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없이는 하루도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오늘날 그들이 차지하는 경제사회적 위상은 너무도 높고 중요하다. 그런데도 왜 서민들은 그들을 착한 얼굴로 분칠한 나쁜 존재라고 여길까. 어떤 이는 은행을 두고 ‘겉과 속이 다른 두 얼굴의 조직’이라면서 이렇게 평하기도 한다. “만약 은행이 당신에게 친절하다면 당신이 좋은 먹잇감이라는 뜻이고, 불친절하다면 더 이상 빼앗아 먹을 게 없다는 뜻이다.”
금융회사들이 이처럼 서민들과 멀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우리는 은행에 참으로 많은 기대를 품고 살아왔다. 1997년의 IMF체제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는 동안, 국민들은 수많은 은행원들이 정든 직장을 떠나는 광경을 지켜보며 그들과 아픔을 나눴다. 정부가 부실한 은행들을 살리기 위해 수십조, 수백조원에 달하는 혈세를 쏟아 부어도 누구 한 사람 군말을 늘어놓지 않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국민의 세금을 창고에 가득 채운 은행들이 한 해 1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내면서 지점장들에게 1억이 넘는 연봉을 퍼주어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금융회사들은 이제 ‘따뜻한 은행’이라는 이미지를 스스로의 노력으로 되찾아 서민의 진정한 친구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많은 이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은행들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아직도 그들의 수익원이 서민을 상대로 하는 온갖 형태의 이자놀이와 수수료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만 봐도 그렇고,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경영기법에다 서민에게만 유독 냉혹하게 대하는 모습이 예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것만 봐도 그렇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금융정책의 사령탑인 김석동 금융위원장마저도 ‘은행을 절대 믿지 마라. 나도 은행에 세 번이나 속았다’며 목소리를 높였을까. 우리 주변에는 금융회사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힘든 곳들이 널려 있다. 탐욕에 눈먼 대주주 때문에 문을 닫은 저축은행들을 보라. 그곳에 평생 모은 돈을 맡겼다가 한순간에 날리고는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네 금융회사들의 엄연한 자화상이다.
많은 이들은 미국의 재정위기와 신용등급 강등을 고리로 촉발된 새로운 금융위기의 엄습과, 그 과정에서 우리의 은행들에게 닥친 달러 위기의 그늘을 지켜보면서도 또 한 번 두려움에 떨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은행들이 그동안의 편협하고 왜곡된 경영방식에서 벗어나 금융회사 본연의 존재 의미를 구현해나갈 때가 아닐까? 이 책은 많은 이들의 이러한 바람에 답을 찾아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우선 금융회사들의 온갖 모순된 현황들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림으로써 반성의 출발점으로 삼으려 했다. 그렇기에 금융회사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보면 분통이 터질 대목이 곳곳에 등장하겠지만, 그들이 보다 진보한 모습으로 환골탈태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조금은 지나칠 정도로 비판적인 기술을 했다고 여겨주기 바란다.
새롭게 등장한 금융위기의 기운 속에서 우리 금융회사들이 처한 현실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한 이 책을 통해, 독자 여러분은 금융회사들이 벌이는 돈의 마술을 보다 촘촘히 알게 될 것이고 ‘좋은 은행, 나쁜 은행’의 가장 기본적인 판별법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기자들의 일선 취재 경험과 금융경제학을 합성한 기록물이다. 따라서 시중에 범람하는 재테크 서적으로 치부하지 말고 은행들의 냉혹한 금융논리에 맞서는 서민을 위한 ‘금융회사 사용 설명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요약)
금리,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금융회사의 가장 기본은 대출과 예금이다. 금융회사들은 대출과 예금에 복잡한 함수를 담은 수학 방정식을 뒤섞어 가면서 예금금리와 대출금리라는 것을 만들어 낸다. 여기에 다양한 색채로 분칠을 하면서 금융상품들을 만들어 고객을 유혹한다. 그렇다면 금융회사들은 도대체 대출과 예금금리를 어떻게 정할까. 금융회사들이 만든 ‘비밀의 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은행들이 말하는 설명을 단순화하면 이렇다. 대출금리와 예금금리를 구성하는 방식은 가장 쉬운 표현으로 ‘원가+-알파’라는 개념을 대입하면 알 수 있다. 대출금리는 원가에 마진(은행이익)을 더해 정하면 된다. 예금은 원가에서 은행의 이윤을 빼고 금리를 적용한다. 원가가 4%라면 대출금리는 4.5%(은행수익은 0.5%p), 예금금리는 3.7%(은행 수익 0.3%p)가 되는 식이다. 단순히 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산정공식만 놓고 보면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해서야 금융회사들이 돈을 벌 수 있겠는가. 고객들이 뻔히 알 수 있는 답을 갖고 돈을 벌려 할리 없다.
