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과학의 어렴풋한 경계

[중산] 2011. 11. 11. 12:44

 

논쟁을 부르는 문제: 과학의 어렴풋한 경계

과학의 주류에서 크게 벗어나는 연구 결과들이 심심치 않게 발표되곤 한다. 과학자라고 해서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이런 희한한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끔은 이런 결과의 타당성을 공격하기 위해 사이비 과학이라며 낙인을 찍곤 하는데, 나는 그렇게 낙인찍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이비 과학을 결정짓는 특징은 그 내용이 별난 것이 아니라 사고방식과 관련되어 있다.

 

모든 과학자들이 타당성을 인정하는 기본적인 과학 방법론이 적용된 사례에 사이비 과학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그 방법론을 올바르게 적용했는지 여부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인다 해도 그렇다. 여기 주제에 붙이는 또 다른 이름은 병리 과학인데, 여기에서 다룰 만한 주제 가운데 저온 핵융합과 초심리학(Parapsychology)을 소재로 택했다.

 

 

저온 핵융합과 초심리학은 모두 재현 가능성 문제를 안고 있다는 데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이 두 분야의 과학자가 똑같은 실험을 하고도 같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혼란과 논란이 발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잘 증명되고 잘 재현된 연구 결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논란은 차츰 잦아들기 마련이다. 저온 핵융합과 초심리학의 주된 차이는 역사적으로 발달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저온 핵융합은 갑작스럽게 무대 한가운데로 터져 들어와, 미친 듯이 활발한 활동을 불러일으키더니 거의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반면에 초심리학은 비록 적다해도 안정된 수의 연구자를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지하고 있다. 초심리학 활동이 계속되는 이유는 불분명하다. 이에 대해서 초심리학 지지자들은 이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성공이 세대마다 새로운 연구자들을 끌어오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비평가들은 프사이(psi)를 믿고 싶어 하는, 널리 퍼진 비논리적인 욕구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좀 더 피상적인 공통점이 있다면, 두 분야 모두에 공통적으로 병리 과학이라는 딱지가 붙었다는 점이다. 병리 과학이라는 개념은 유명한 화학자 어빙 랭뮤어가 만들어낸 말이다. 즉 존재하지 않는 것을 관찰한다는 착각에 빠져서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활동을 설명하는 것이다. 랭뮤어가 예로 든 대표적 사건은 N파에 관한 연구이다. 20세기의 초엽에 많은 과학자들은 N파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러나 N파는 그들의 상상에만 존재하는 것이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온 핵융합과 초심리학은 실제로 랭뮤어가 병리 과학의 속성이라고 규정한 특징 한 가지를 공유하는데, 그 특징이란 두 분야 모두 작고 관찰하기 어려운 현상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분야 모두 랭뮤어의 기준 전부를 충족하지는 못하고, 병리 과학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무슨 성과가 있는지도 명백하지 않다. 이 두 분야들 간의 또 다른 유사점은 이 두 분야의 지지자들이 우리의 과학적 사고에 혁명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두 분야가 요구하는 변화의 종류 사이에는 흥미로운 차이점도 하나 있다. 저온 핵융합은 특정한, 고도로 연구된 물리학 체계에 관해 구체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반면에 초심리학은 막연하게 정의된, 광범위한 변화를 요구한다.<“그렇다면, 과학이란 무엇인가”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그레고리 N. 데리 지음, 역자 김윤택님, 에코리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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