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근본주의의 자멸
헨리 폴슨 재무장관의 경제적 귀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근본 이유는 규제기관의 어리석음이나 은행의 오판이 아니라 한 사람이 저지른 일련의 오판 때문이었다. 바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재무장관이었던 헨리 폴슨이다. 그가 저지른 첫째 실수는 리먼브라더스를 파산시킨 것이다. 리먼의 파산은 금융기관들에 대한 예금주와 채권자의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렸고, 전 세계 모든 은행에서 예금인출 사태를 촉발했다. 세계 금융시스템이 유례없는 붕괴를 겪자 소비, 국제무역, 산업질서 등의 실물 경제도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만약 리먼의 파산이 세계 최악의 금융공황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세계 경제가 이렇게 심각한 불황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금융공황은 두 가지 방법을 써서 피할 수도 있었다. 리먼을 구하거나 아니면 리먼 파산 직후에 정부가 다른 금융기관에 대해 포괄적이고 무조건적인 지급보증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이 재앙이 된 이유가 애초부터 공격한 뒤에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었듯이, 리먼브라더스도 파산 이후에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이 없었다. 그러나 적절한 계획도 없이 이라크를 침공한 럼스펠드는 끊임없이 사후 평가를 받았지만 리먼을 파산시킨 미국 재무부의 무모한 결정에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렇데 된 데에는 다른 나라와의 전쟁은 정부의 핵심 역할이지만 경제와 금융시스템을 관리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 아니라는 레이건 이후 미국의 정치신념이 근원적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금융위기 동안에도, 금융시장의 인수합병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부적절하며 경제적 관념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정치인들은 전쟁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지만 금융위기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 전형적인 시장근본주의자들의 착각이다. 하지만 이런 착각은 자본주의 4.0에서는 사라질 것이다. 폴슨이 저지른 더 큰 실수는 미국 정부가 설립했고 보증을 제공해주던 모기지 회사들을 구제(국유화)한 것이었다. 이 조치로 인해 당시 금융시장은 엄청난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폴슨이 모기지 회사들을 국유화한 결과 금융기관에 대한 장기 투자자들은 당국의 결정에 따라 자신들의 주식이 하루아침에 청산될 수 있다는 리스크에 직면하게 되었다. 반면 금융기관들의 붕괴에 판돈을 건 투기꾼들은 미국 재무부의 지지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위기에 처한 금융기관이 정부 지원을 받으면 주식가치가 거의 제로로 떨어질 수 있음을 미국 재무부가 보여주자 투기꾼들은 미국의 모든 은행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투기꾼들이 차례대로 은행들을 공격하여 배를 불리면서 금융대란은 미국, 유럽에 이어 전 세계로 번져 나갔다. 당시 폴슨이 금융시스템을 지키는 것이 정부의 핵심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깊은 이데올로기적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시장이 경제를 이끌거나 합리적인 자산 가격을 형성하는데 틀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추가 이제 흔들리고 있다.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막으려면 우리에게 더 강력한 정부나 더 상세한 규칙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장을 존중하지만 시장의 한계와 결점도 이해하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뛰어난 정부가 필요하다. <“자본주의 4.0”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아나톨 칼레츠키 지음, 역자 위선주님, 컬처앤스토리>
녹차꽃과 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