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따개가 없으면 어떻게 할까
경제학자, 화학자, 물리학자가 함께 무인도에 고립되었다. 식량은 콩 통조림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깡통따개가 없었다. 물리학자가 말했다. “햇빛을 뚜껑에 모아봅시다. 그럼 녹아서 구멍이 생길 거요.” 화학자가 말했다. “소금물을 뚜껑에 부으면 녹이 슬어 뚜껑이 열릴지도 몰라요.” 이때 경제학자가 말했다. “그런 복잡한 아이디어는 시간 낭비에요. 그냥 따개가 있다고 가정하면 되잖아요.” 우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 이 우스갯소리에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근거 없이 지나치게 단순화된 가정을 좋아하는 현대 경제이론 때문에 정치인과 규제 책임자, 은행가들은 시장 근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가상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 세계에서는 금융 안정성이 자동으로 유지되며, 정부 개입만 없으면 효율적이며 전지전능한 시장이 모든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리먼 파산 이후의 사건들로 인해 경제사상에도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경제학자들이 가장 당황스러워 했던 것은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던 사실이 아니라 위기가 일어난 뒤에 정치인이나 중앙은행들에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없었다는 점이다. 경제학은 원래 예측하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분석에 실패한 것이 예측에 실패한 것보다 훨씬 비난을 들을 일이었다.
비록 좌파와 우파 경제학자들의 조언이 모든 부문에서 다르지만 놀라운 공통점이 하나 있다. 현실과 분리된 경제학자들이 조언은 실용적 목적으로는 완전히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현대 이론 경제학의 비밀 하나는 중앙은행과 재무부에서 금리를 결정하고 은행들을 규제하는데 사용하는 컴퓨터 모델이 금융에 대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이 모델에는 은행들의 재무 상태나 행동을 설명하는 방정식이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모델은 부채는 언제나 상환되고 금융시장은 언제나 작동하며, 돈은 중립적이라고 단순하게 가정한다. 이런 가정이 의미하는 바는 금융위기 동안에 정치인과 중앙은행들이 경제학자들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이론에 따르면 이런 상황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던 것과 같다.<“자본주의 4.0”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아나톨 칼레츠키 지음, 역자 위선주님, 컬처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