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1889-1895)
1889년 9월, 15살의 챔버스가 앞으로 자신의 청소년기를 보낼 런던에 도착했을 때, 그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19세기의 산업혁명으로 서로 앞다투어 나타나는 발명품들은 인간의 업적 및 더 나은 삶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챔버스 가족은 런던 중심부에서 남동쪽으로 6킬로미터 떨어진 펙함의 빅토리아풍 2층짜리 연립주택으로 이사해 정착하게 되었다. 그 집은 아침부터 밤까지 버스와 전차와 마차들로 번화한 곳으로, 점점 커지는 런던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오스왈드는 어느새 퍼스의 전원적인 평온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챔버스는 난생 처음으로 아버지가 담임하지 않는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브리스코 목사는 설득력이 뛰어난 ‘흥미롭고 감명적인’ 설교가로 알려져 있었다. 복음을 향한 열정과 영혼에 대한 관심을 가진 그 목사는 삶의 본으로 회중을 이끌었다. 예배 중에 그는 교인들을 살피며 열심히 경청하는 얼굴들을 찾았다. 매주 빠지지 않고 예배에 참석하는 열정이 있는 청년을 보면, 그는 종종 예배 후에 청년을 따로 만나 질문했다. “자네는 선교지에 나가 복음을 전할 것이지 왜 이곳에 있는가?” 브리스코 목사는 사람을 교회로 끌어 모으는 일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꾼을 양성시켜 교회 밖으로 내보내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다.
이 기간이 바로 오스왈드의 영적 의식이 자라나고 주께 헌신을 다짐했던 때이다. 온 가족이 런던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오스왈드는 아버지와 함께 저명한 메트로폴리탄 테버너클 교회에 가서 스펄전 목사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만일 그 예배에서 주님께 자신을 드릴 기회가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재빠르게 말했다. “아들아, 지금 그렇게 할 수 있단다.” 어린 챔버스는 그 자리에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다. 먼 훗날 형 아서는 그 밤을 “동생이 조용하지만 진지한 결단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맞아들인 날”이라고 확인해 주었다. 그날 이후 챔버스는 크게 변하면서 거듭난 삶을 살았다.
1895년 초, 챔버스는 미술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유럽의 큰 미술 센터에서 2년 동안 공부할 수 있는 장학금을 상으로 받았다. 그러나 그가 그 장학금을 돌려주는 바람에 미술 교수들과 친구들이 깜짝 놀랐다. 챔버스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이와 비슷한 공부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도덕적, 영적으로 파멸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해 6월, 에딘버러 대학 내 2년의 미술 과정에 등록하기로 결정했다. 이제는 앞길이 분명히 보이는 것 같았다. 하나님의 소명을 분명하게 느낀 이 젊은이는, 그 부름을 따라가기 위해 혼자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2부
에딘버러(1895-1897)
에딘버러는 이 세상에 흔적을 크게 남긴 많은 미술가들을 양성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챔버스는 그곳에서 그가 오랜 동안 추구해왔던 영적이고 지적인 자극들을 마음껏 맛볼 수 있었다. 칼더우드 교수에게 배우면서 윤리 심리학을 파악했고 그 외 스펜서, 헤겔, 존 스튜어트 밀의 경합 이론들과 씨름했다. 윤리학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푹 빠졌다. 셋 교수는 챔버스에게 심리학이 과학의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면서, 윌리엄 제임스의 글들을 소개했다. 데이빗 마송은 영문학 역사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챔버스가 사랑하는 워즈워스, 스코트, 테니슨, 브라우닝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루어 주었다.
첫해에 챔버스는 부지런히 공부했고, 그 보람이 나타났다. 그는 볼드윈 브라운 교수의 추천으로 순수 미술에서 동상을 받게 되었고, 그가 쓴 에세이는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우등상을 수여받았다. 지적인 성취뿐 아니라 그림과 스케치 부분에서 드러나는 적성은 그를 부르셔서 미술계에 영향을 끼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확증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1896년 여름, 상황은 갑자기 전부 달라졌다. 미술 계통의 일자리가 희귀한 가운데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챔버스의 형편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그의 일기에 잘 나타나 있다.
