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는 인간의 본성에 맞게 만들어진다
장하준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는 시장경제의 전제에 대해서는 그 전제의 타당성을 놓고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장하준도 비슷한 맥락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더 나아가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이익만을 좇는다면 속임수가 만연하고 되는 일이 없어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기심은 인간의 가장 추악한 본성이라는 것이 장하준의 인식이고, 이 이기심을 전제로 경제구조를 설계하면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Thing 5. 최악을 예상하면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장하준의 이기심에 대한 인식은 대단히 부정적이다. 그는 모든 인간이 자기 이익만 취한다는 전제의 예로 ‘봉지 밑에 썩은 사과를 끼워 넣는 양심 없는 과일 가게 주인’ 등 소비자를 속이는 상인들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인간의 행동 동기는 이기심 외에도 정직성, 이타심, 신뢰, 충성심 등 도덕적인 본성에도 상당 부분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성공적인 기업은 의심과 이기심보다는 신뢰와 충성심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은 보상과 제재 장치가 있고 사람들이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는 것은 사실이나,
보상과 제재 장치가 없을 때에도 사람들은 대부분 정직하게 행동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이기적인 행동이 아닌 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대부분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며,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만 쫓는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경제구조를 설계하면 효율성이 도리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즉,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신뢰받으면 정직하게 행동할 것이나. 일반적으로 우리는 최악의 행동을 한다는 전제를 두고 경제구조를 설계한다는 것이 장하준의 주장이다.
이런 말은 하지 않았다
장하준의 주장의 맹점은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이 도덕성과 반하고 추악한 본성이라고 전제하는 데 있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고 비도덕적인 것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렇지 않다.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추악한 본성이 아니라 오히려 인류의 경제와 문화 그리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인류는 아득한 옛날부터 교환과 거래를 위해 생산과 분업을 확대하여 경제, 과학기술, 문화 그리고 제도의 발전을 이루어 왔다. 교환을 위해 생산을 하고 조금 더 좋은 조건으로 거래하기 위해 생산에 비교 우위가 있는 부분에 특화하는 경향은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가 만개하기 이전에도 일반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이다. 자급자족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거래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경우, 품질이나 기술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과 특정한 분야에 대한 전문화를 이루면 그만큼 더 많은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개인의 이익 추구에 대한 동기부여가 클수록 거래 및 교환과 전문화의 규모와 범위가 확대된다.
개인의 경제적 이익 추구를 비난할 수 없다: 개인의 정치 경제적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 즉 개인의 신체적 자유가 제한되지 않고 외부의 강압이나 폭력 그리고 개입이 배제된다는 것은 개인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교환 분업 및 전문화를 하는 행위에 그 사회가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회는 개인의 이익 추구를 생산의 획기적인 증대와 경제의 급속한 성장, 기술 발전 및 후생 증대로 이어주는 시스템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자유시장 경제 시스템이다. 개인의 이익 추구가 시장 거래를 매개로 해서 경제 발전과 후생 증대를 촉발시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을 주므로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도덕적이다. 거꾸로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은 개인의 정치 경제적 자유가 보장된다는 뜻이다. 이는 개인이 국가 혹은 사회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개인을 위해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반면에 개인보다 국가와 사회의 이익을 우선시되면 개인의 정치 경제적 자유가 국가와 사회 이익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제한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제적 자유의 제약은 시장 거래를 위축시킴으로써 개인들의 자발적인 사회적 분업 및 전문화를 제약하여 결과적으로 경제 사회발전의 정체를 가져온다. 따라서 개인의 이익 추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부도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시장 경제에서 개인의 이익 추구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 스미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오히려 신뢰와 도덕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시장 거래는 신뢰를 전제로 한다. 상호 신뢰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수많은 개인들 간의 대규모 거래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러한 상호 신뢰는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가? 개인의 이익 추구와 시장 경쟁을 통해 대규모 거래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만큼의 신뢰가 형성된다. 공익을 강조하고 사익 추구를 비도덕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방향으로 설계된 경제에서는 계획경제의 빈틈을 노리는 행위가 증가하여 결과적으로 시장에서의 경쟁 압력은 감소한다. 경쟁 압력이 감소하면 시장에서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할 필요성도 감소한다. 이는 전반적인 신뢰와 도덕성을 높여주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자율적인 메커니즘이 약화됨을 의미한다. 자유시장 경제에서는 개인이 시장에서 신뢰를 얻지 못하면 경쟁에 의해 시장에서 도태된다. 따라서 개인의 이익 추구를 위해서는 시장에서의 신뢰와 도덕성을 제고해야한 하는 것이다.
