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캐피탈, 카드… 이상한 자동차 할부금리
회사원 K씨는 현금 500만원을 주고 중고차 한 대를 샀다. 할부로 사려 했던 K씨는 금리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대출이자가 무려 연 25%에 달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내 마음을 접었다. ‘서민들은 중고차 하나도 제대로 살 수 없나’ 싶어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고리업자’라며 혼쭐이 나고도 대형 캐피탈 업체들의 높은 금리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이중에서도 해묵은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동차 할부금리다. 특히 중고차 할부금리는 신용등급에 따라 연 20%대 후반에 달한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36개월 할부 및 신용등급 1등급인 사람이 중고차를 사면 최대 연 20%대의 금리를 물어야 한다. 신용등급이 내려가면 20%대 중후반까지 금리가 뛴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생겨날까. 문제는 바로 딜러들에게 주는 리베이트 때문이다. 딜러들은 차 구매 고객이 할부를 원하면 캐피탈사 등을 소개해 주는데 그 대가로 금융사에서는 소개비용을 제공한다. 물론 캐피탈사들은 이 비용을 고스란히 고객에게 떠넘기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신차는 약 4%p, 중고차는 무려 10%p에 달한다. 서민들에 대한 높은 금리 부담이 딜러들의 배만 불려 주고 있는 셈이다. 특히 신차는 대부분 할부로 사는 경우가 많다. 4%p의 금리만 내릴 수 있어도 보통 직장인들의 부담은 확 줄어들게 된다. 여신금융사의 자동차 할부 잔액은 2010년 9월 말 기준 8조 3,834억 원에 달한다. 대출금리를 1%p만 낮춰도 연간 839억 원의 이자비용이 줄어든다. 딜러들에게 흘러 들어가는 지나친 수수료만 없애도 부담 없이 자동차를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새 차는 그만두고 중고차 하나 힘겹게 사려 하는 서민들에게도 금융회사들은 기술을 부리고 있다.
돈에 속고 돈에 울고
보통 사람들은 금리가 높은 수준에 있을 때 돈이 춤을 출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자가 낮을 때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을 찾아 움직이는 것이 돈을 쥔 사람들의 속성이다. 불나방처럼 움직인다는 표현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금융회사가 주는 금리가 워낙 박할 때,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높은 이자가 붙은 곳을 보면 속된 말로 ‘필’이 확 꽂힌다. 바야흐로 고금리가 고객을 유혹하는 세상이다. 이럴 때 금융회사에 몸담은 사람들을 보면 금융공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가 연상된다. 그들은 사람들의 불나방 심리를 이용하듯 곳곳에 ‘최고금리’라고 분칠한 상품을 내건다. 미끼 상품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래도 은행인데……’하는 소박한 마음으로 이를 유심히 지켜보다가 이내 금융회사의 문을 열고 총총히 들어간다.
하지만 착각은 금물이다. 돈이 간교한 것처럼, 이를 다루는 금융회사 사람들의 머리는 정말로 비상하다. 고금리로 잔뜩 분칠했지만, 무조건 높은 금리를 주는 은행은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당연하다. 금융의 가장 기본 공식 중 하나는 ‘위험=이자’다. 이자를 더 많이 주는 곳은 위험이 크다는 말이다. 따라서 고금리를 주는 곳은 그만큼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사람들이 없다는 뜻이고, 고금리를 전면에 내세워서라도 돈이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저축은행 아닐까. 저축은행의 고금리에 홀렸던 고객들은 갑작스러운 영업정지에 수년간 모아 왔던 돈을 떼이게 됐다. 이자 한 푼이라도 더 받아 보자던 서민들은 많았지만 한 푼의 이자 뒷면에 도사린 위험은 보지 못한 셈이다.
저축은행이 발행했던 후순위채는 특히 그렇다. 사실 후순위채라는 이름 자체가 무척이나 어려운 용어다. 후순위채는 ‘채권을 발행한 회사가 파산했을 때 변제받을 권리가 가장 나중에 돌아오는 채권’을 말한다. 그만큼 선순위에 비해 위험할 수밖에 없다. 대신 위험한 만큼 수익률은 높다. 지난 2009년 당시 집중적으로 발행된 저축은행 후순위채의 금리는 연 8%대에 이른다. 통상 만기가 5년 이상인데, 중도해지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고금리에 취한 사람들은 저축은행들이 내거는 높은 금리를 뿌리치기가 힘들다. 은행의 정기예금이 기껏해야 3~4%인데 그 두 배의 금리를 준다니 그 위험성을 모르는 사람들은 달려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연8~9%의 금리를 준다는 말에 한 때 저축은행의 후순위채는 불티나게 팔렸다. 그러나 고금리의 대가는 혹독했다. 시장 좌판에서 평생을 모아 한 푼이라도 이자를 더 받겠다면서 순진한 마음으로 저축은행을 찾아갔다가 돈을 떼인 부산저축은행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이 토해 내는 울음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그들이 과연 후순위채가 무엇인지나 알고 투자를 했겠는가. 투자는 고객이 스스로 위험을 알고 책임을 지는 것이 금융의 진리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이런 진리를 수십 번 공부했다. 때문에 잃어버린 돈을 내놓으라고 망한 저축은행을 찾아 항의하는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변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후순위채라는 기묘한 상품을 만들어 순진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평생 모은 돈을 잃게 한 금융회사의 사람들은 파렴치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저축은행에서 후순위채를 산 사람의 절반 이상이 예순 살을 넘긴 사람들이라니, 더욱 한숨이 나온다. 부산저축은행의 후순위채를 산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더욱 기가 막히다. 부산 연산동에 사는 한 할아버지는 60년간 공사판에서 막일을 하고 고철과 폐지를 주워 모은 돈 1억 4,000만원을 후순위채에 넣었다가 떼였다. 후순위채를 산 대부분의 노인들이 “이자 많이 주는 예금인 줄 알았다”고 이유를 얘기했고, 저축은행 직원들은 위험을 전혀 얘기하지 않은 채 “튼튼한 은행이니 믿어도 된다”고 자신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금융이라는 단어를 들이대기도 무색할 정도다.
너무 안타깝고 울화가 치미는 사연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런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평범한 진리가 있다. 바로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등식이다. 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줄 때는, 다른 저축은행보다 더 센 이자를 보장한다고 말할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매사에 공짜는 없다. 금융회사들이 자선 단체도 아니고, 아무런 위험도 없는데 괜히 이자를 더 주겠는가. 위험을 잊고 이자만 탐닉했다면, 정말 냉정하게 얘기해서 금융회사를 욕할 자격도 없다. 그것이 자본의 논리이고, 금융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원칙이다.<“은행의 거짓말”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김영기, 김영필 지음, 홍익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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