’라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1위로 뽑힌 인물은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 2위는 쥘리엥 소렐이었다고 한다. 쥘리엥이라는 인물의 특성과 더불어 『적과 흑』이 우리들에게 어떠한 감흥을 주었는가를 잘 설명해주는 예다.
▣ 저 자 스탕달 Stendhal, Henri-Marie Beyle(1783∼1842)
본명은 앙리 벨 Henri-Marie Beyle. 끊임없이 사랑을 추구했던 열정적인 작가.
스탕달과 연인들
스탕달은 늘 외모에 열등감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여러 여인들과의 무성한 연애담을 만들어냈는데, 이러한 기질은 바로 외삼촌인 로맹 가뇽의 영향인 듯싶다.
스탕달의 첫사랑은 배우였던 퀴블리 양이었다. 여리고 소심한 성격의 스탕달이었지만 그는 용기를 내 퀴블리 양의 거처를 알아냈다. 그후, 먼발치에서나마 그녀를 바라보려고 그는 집 주변을 맴돌곤 했다. 그러나 막상 퀴블리 양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자 당황해하며 도망치고 말았다. 그의 첫사랑은 이렇게 싱겁게 끝나고 만다. 하지만 청년기에 이르러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한다. 상대는 여배우인 멜라니 길베르였다. 멜라니가 공연 때문에 마르세유로 내려가자, 스탕달은 과감히 따라 내려가 식료품점에서 근무하면서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 노력한다. 1800년 이태리에 체류했을 당시 스탕달은 안젤라 피에트라 그류아를 처음 보게 되는데, 그녀에 대한 스탕달의 열정은 무려 11년 동안 지속되다가, 마침내 1811년이 되어서야 그녀를 정부로 삼는 데 성공했다.
이 무수한 여인들 중에서 스탕달의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있었다면, 바로 마틸드 비스콘티니였다. 마틸드는 20세 연상인 남편과 별거중이던 두 아이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자유주의 사상을 지닌 성숙한 여인이었다. 스탕달은 마틸드야말로 자신이 늘 꿈꿔오던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여겨 끊임없이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스탕달의 애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마틸드는 냉담한 반응만 보인다. 결국 스탕달의 사랑은 마틸드의 죽음으로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마음에 상처만 남긴 채 끝난다.
그런가 하면 스탕달을 열렬히 사랑한 여인도 있었다. 망티 장군의 부인은 부모와 친교가 있었던 탓에 일찍부터 알고 지내던 여인이었다. 1824년 스탕달이 용기를 내어 사랑을 고백한 후, 스탕달과 망티 부인은 정열적인 사랑에 빠진다. 유부녀와의 사랑이었던지라 위험이 뒤따랐던 만큼, 그 둘은 비밀리에 만나야 했다. 한번은 스탕달이 지하실에 숨어서 사흘 동안이나 견디며 망티 부인이 가져다주는 음식만 먹고 지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와의 밀회는 성격 차이 때문에 끝나버린다. 이들 외에도 스탕달과 스치듯 사랑을 나눈 여인들로는 알베르트 뤼방프레, 알렉상드린 프티와 이탈리아 처녀 지율리아 리니에리 등이 있었다. 이들과의 사랑은 한낮 일시적인 불꽃장난 같은 사랑이었지만. 스탕달의 정열을 끊임없이 불사르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여인들과의 사랑은 바로 스탕달을 작가로 이르게 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랑은 곧 작품 속에 그려진 주인공들의 사랑이 되었다.
작가로서의 생애
스탕달은 당시 부유한 변호사였던 셰뤼벵 벨과 앙리에트 가뇽 사이에서 태어났다. 앙리에트는 스탕달이 일곱 살 되던 해에 죽었는데, 이 사건은 스탕달의 일생에 가장 큰 충격이었다. 유년기 시절의 어머니의 부재란 바로 어린 스탕달의 성격형성과도 연결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사랑이라는 이미지로 그에게 자리했던 반면, 아버지는 어린 스탕달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는 상당히 보수적이고 위선적이었을 뿐 아니라, 재산을 증식시키는 데만 몰두하는 구두쇠 같았다. 스탕달은 이러한 아버지에게 반항심만 품는다.
스탕달을 작가의 길로 이르게 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외할아버지인 가뇽이었다. 그르노블의 덕망있는 의사였던 그는 일찍이 18세기 계몽사상과 합리주의에 눈을 뜬 지식인이었다. 평소 문학에 조예가 깊던 그는 스탕달을 사랑으로 감싸주었다. 스탕달은 그를 통해 예술과 문학을 알게 되었는데, 특히 18세기 문학에 심취하게 된다. 실제로 스탕달은 수학에 뛰어난 소질을 지니고 있어서 파리의 이공계 전문학교인 에콜 폴리테크닉에 입학 기회도 주어졌다. 그러나 그는 몰리에르 같은 극작가가 되고 싶어 이를 포기했다.
