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그의 세기
이 소제목보다 더 많은 오해의 소지를 낳을 수 있는 표제어도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이트는 19세기와 20세기, 두 세기에 걸쳐 살았다. 그러면 과연 어떤 세기가 그에게 더 큰 의의를 지닐까? 그가 살아있다면,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그의 세기’와 같은 이중성과 모호성을 내포한 제목을 마음에 쏙 들어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양의성과 다의성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신과의사이자 정신적 모호성과 언어적 모호성을 다루는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19세기는 프로이트를 만들어낸 세기이다. 그에게 모든 교육의 전통과 정신적 도구, 문화적/학문적 자양분을 공급했다. 그에 반해 20세기는 세계 지성사에 혁명을 가져온 프로이트가 만든 세기다. 그는 20세기를 자신의 세기로 만들었다. 다시 말해 20세기는 프로이트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깊숙이 개입한 세기였다.
프로이트가 태어난 19세기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독일에서 지배적인 예술사조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세기다. 19세기는 위대한 사상가의 세기다. 괴테,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Friedrich Holderlin),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Georg Hegel)의 시대다. 그림동화집을 편찬한 야코프 그림(Jakob Grimm)과 빌헬름 그림(Wilhelm Grimm) 형제가 활약한 세기다. 미술 분야에서는 낭만주의 풍경화가 카를 구스타프 카루스(Carl Gustatv Carus)와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카스파르 프리드리히(Casper David Friedrich)가 활동한다. 한마디로, 독일의 19세기는 예술과 문학과 철학 분야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우뚝 솟은 봉우리를 형성한 시기다.
프로이트는 바로 그런 19세기, 즉 정신적/사상적 전복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 시대에 태어난다. 사상적 혼돈이라는 시대 상황에서 그는 정신분석학이라는 새로운 정신적/심리적 이론체계를 통해 기존의 학술활동에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해 준다. 프로이트의 저서에는 기존의 사유를 뒤집어엎는 부분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그의 저서는 각양각색의 반대자에게 훌륭한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저술활동을 통해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학문적 자립성을 보여주고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독단적 자만심을 날카롭게 공격한다.
사실 정신분석학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인간에 의해 입증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의 유산이다. 그래서 정신분석학의 선구자들을 찾아낼 수 있으며, 그들이 남긴 발자취를 추적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자신이 창안한 정신분석학의 선구자에 해당되는 인물들이 인간사에 남긴 흔적을 대부분 분류하고 정리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의 견해를 존중하고 자신의 것으로 적극 수용한다. 그렇다고 해서 프로이트가 선배들이 남긴 발자취를 무조건 따른 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무의식이란 광범위한 분야가 화두가 되었을 때는 자기 목소리를 냈다. 그는 무의식을 독자적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자신의 정신분석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을 어디에선가 발견하고 그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면 수용하는 데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프로이트의 기본 원칙은 ‘신경증’에서 ‘정상적인 것’의 규범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더니즘의 인문적인 전통을 따르는 인간 연구자 프로이트는 새로운 학문 분야인 정신분석학에 인간의 존엄성을 받아들인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과 소위 건강한 사람, 정상적인 사람을 모두 동등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의사와 환자는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적이고 수평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의사와 환자를 평등한 관계로 만든 것이 정신분석학이란 과학혁명이 가져온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이다.
열려라, 참깨!
프로이트의 사유는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인간 프로이트가 세계에 미친 영향력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는 세상에 대해 일종의 사명감을 지녔다. 비록 그런 사명감이 그의 겸손함 속에 숨겨져 있었지만 그것을 감지할 수 있다. 그의 강인한 성격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심리/정신 치료사로서 프로이트는 통찰력, 관찰력, 인내심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특히 무한에 가까운 인내심은 그가 몇 년에 걸쳐 환자들이 겪는 신경증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는 항상 파급적인 영향력을 가져오는 새로운 인식에 대해 열린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학문 분야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조차도 결합하여 조합할 수 있었다.
