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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습관 바꾸기: 섹스, 다이어트, 알코올!

[중산] 2011. 10. 26. 12:29

 

몸 습관 바꾸기: 섹스, 다이어트, 알코올

 

섹스

인간의 성적인 삶은 5개 층으로 되어 있으며, 각각은 그 밑에 있는 층을 중심으로 발달한다. 핵심은 성정체성이다. 당신은 스스로 남자라고 느끼는가, 여자라고 느끼는가? 소년인가, 소녀인가? 성정체성은 거의 항상 생식기와 조화된다. 음경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남자라고 느끼고, 질이 있으면 여자라고 느낀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성정체성이 그 자체로 별도의 존재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는 희귀하고도 놀라운, 성정체성과 성기의 분리 현상 때문이다. 일부 남성들은 자신이 어떤 우주적인 실수에 의해 남자의 몸속에 갇혀버린 여자라고 확신한다. 반면 질과 46XX 염색체 구조를 지닌 어떤 여성들은 자신이 여자의 몸을 빌린 남자라고 확신한다. 이 두 부류는 성도착자라 불리며, 정상적인 성정체성의 가장 깊은 층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를 제공한다.

 

 

핵심 성정체성 바로 위에 자리하는 것이 기본적인 성지향성이다. 당신은 남자를 사랑하는가, 여자를 사랑하는가? 이성애자인가, 동성애자인가, 아니면 양성애자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 성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는 없고, 단지 자신의 환상적 삶에 주목하면 된다. 만약 이성에 대해서만 성적 환상을 품는다면 당신은 배타적인 이성애자이다. 반면 자위를 할 때 동성만을 환상의 주 내용으로 삼는다면, 당신은 배타적인 동성애자이다. 그리고 자위 행위시 두 환상을 모두 즐긴다면 당신은 양성애자다.

 

 

세 번째 층은 성적취향이다. 신체의 어느 부위나 어떤 상황이 당신을 흥분시키는가? 어떤 장면을 생각하며 자위를 하는가? 오르가즘의 순간 당신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여성의 몸에서 가장 에로틱한 부분은 그녀의 얼굴, 가슴, 엉덩이, 그리고 다리다. 또 대다수 여성들이 선호하는 남자의 신체 부위는 가슴, 어깨, 팔, 엉덩이, 그리고 얼굴이다. 흔히 이성의 신체 일부를 애무하는 것, 그가 벗은 모습을 보는 것, 춤, 친밀한 대화, 은은한 조명, 그리고 음악 등이 흥분 유발 상황이다.

 

 

표면 바로 옆에 있는 네 번째 층이 성역할이다. 당신은 대다수 남성이나 여성들이 하는 일을 하는가? 자신이 남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남성의 성역할을 선택하며, 대부분의 여성은 여성의 역할을 선택한다. 그러나 우리는 심심치 않은 정체성과 역할의 분리 현상에 의해 성역할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를테면 어떤 여성들은 트럭 기사가 된다. 그들은 지배적이고 공격적이며 거칠다. 또 어떤 남자들은 간호사가 되며, 상냥하고 부드럽고 인정 많은 성격을 갖고 있다. 성역할이란 용어는 역할을 자의적인 것으로 들리게 한다. 즉 그것은 마음대로 벗어던지고 그 순간에 더 적절한 것으로 쉽게 대체될 수 있는 단순한 의상과 같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성역할은 유행의 창조물이다.

 

 

표층은 성능력으로, 이것은 당신이 적절히 에로틱한 상황에서 적절한 상대와 함께 있을 때 얼마나 적절하게 행위할 수 있느냐이다. 정상적인 행위는 자극과 오르가즘으로 이루어진다. 당신은 이들 중 어느 하나에 문제가 있는가? 불감증과 발기불능(얼마나 모욕적인 말들인가?)은 남성의 조루와 여성의 오르가즘 결핍처럼 흔한 문제들이다.

 

 

나는 한 가지 기본적인 목적 때문에 우리의 성적인 삶을 5개 층으로 정리했다. 그것은 바로 무엇이 얼마나 쉽게 바뀌는가의 질문에 답하려는 것이다. 변화의 어려움은 깊이에 비례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층이 깊을수록 변화는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성도착증은 정체성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바뀌지 않으며, 그 다음으로 깊은 층인 성지향성은 변화를 매우 강하게 거부한다. 성적취향은 일단 한번 형성되면 그 힘이 강하지만, 어느 정도의 변화가 가능하다. 성역할은 상당 부분 바뀔 수 있지만,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반페미니스트들이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성능력을 바로잡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행위의 문제는 표층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변화의 가능성이 매우 희망적이다. 

 

 

알코올

알코올중독은 질병인가?: 알코올중독은 질병일까? 이보다 더 격렬한 논란을 야기했던 약물남용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알코올중독방지회는 알코올중독은 질병이며 중독자는 그 앞에서 무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사람들은 100년 이상 동안 술에 취하는 것은 질병이 아니라 악덕이며, 알코올중독이 질병이 아닌 것은 도둑질이나 폭력이 질병이 아닌 것과 같다.고 말해왔다. 학자에게 있어 이 논쟁은 진실과 언어의 신성함의 문제이며, 치료자에게는 치료 전술의 문제다. 어쨌든 이것은 불가피하게 치고받기식 언쟁의 대상이 되기 쉬운 주제다.