경쟁력 있는 자본에만 국적이 있다
장하준은 이렇게 말했다
장하준은 ‘Thing 8. 자본에도 국적은 있다’에서 외국인 투자를 받아들일 때 기업의 자국 편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소위 다국적기업의 활동, 더 나아가 투자 자유화에 있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본다. 장하준은 초국적 기업이라도 기업의 핵심적인 연구 개발, 전략 설정 등 중요한 활동은 본국에서 이루어지고 최고 경영진도 본국 국적 사람들로 채우는 등 자국 편향을 보이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기업의 자국 편향은 경영진의 도덕적 동기와 더불어 자신의 국가에 대한 역사적 의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기업은 발달과정에서 직접적인 혹은 간접적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고 이러한 기업과 정부 간의 역사적 채무 관계 때문에 국가에 대한 도덕적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국적 기업들이 자국 편향이 되는 것은 인적 조직적 자원, 비즈니스 네트워크 등 타국 이전의 어려움에 따른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개발도상국은 최소한 일부 산업에서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고 국내 기업을 육성하는 정책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장하준의 주장이다. 그리고 더 나은 방안은 외국인 투자를 받아들일 때 국내 기업의 역량을 발전시키도록 돕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논의는 선진국과 같이 부자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보호무역과 산업 정책을 통해 경쟁력 있는 산업과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일관된 그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말은 하지 않았다
다국적기업들의 자국 편향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국 편향은 절대 불변의 특성이 아니라 각국의 기업 환경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을 근거로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고 선별적으로 유치하려는 정책을 시행한다면 결과적으로 투자와 고용의 증대, 지식과 기술의 확산과 그에 따른 전반적인 기술 경쟁력 제고와 생산성 향상이라는 이득을 향유하지 못할 것이다.
기업은 자국편향적이지 않다: 장하준의 주장대로 외국인 투자에 대한 강한 제한 및 전제 조건이 꼭 필요한지 살펴보자. 그가 이야기하는 기업의 자국 편향에 대해서, 먼저 그 현상이 자국 편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지 또한 그것이 기업에 내재된 절대 불변의 특성인지 살펴보자. 소위 다국적기업들이 연구 개발 기능이나 기업의 핵심 기능을 본국에서 행하는 것은 그 나라의 제도와 인적 자본 및 지적 자본의 수준이 그 기능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선진국을 기반으로 출발한 다국적기업이 연구 개발에 적합한 인적자원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개발도상국에 R&D센터나 본부를 두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저개발국에 기업의 핵심 기술을 담당하는 기능을 두지 않는 것 또한 자국 편향과 무관하게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1990년 중반 이후 나타나고 있는 다국적기업과 관련된 특징적인 현상은 R&D등 기술 개발 기능을 세계 여러 국가로 분산하는 ‘R&D의 국제화’이다.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의 경우, 기업의 전체 R&D에서 해외 R&D가 차지하는 비중은 1982년 6.4%에서 2004년 16.3%로 증가했다. 스웨덴은 1994년에 이미 24.7%에 달했으며, 영국도 1990년대에 이미 해외 R&D가 급증하여 제약 산업에서는 해외 R&D의 비중이 1999년에 이미 55%에 이르게 되었다. 다국적기업들은 R&D의 국제화와 더불어 다양한 국가들에서 투자 및 생산을 진행해 지식과 기술을 전파하고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다국적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 국가의 시장 규모라든가 R&D에 적합한 제도, 인적 자원 등이 R&D센터 유치와 그 국가에서 다국적기업들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연구 개발 활동을 할지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다. 따라서 R&D 등의 활동을 수행하기에 자국의 여건이 적합하면 자국에서 하는 것이고 해외의 여건이 더 유리하면 해외에서 하는 것이다. 장하준이 이야기하는 경제적 이유에 의한 기업의 자국 편향은 연구 개발 등 핵심 기능을 수행하기에 자국의 여건이 유리함을 이야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송원근박사, 강성원박사 지음, 북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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