한편, 스탕달에게는 외촌인 로맹 가뇽과 할아버지의 누님인 엘리자베스가 있었다. 로맹 가뇽은 준수한 외모에 호탕한 성격을 지닌 사람으로 뭇 여인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어린 스탕달은 그를 옆에서 지켜보며 열정과 연애에 대한 의식을 서서히 깨우친다. 그런가 하면 노처녀 엘리자베스는 스탕달에게 귀족적인 우아함과 명예를 자각하게 하는 본보기가 되었다.
스탕달이 태어난 시대는 나폴레옹이 개혁을 단행했던 혼돈과 격동의 시대였다.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는 나폴레옹의 깃발아래, 수많은 군중들이 구체제 정복에 가담했다. 평소 아버지에게 반항심이 깊었던 스탕달로서는 이러한 개혁의 움직임은 매혹적이었다. 나폴레옹을 숭배하던 스탕달은 실제로 친척 피에르 다뤼의 주선으로 나폴레옹 이태리 원정에 종군, 곧 소위에 임관하기까지 한다. 바로 이때 밀라노에서의 체류는 스탕달에게 이태리인들의 기질인 자유와 쾌락, 정열을 깨닫게 해주었다. 스탕달에 있어 이태리는 곧 정신적인 고향 그 자체였다.
1802년에 파리로 돌아온 그는 몰리에르 같은 극작가가 되겠다는 각오아래 문학수업을 했으나 실패하고, 1806년부터 제정 붕괴시기인 1814년까지 나폴레옹 정부에서 관리로 지낸다. 그후 나폴레옹의 실각과 더불어 실직하게 된 스탕달은 본격적인 문필 활동에 들어간다.
▣ 스탕달의생애와작품
1783 그르노블에서 출생
1796 그르노블의 중앙학교에 입학한다.
1799 수학경시대회 1등상 수상. 중앙학교 졸업.
파리 이공과대학(Ecole Polytechnique)의 입학시험을 치르나 실패한다.
1800 국방성 관리였던 다뤼의 덕분으로 국방성 임시 직원으로 취직한다.
6월 다뤼를 따라 제네바를 거쳐 이태리 밀라노로 간다.
1801 미쇼 장군의 부관에 임명. 이태리 롬바르디아 지방에 체류한다.
1802 그르노블, 파리에서 체류. 여배우들과 스캔들이 시작된다.
문학에 뜻을 두고 비극작품의 습작을 시작해나간다.
1803 희극 작품 창작에 전념. 생활고로 인해 그르노블로 돌아간다.
1804 스탕달의 사상에 영향을 끼친 18세기 철학자 드 트라시의 저서를 접한다. 멜라니와 만남.
1805 멜라니의 연인으로 마르세유에 가서 식료품상 점원으로 일한다.
1810 파리로 돌아와 참사원 보좌관으로 임명된다. 나폴레옹 제국에서 관료로 일한다.
1811 파리의 사교생활. 이어 이태리 밀라노에서 앙젤라 피에트라그뤼아를 만난다.
1812 러시아로 떠나 모스크바 전투에 참관, 나폴레옹 군대와 함께 퇴각한다.
1814 나폴레옹 실각. 연합군 파리 입성. 7월에 파리를 떠나 이탈리아로 간다.
앙젤라 피아트라그뤼아와 다시 사랑하다.
1815 ‘루이 알렉상드르 세자르 봉베’란 필명으로 『하이든, 모차르트, 메타스타지오의 생애 Vies de Haydn, de Mozart et de M tastase』를 출판한다. 앙젤라와 헤어진다.
1816 밀라노에서 습작과 사교 생활. 바이런과 만남. 12월 로마를 여행한다.
1817 이태리, 런던을 여행. 『이탈리아 연대기 Histoire de la Peinture en Italie』출판
1820 『연애론 De l'amour』탈고
1829 『로마 산책 Promenades dans Rome』집필을 완료하고, 『적과 흑 Le Rouge et le Noir』에 대한 착상을 시작한다.
1830 『적과 흑』출판
1834 『뤼시엥 뢰벤 Lucien Leuwen』을 구상하다.
1835 문인의 자격으로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는다.
『뤼시엥 뢰벤』을 구술하는데, 이 대작은 미완으로 남는다.
자서전적 에세이 『앙리 브륄라르의 삶 Vie de Henry Brulard』집필을 시작하다.
1838 약 50일이라는 기간 만에 대작 『파르므의 승원 La Chartreuse de Parme』을 구술하여 완성한다.
1839 『파르므의 승원』 출판
1842 집필 중에 3월 22일 저녁 7시파리의뇌브데카퓌가에서발작으로쓰
러진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다음날 사망한다. 3월 24일 몽마르트르
묘지에 안장된다.
▣ 참고문헌
이동렬, 『스탕달 소설 연구』 문학과 지성사, 1982
박범순, 「'적과 흑'에 나타난 인물들의 욕망과 구조 분석」, 한국외국어대학교, 1988
<“적과 흑(Le Rouge et le Noir)”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스탕달 지음, 주만종님 글씀>
<한동농원 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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