 

 

우리가 자신의 실패를 스스로에게 설명하는 방식은 알코올중독을 질병으로 보는 개념의 진실성과는 달리 단순히 학문적인 것이 아니다. 사실 인간이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설명하느냐는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 영구적이고 근원적이며 개인적인 설명이 맞다고 믿을 때는 자신의 문제를 일시적이고 제한적이며 비개인적인 언어로 설명할 때보다 더욱 불행해진다. 예컨대, 자신의 실직을 재능이 없는 탓으로 돌릴 때(영구적, 근원적, 개인적), 우리는 우울해지고 무력감을 느끼며 일자리를 찾아나서지도 않고 실패감에 남은 생을 저당잡히게 된다. 반면 실직의 원인을 경기침체라고 믿게 될 경우(일시적, 제한적, 비개인적), 우리는 곧 다른 일자리를 찾고 우울증을 털어내며 열등감이나 무력감을 느끼지도 않고 삶의 다른 영역에서 계속 잘 살아간다. 이것이 내 책 『낙관성 학습』의 주요 관심사이며, 알코올중독의 질병 개념에 직접 적용된다.

 

 

누군가가 자신이 술에 의존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때, 그래서 마침내 그의 인생, 가족, 직업, 그리고 그가 소중히 하는 그 외의 모든 것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에 눈을 뜰 때, 그는 이 현실을 자신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하나는 그것을 질병으로 설명하는 것이고, 다른 가능성은 그것을 악덕, 잘못된 선택과 나쁜 성격의 결과, 또는 죄로서 설명하는 것이다. 질병을 악덕과 비교해보라. 질병은 일시적인 반면(그것은 치유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악덕은 더 영속적이다. 질병은 더 구체적인 반면, 악덕은 근원적이다. 질병은 비개인적이지만 악덕은 당신을 죄인으로 기소한다. 바로 당신이 선택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질병이 악덕보다 더 낙관적인 설명이며, 낙관적 태도는 변화가능성과 관련이 있다. 비관적인 꼬리표는 수동성을 조장하지만 낙관적인 꼬리표는 변화를 시도하게 한다. 결국 스스로를 병이 있다고 여기는 알코올중독자는 우울증과 무력감을 덜 느끼며 자부심도 더 높고,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문제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중독자보다 변화하거나 변화되기 위해서 더 열심히 노력한다. 질병이라는 꼬리표가 주는 이익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를 의료보험 체계에 탑승할 수 있게 해주는 티켓이라는 점이다.

 

 

중독성 성격이 존재하는가?: 알코올중독자들은 우울하고 불안하며 의존적이고 자기회의와 자기혐오로 가득 차 있으며 열등감에 젖어 있다. 또 그들의 가장 나쁜 성격상의 특성으로는 비관적이고 자멸적인 태도, 피해망상, 공격성, 정신병 성향 등을 들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상의 사실들을 근거로 이런 특성들 몇 가지가 뭉쳐 있는 중독성 성격이 있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이것은 이런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중독성 물질이나 행동의 손쉬운 표적이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굳이 알코올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마약, 섹스, 도박, 또는 담배를 기웃거리게 된다는 것이다. 또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적인 고통을 마비시키기 위해 술에 의지하게 된다는 사실을 함축하기도 한다. 우리는 자신이나 이런 성격들을 보이는 우리와 가까운 누군가가 위험한 상황에 있다고 걱정하기 쉽다.

 

 

이것은 비록 오랜 기간의 노력과 방법론상의 주요 발전(알코올중독자의 수명에 대한 장기적인 연구)이 필요하긴 했지만, 분명하게 다루어진 문제다. 중독성 성격에 대한 개념은 알코올중독자를 가령 1년이나 심지어 5년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만 관찰한 데 근거를 두고 있다. 이런 식이 되면 우리는 이런 소위 중독적 특성을 상당수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 사람들이 알코올을 남용하는 동안 그들을 연구하는 것이다. 어느 것이 먼저일까? 중독성 성격일까, 아니면 알코올 남용일까? 술이 내 인생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상황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것이 불안, 우울증, 범죄, 의존성, 비관주의, 열등감을 불러오는 것일 수 있다. 아니면 이런 특성들이 알코올중독을 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알코올중독은 진행성 질병인가?: 알코올중독은 질병일 뿐 아니라 진행성 질병이라는 것이 알코올중독방지회의 핵심 주장이다. 매독이 그 진행이 억제되지 않을 때 페니스의 통증에서 사지의 무기력과 광기를 거쳐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알코올중독도 억제되지 않을 때 사교적 음주의 수준에서 남용과 중독을 거쳐 죽음으로 진행하게 된다. 일단 유전적으로 중독 성향이 있는 누군가가 술을 과음하기 시작하면, 결과는 두 가지 중 하나뿐이다. 바로 술에 절어 죽거나 술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것이다.

 

 

알코올중독이 확실히 진행성 질병이라는 데는 일리가 있다. 알코올은 내성이 생기게 한다. 똑같은 정도의 취기를 느끼려면 점점 더 많은 양이 필요한 것이다. 금단증상과 함께 내성이 바로 중독의 실체다. 알코올이나 헤로인이 신체적 중독을 유발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만약 어떤 알려진 화학적이거나 생물학적인 병리현상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오히려 신체적 중독이라는 명칭이 틀린 이름이다. 그것은 행동상의 사실들만 지칭할 뿐이다. 약효를 보려면 점점 더 많은 물질이 필요하고, 만약 복용을 중단하면 금단증상을 겪는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음용 알코올의 양이 많아지는 만큼 증상이 악화된다는 의미다. 이 모든 과정은 결국 성공적인 절주나 죽음으로 끝장을 본다.

<“아픈 당신의 심리학 처방전”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마틴 셀리그만 지음, 역자 권오열님, 물푸레>

 

                                                                                               <베트남 하롱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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