결국 문제는 다음이다. 일종의 2차 방정식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은행의 금리적용 방법을 찬찬히 뜯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시시때때로 언론을 통해 등장하는 것이다. 은행이 만들어내는 ‘금리 따먹기’라는 비밀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먼저 예대금리차(은행의 수익을 결정하는 것으로 대출금리에서 예금금리를 뺀 것을 말한다. 예대마진이라고도 한다)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009년 말 예금은행의 대출과 예금금리차(잔액기준)는 2.68%p였다. 그러던 것이 2010년 말에는 2.85%p로 뛰더니 2011년 4월 말에는 3.01%p로 3%p를 넘어섰다. 금융회사들이 버는 천문학적 이익은 바로 여기에서 생기는 것이다. 은행이 벌어들이는 이익 대부분이 예대마진, 즉 이자를 통해 만들어진다.
이런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있다. 바로 은행의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인 NIM(Net Interest Margin, 순이자마진)이라는 것이다. NIM은 금융회사가 자산을 운용해 낸 수익에서 조달비용을 차감에 운용자산 총액으로 나눈 수치다. NIM이 높다는 것은 나쁘게 말하면 예대금리를 그만큼 많이 책정해 이자 따먹기 장사를 했다는 뜻이다. 2011년 상반기의 경우 리딩뱅크(우량은행)라 자부하는 KB금융의 NIM은 3.04%에 달했는데, 전년 같은 기간보다 0.39%p나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이자 장사를 심하게 했다는 뜻이다. 신한금융은 3.65%로 대형 금융회사 가운데 가장 많이 예대마진을 책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이 하나 발견된다. 2010년의 경우 전년 대비 대출금리와 예금금리는 모두 낮아졌지만 두 금리의 차는 오히려 더 벌어졌다는 점이다. 겉보기에는 시장금리 수준에 따라 대출과 예금금리가 합리적으로 조정된 것 같지만 은행의 수익은 더 커졌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이 결정하는 기준금리와 관계없이 은행들은 자신들이 정하는 예금과 대출금리를 통해 끊임없이 이익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은행이 2010년 10조원에 육박하는 수익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합리성이라는 가면을 쓴 대출, 예금금리 산정의 비밀 때문이다. 가산금리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대출이자는 더 내게 하고 이자는 조금 받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여기 대표적인 사례가 하나 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장에서는 CD(양도성 예금증서)금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CD는 우리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준 좌표가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자세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하면 금융의 복잡한 기술적 요인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이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금융회사들이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은행들은 CD에 얹어 대출할 때 적용하는 가산금리라는 것을 정교하게 조정해 수익을 유지했다.