8월 1일: 주께서는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을 돕는 특권과 의무를 감당하기 위해 내게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주께서 나의 무지와 실수와 연약함을 보여주시더라도 나는 하나님을 의지할 것이다. 주께서는 내가 한때 믿음이라고 불렀던 얄팍한 고지식함을 제거하신다. 나는 하나님께 강하게 부르짖고 있지만, 과연 들으실까? 나는 주께 인내를 구했고, 주께서는 나의 성공의 가망성들을 하나씩 제거하신다. 주께서는 전문가들의 예리한 비판을 수단으로, 내가 기초도 모른 채 얼마나 내 생각을 표현하려 했었는지를 들춰내셨다. 내게 끈질기게 공부할 필요를 보여주시더니, 이제는 당장 돈이 필요한 상황에 나를 두신다. 나는 인간의 인내의 한계점에 다다랐으며 단지 기다리며 서서 바라볼 뿐이다.
8월 12일: 상황의 변화가 너무나 갑자기 닥쳐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감사를 느끼자마자 다시 광야가 찾아온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인내를 위해 이보다 더 좋은 훈련은 없다. 과거 몇 달 동안의 성공이 야망과 교만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내게 유익이 되지 못했던 것이 확실하다. 일이 꼬이는 것은 인내를 훈련하는 데 좋고 인격을 다듬는 데도 좋다.
1896년 9월까지 챔버스의 길은 계속 열리지 않았다. 그는 등록금이 없어서 1896-1897년도 학기에 등록하지 못했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동안 찾아온 내적 동요였다. 마음속에서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목사가 된다는 것은 일 년 전에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좇아온 미술에 대한 하나님의 부름에서 완전히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가을 저녁,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던 챔버스는 밤새도록 기도하겠다고 결심하고 에딘버러를 바라보는 가장 높은 언덕인 아서 싯으로 갔다. 기도하는 동안 저녁이 밤이 되고, 아래에서 부는 바람 소리는 낮의 소리와 달라졌다.
챔버스는 크게 소리 내어 기도했다.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 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달라고 간청했다. 몇 시간이 지나자, 그의 영혼은 고통스러운 침묵 가운데 흐느꼈다. 그가 쓴 일기에 의하면 그는 그 밤에 다음과 같은 실제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나는 네가 나를 섬기기를 원한다. 그러나 나는 너 없이도 할 수 있다.” 이 대답이 그가 찾던 인도하심이었던가? 이것이 그가 몸부림치며 구하던 대답이었던가? 챔버스는 문득 이 말씀이 목사로 이끄시는 부르심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순종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음날 하숙집으로 돌아온 챔버스는 우편함에서 글래스고 근처의 작은 신학 훈련 학교인 더 눈 대학으로부터 온 우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누가 왜 그 서류를 보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요구하지도 않은 답변이 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사건은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분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곧바로 학장 맥그리거에게 자기소개서를 동봉하면서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크리스천 연합회는 그해 11월에 중국 내지 선교회의 창설자 허드슨 테일러를 초빙해 에딘버러 대학에서 집회를 갖기로 했다. 챔버스는 그 집회에 참석한 후에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겼다. “지난밤에 허드슨 테일러는 우리 주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의 의미에 대해 ‘당신 자신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으라’는 뜻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날 챔버스는 고향 마을의 친구 크리시에게 “지금 정말로 평안해. 하나님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가깝게 느껴져. 계속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주실 거야”라고 편지했다.
챔버스는 12월 초에 우연히 더눈 대학을 졸업한 침례교 목사 한 분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목사는 열광적으로 더눈 대학을 칭찬하면서 학장 맥그리거를 ‘학생들에게 열정을 고취시키는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로 묘사했다. 그리고 얼마 후 맥그리거는 챔버스에게 현재 30명의 학생이 있는 더눈 대학에 들어오라는 초청 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챔버스에게 대학 및 시내에서 순수 미술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썼다.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던 챔버스의 길이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순종의 길(1부-3부)”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데이빗 맥캐스랜드 지음, 역자 스테반 황교수, 토기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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