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하던 김 대리, 어쩌다 무능한 김 과장이 되었나?
피터의 원리와 리더십 파이프라인: 대리였을 때만 해도 자신이 맡은 직무에서 꽤 유능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승승장구하던 김 대리가 능력을 인정받아 과장 직함을 달게 되었다. 그런데 일 잘하던 그가 승진을 한 후에는 오히려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어떻게 저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마저 생겨날 정도였다. 아마 그는 속으로 차라리 승진하지 않고 그냥 김 대리로 있는 편이 자기 능력을 발휘하는 데는 더 좋았겠구나 하는 씁쓸한 결론을 내릴 것이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피터의 원리The Peter Principle가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다.
승진이란 곧 무능력을 향한 질주?: 1960년대에 콜롬비아 대학의 로렌스 피터 교수는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다양한 사례를 수집하여 연구한 끝에 그들 사이에 세 가지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첫째, 조직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자신의 무능력이 드러나는 수준까지 계속해서 승진하려는 경향이 있다. 둘째,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부서는 맡은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무능한 사람들로 채워진다. 셋째, 조직의 직무는 대부분 아직 무능력이 드러나는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이 완수한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조직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조직에 속한 구성원들 대부분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는 자기 능력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능력에 걸맞게 한두 차례 승진을 한다. 새 직위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또다시 승진한다. 물론 직위가 높을수록 더 높은 수준의 역량 발휘 및 성과 달성을 요구받게 된다. 어떤 사람은 부지런히 역량을 개발하고 성과를 올려 이 요구에 부응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역량에 한계를 느끼는 시점을 맞는다. 그런데도 많은 경우 회사는 승진 시에 직무 역량만 따지지는 않기 때문에, 즉 근속연수와 연령 같은 직무 외적 요인을 더 고려하기 때문에, 때로는 정치력에 의해서도 높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어느 자리까지 올라가기는 했지만 더는 유능함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이러한 문제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오랜 직장생활을 통해 터득한 이른바 ‘서바이벌 노하우’ 덕분이다. 자신의 무능함을 몸으로 때운다든지, 윗사람에게만큼은 잘 보인다든지, 잘하지 못한 일에 대한 책임을 교묘히 부하에게 전가한다든지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며 그들은 생존한다. 조직 내부 곳곳이 이런 사람들로 채워지다 보면 종국에는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무능한 직원들만 가득하게 된다. 그런데도 회사가 존속하는 것은, 소수의 유능한 사람들과 밑에서 막 올라왔거나 새로 충원된 똑똑한 직원들 덕분이다. 한때는 유능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수많은 개인이 무능해지고 그리하여 조직까지 경쟁력을 상실하고 비효율과 낭비, 저성과가 만연하는 까닭, 그것은 그 조직이 바로 ‘피터의 원리’에 지배받고 있기 때문이다.
피터의 원리 극복하는 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피터의 원리를 극복하고 개인과 조직이 모두 좋아질 수 있을까? 그 답은 과거에 유능하다고 인정받았던 조직 내의 성공 방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성공 방식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조직에서 요구하는 역할과 이에 뒤따르는 역량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를 램 차란Ram Charan이 제시한 ‘리더십 파이프라인’ 개념으로 설명해보자.
램 차란에 따르면, 회사의 직무는 대체로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는 막 입사해 혼자 실무적 업무를 처리하는 단계다. 거기서 유능함을 인정받으면 초급관리를 하는 2단계로 올라간다. 다음은 부서를 관리하는 3단계로, 그 다음은 여러 부서나 사업 부문을 총괄 관리하는 4단계로 올라서며, 마지막으로 5단계에 오르면 회사 전체를 경영하는 최고경영자가 된다. 램 차란은 이것을 리더십 파이프라인이라고 표현했으며, 거의 모든 조직이 여러 단계의 리더십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주의할 게 있다. 리더십 파이프라인은 직선으로 연결되지 않고 각 단계마다 꺾이며 큰 변곡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 단계에서 그보다 높은 단계로 나아갈 때에 동일한 능력이 그대로 연장되는 것이 아니라 재료가 전혀 다른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뜻한다. 각각의 리더십 파이프라인은 단계가 바뀔 때마다 각기 다른 역할과 역량을 요구하기 때문에 각 리더십 파이프라인 속에 적합한 역할과 역량을 채워 넣을 때에만 모든 파이프라인이 막히지 않고 원활히 흘러간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초급관리자는 실무를 진행하며 소수의 팀원을 관리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이 단계에서는 실무 처리 역량과 인간관계 및 커뮤니케이션 능력만 있으면 충분하다. 초급관리자가 자기 역할을 유능하게 소화해내면 그 다음엔 ‘부서장’이라는 다른 리더십 파이프라인을 타게 되는데, 이때는 초급관리자가 아니라 부서장으로서 좀 더 높은 차원의 역할과 리더십을 요구받게 된다. 따라서 이때는 부서 직원에 대한 통솔력은 물론이고, 매사를 부서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것, 나아가 회사 전체를 생각하면서 다른 부서와 업무 조정 및 협업을 하는 능력 등이 요구된다. 부서장이 되었는데도 초급관리자의 성공 방식에 머무른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무능한 부서장으로 여겨질 것이다. 피터의 원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회사에 이런 직원들이 많아진다면 결국 회사의 모든 리더십 파이프라인이 막혀 조직이 원활히 돌아가지 않게 된다.
피터의 원리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을 극복,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조직과 개인이 각 직무단계에서 요구되는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직무 역량을 파악하고, 만일 부족하다면 그것을 더욱 개발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마음으로 리드하라”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류지성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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