프로이트가 상담한 정신분석 환자 중 적지 않은 이들이 훗날 정신분석가가 된다. 프로이트는 수많은 해외 강연을 통해 정신분석학을 전 세계에 확산하는 데 기여한다. 특히 1909년 8월부터 9월까지 미국의 초청을 받아 미국에서 머무르면서 ‘정신분석에 대한 다섯 번의 강연’을 통해 미국 내에서 정신분석학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다. 정신분석학이 확산되면서 점차 정신분석학 관련 국제학회가 설립되고 학술회의가 개최된다. 정신분석학이 다루는 주제들은 복잡할 뿐만 아니라 그 주제들이 사회에 미치는 파괴력이 또한 엄청났다. 그래서 정신분석학을 둘러싼 분열과 반목이 끊이지 않고 나타난다.
프로이트주의 정신분석학파에 분열과 반목이 있었다고 해서 완전한 결별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단지 프로이트주의에서 분열되어 나온 여러 유파가 있을 뿐이다. 새로운 심리학 분야로서 자리 잡은 정신분석학에 대한 비판가들은 그것이 여러 분파로 쪼개지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매우 전염성이 높은 위험천만한 유행병이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가고 있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가장 중요한 문필가 중 한 사람인 카를 클라우스(Karl Kraus)가 정신분석학에 가한 비판이 흥미를 끈다. “정신분석학 자체가 질병인데, 그 질병의 치료법으로 정신분석학이 제시된다.”
프로이트는 과학자로서 그리고 평화연구가로서 탁월한 업적을 세상에 남겼다. 그의 탁월함이 돋보이는 분야는 또 있다. 만약 언어 구사력과 관련된 노벨상이 있었다면, 프로이트는 확실히 그 상을 수상했을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김나지움 시절에 독일 고전주의 작품을 강독했으며, 라틴어와 헬라어를 마스터하여 원전을 읽었다. 그는 뛰어난 언어 능력과 두드러진 언어 감각을 보였다. 그의 문체는 간단하면서도 명료했으며, 형식면에서 완벽했다. 또한 미사여구와 같은 불필요한 꾸밈없이 필요한 것과 본질적인 것에 집중했다.
프로이트가 세상을 떠난 해인 1939년 7월, 츠바이크는 스페인 출신 초현실주의 화가로,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 깊은 관심을 보인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와 함께 런던의 메어스필드 가든스 거리에 있는 집으로 프로이트를 직접 방문한다. 츠바이크는 1939년 9월 26일 프로이트를 위한 추도사를 낭독한다. 츠바이크의 추도사가 낭독되기 3일 전 프로이트는 자신의 주치의이자 오랜 친구인 막스 슈어 박사로부터 생의 마침표를 찍을 정도의 모르핀을 주사로 투여 받는다. 슈어가 프로이트의 안락사를 도왔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모르핀 쇼크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가 곧 마지막 숨을 거둔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 정신의 금고를 여는 일에 전념한 선구자가 여럿 있었다. 그 금고를 열 수 있는 올바른 단어 조합을 발견한 최초의 인물은 프로이트이다. 프로이트는 신경증 환자를 단어로 치료한다. 이 말은 매우 부적절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신경증 환자가 정신 건강을 회복하는 데 매개체 기능을 한다. 언어는 또한 인간의 의식 상태를 결정하는 특질이다. ‘무의식’이란 용어를 도외시한다고 하더라도, 프로이트가 인류에게 남겨준 아름다운 개념들, 예를 들어 ‘억압(Repression)’, ‘저항(Resistance)’, ‘초자아(Super-ego)’, ‘전이(Transference)’, ‘승화(Sublimation)’, ‘리비도(Libido)’, ‘은폐기억(Screen Memory)’, ‘원초적 장면(Primal Scene)’ 등과 같은 개념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었을까?
<“거인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한스 크리스티안 후프 외 지음, 역자 김형민박사,현문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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