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치 혀로 정계를 휘어잡다_ 이임보와 당 현종
영국인 데니스 트위체트Denis Twitchett의 저작 『케임브리지 중국사』 「수당편」에서는 당唐 현종玄宗 시절의 이임보에 대해 매우 노련하고 치세에 재능을 갖춘 인물이라 평가한 반면, 그의 숙적인 장구령張九齡에 대해서는 속이 좁고 사소한 원한도 반드시 갚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데니스 트위체트의 평가에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분명 일리 있는 평가임에 틀림없다. 이임보, 그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했든 결과적으로 황제의 총애를 얻어 무려 19년 동안이나 재상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누구보다도 뛰어난 정치능력을 지녔음을 증명하는 사실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임보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간신 중 하나로 알려진 인물이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별다른 학식이나 재능도 없으면서 오로지 영합에만 능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요행히 그의 아첨이 당 현종의 입맛에 딱 들어맞았던 것이다. 당 형종은 보기 드문 성세를 이룩한 유능한 황제 중 하나였으나, 말년으로 갈수록 향락에 빠지게 된 그는 결국 망국을 초래하였다. 한편 당 현종이 안일해지기 시작한 틈을 이용하여 정계에 진출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임보이다. 초기에 이임보는 환관과 비빈들을 회유하여 당 현종의 일거수일투족, 심지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염탐해냈다. 그리하여 당 현종이 논하는 일마다 그의 마음에 꼭 들어맞는 대답을 하곤 했다. 때문에 당 현종은 말끝마다 반대의견을 내며 옳은 소리를 하는 장구령보다 이임보를 훨씬 더 총애하기에 이르렀다.
당 현종은 이임보를 재상으로 승진시켜 장구령과 나란히 정사를 담당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미 이임보가 간사한 인물임을 간파한 장구령은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무릇 재상은 국가의 안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임보가 재상이 되면 장치 나라에 재난이 닥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이임보는 매우 분해하며 이를 갈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 삭방 지역에 우선객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를 만큼 무식했지만 재정에는 밝아 군비를 절약하고 항상 풍족한 군수물자를 비축해놓았다. 이를 기특히 여긴 당 현종이 그를 승진시키려 했으나, 이번에도 장구령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때 이임보가 기회를 놓칠세라 장구령을 비난하고 나섰다. “우선객은 실로 현실감각이 뛰어난 인물로 재상이 된다 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하나 장구령은 그저 죽은 지식에만 연연하는 책벌레와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장구령이 계속하여 의견을 굽히지 않자 당 현종은 마침내 대노하고야 말았다. 이 일로 당 현종은 무엇이든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장구령을 증오하게 되었다. 결국 계속되는 이임보의 비방에 넘어가 장구령을 파직하고 대신 이임보를 재상으로 임명했다. 재상이 된 이임보는 즉시 문부백관의 언로言路를 차단하기 위해 간관들을 소집하여 이렇게 선포했다. “황상께서 말씀하시길 군신들의 의견이 분분한 것이 싫으니 이제부터 모든 신하들은 어명에만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의장마儀仗馬는 평소 삼품관三品官에 못지않은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일단 의식 중에 쓸데없이 울었다가는 당장 내쳐지게 되어 있다. 이 도리를 명심하길 바란다.”
한 간관이 이 말을 무시하고 황제에게 상주문을 올렸다가 다음날 바로 외지의 현령으로 강등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이임보의 농간임을 알았고, 그 뒤로는 어느 누구도 감히 황제에게 간언하지 못했다. 이임보는 이어서 능력이 뛰어나고 강직하며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을 교묘한 수법으로 하나하나 제거해나갔다. 그 중에는 엄정지嚴挺之라는 자가 있었는데, 성품이 강직하다는 이유로 이임보의 미움을 사서 지방의 자사刺史로 밀려나 있었다. 하루는 당 현종이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지금 엄정지는 어디에 있는가? 재능이 많은 자이니 불러다 요직에 앉히려 하노라.”
이임보는 시치미를 떼고 자신이 알아보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당장 엄정지의 동생을 찾아갔다. “형님에게 이렇게 전하게. 병을 고쳐야 하니 경성으로 돌아오게 해주십사 하고 상주문을 쓰라고 말일세. 그러면 곧 황상을 뵐 수 있을게야.” 며칠 후 이임보는 엄정지가 올린 상주문을 들고 가서 당 현종에게 고했다. “이 상주문을 보니 엄정지는 지금 병이 위독하다 합니다. 안타깝지만 공무를 맡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당 현종은 애석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후로는 엄정지를 떠올리지 않았다. 엄정지처럼 이임보에게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임보의 수법은 교묘하기 짝이 없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도 그의 간악함을 눈치 채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두고 ‘입은 달지만 뱃속에는 비수를 품고 있는 자’라고 말했다. 이임보가 재상으로 있던 19년 동안 재능 있고 정직한 대신들은 모조리 배척당하고, 권세에 빌붙어 아첨하는 간신들과 중용되었다. 그와 함께 성세를 이루었던 당 왕조도 점차 쇠퇴일로를 걷다가 결국은 ‘안산의 난’을 초래하고 말았다.
<“권력의 숨은 법칙”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리정 지음, 역자 이은희님, 미래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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