일각에서는 코픽스(COFIX, 자금조달지수)를 기준으로 하는 주택담보 대출금리가 CD금리보다 더 낮다는 점도 주목한다. 코픽스라는 단어를 낯설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코픽스라는 단어는 사실 그렇게 어려운 단어가 아니다. 집을 담보로 은행대출을 받으려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 봤을 용어다. 코픽스는 수십 년 동안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기준으로 하던 CD라는 물건이 제대로 기능을 못하자 금리의 변동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겠다면서 새롭게 도입한 기준금리 지표다. 은행들이 실제로 자금을 조달한 원가를 대출금리에 제대로 반영하도록 금융당국이 반강제적으로 도입하게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2011년 기준 코픽스는 CD연동금리보다 약 1%p금리가 낮다. 대신 변동성은 더 적다. 최근에는 코픽스로 대출을 받는 사람이 많다. 이것을 보면 당장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바로 은행이 지금까지 과도하게 높은 수익을 취해 온 것 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코픽스는 은행의 자금 조달 원가를 최대한 반영한다는 뜻에서 만들었다. 예금은 물론 은행채 등의 조달 금리를 감안한 것이다. 반면 CD연동대출은 CD금리를 기준으로 가산금리를 얹어서 만드는데 은행들이 CD를 통해 자금을 끌어들이는 것은 극히 미미했다. 코픽스로 했더니 대출금리가 더 낮아졌다는 것은 결국 그동안 은행들이 실제 원가보다 금리를 더 받아 온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예나 지금이나 자금 조달 구조나 방식은 같은데 원가를 감안한 상품을 만들었더니 금리가 더 싸졌다는 얘기는 지금까지 추가 이익을 거둬 왔다는 얘기가 된다. 특히 대출금리는 원가가 얼마인지 모른다. 금융회사에게 대출금리는 철저하게 ‘영업 기밀’이다. 어떤 업종에서도 원가를 공개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로 금융회사들은 대출과 예금금리 산정 기준을 밝히지 않는다. 물론 그들이 스스로 정한 룰은 있다. 하지만 워낙 금리 산정 방식이 복잡하고 과정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예금자에게는 의미가 없다.
예금금리의 불투명성은 더 크다. 은행은 시장금리 상황을 감안해 예금 기준금리를 정한다. 그러나 자세한 선정 기준은 공개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고객들은 시장금리가 오르면 막연히 수신금리가 오를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작 자세하게 시장 상황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음을 금세 알 수 있다. 물론 은행들은 기준금리가 오르더라도 자신들이 돈을 조달하는 이른바 ‘금융채’, 즉 자신들이 발행한 채권의 금리가 변하지 않아 예금금리를 올리지 않는 것이라고 해명한다.
겉만 보면 은행들의 논리가 일면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금융권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이는 전적으로 은행권의 논리라고 얘기한다. 은행들이 금융위기를 맞아 유동성 확보를 위해 최고 연 8%대의 특판 예금을 팔았지만 수신 잔액이 많아지자 시장금리와 상관없이 예금금리는 올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배부른 은행들이 금리를 갖고 부리는 얄팍한 주술 행위라 할 수 있다.
<“은행의 거짓말”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김영기, 김영필 지음, 홍익출판사>
▣ 저자
김영기: 성균관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1994년 서울경제신문 입사. 국제, 금융, 산업부 등을 거쳐 현재 경제부 근무 중. 2009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오감경제’ 코너 진행. 저서로는『김우중 오디세이, 세계 최대의 파산』, 『얼굴 없는 사냥꾼』(공저)가 있다. 1997년 말 스탠리 피셔 IMF 부총재가 한국을 극비리에 방문, 구제금융 협상을 벌인 사실을 특종 보도하여 1998년 백상기자대상을 수상했고, 2001년부터 2005년까지 5년 연속 백상서경기자상을 받았다. 2005년 5월에는 ‘기로에 선 외환관리’라는 제목의 기획물로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언론재단이 주는 ‘175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바 있다.
김영필: 서울경제신문 기자. 현재 금융부에서 은행권과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을 취재하고 있다. 생명보험 상품의 과다한 보험료 책정의 문제점을 지적한 기사 〈묻지마 보험료 천국〉으로 ‘이달의 기자상’과 ‘씨티 대한민국 언론인상’을 수상했다. 또한 KBS 〈아침마당〉 출연자의 거짓사연 보도와 기업은행과 일본은행의 통화스왑 계약을 단독 보도해 ‘백상서경기자상’을 받았다. 발로 뛰며 시장경제와 서민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기사를 쓰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