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하고 이해하라
어느 목요일, 20대 직장여성 인경 씨는 퇴근 후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지하철에 올랐다. 자신의 승용차는 정비소에 들어갔기 때문에 당분간 지하철을 이용해야 했다. 그녀는 취미활동으로 시작한 밸리댄스를 배우기 위해 강남으로 향했다. 얼마쯤 갔을까,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인파를 헤치고 들어오더니 그녀 앞의 빈자리에 잽싸게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승리감에 도취한 듯 팔짱을 끼고 다리를 쫙 벌린 채 그녀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사람들 사이를 거침없이 헤치고 들어온 것도 모자라 꼴사나운 자세로 만족스런 미소를 띠는 남자가 그녀로서는 참을 수 없이 혐오스러웠다.
‘아, 재수없어. 키는 난쟁이 똥자루만 한 게 동작은 엄청 빠르네. 저런 인간 보기 싫어서라도 차를 몰고 다녀야지…….’ 속으로 이렇게 곱씹으며 그녀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얼마 후, 무심히 시선을 흘리던 그녀는 그 ‘쩍벌남’의 옆에 앉은 승객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안 그래도 심사가 뒤틀린 판에 그런 광경까지 지켜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밀었다. 참다못한 그녀가 결국 입을 열었다. “저기요, 아저씨. 그 다리 좀 붙이고 앉으세요. 옆 사람들이 불편해하잖아요. 여기가 아저씨 안방이에요, 룸살롱이에요?” 젊은 아가씨로부터 느닷없는 설교를 들은 남자는 얼굴이 벌개지더니 거칠게 대꾸했다. “뭐야, 니가 뭔데 남의 다리를 붙여라 마라 참견이야? 그러는 넌 여기 전세 냈냐? 미친 X,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리고는 그녀의 발 앞에 침을 퉤 뱉었다.
그녀는 격앙된 목소리로 다시 쏘아붙였다. “뭐 이런 거지같은 경우가 다 있어? 지하철 이용할 때는 어떻게 하라고 저기 붙여놓은 것도 안 보이세요? 옆에 앉은 사람이 그 쩍 벌린 다리 때문에 불편해하니까 자세 좀 바꿔달라는데 누가 누구한테 지랄이래?” 그녀는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았으나 서로 눈치만 볼 뿐 그들의 말다툼에 끼어들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남자는 더욱 기고만장해져서 언성을 높였다. “넌 애비 에미도 없냐? 얌전히 있는 사람한테 어디서 설교야?”
“말 똑바로 하세요. 얌전히 있었다고요? 그렇게 자기 생각만 하고 다른 사람들 생각은 하지 않는 댁 같은 사람들 때문에 공공질서가 엉망이 되는 거라고요. 몰라서 그랬다면 실수를 인정하고 알려주는 사람한테 고마워해야지 어디서 적반하장이야, 무식하게!” 다음 순간,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녀의 멱살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뭐야, 이런 후레자식 같으니라고! 정말 죽고 싶어?” 놀란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자 열차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때마침 지하철의 출입문이 열리자 사내는 여자의 멱살을 그러쥔 채 밖으로 끌고 나가며 소리쳤다. “너 잘 걸렸다! 오늘 내 손에 한번 죽어봐!” 힘으로는 당할 수 없었던 그녀는 그의 우악스런 손에 끌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날, 그녀는 과연 밸리댄스 학원에 갈 수 있었을까?
두 사람의 충돌은 ‘소통’ 방법의 오류에서 비롯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긴 했으나 일방적일 뿐 진정한 의미의 소통에 이르지는 못한 것이다. 의사소통의 기본은 ‘내 말을 듣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예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한마디로, 소통은 불가능하다! 인경 씨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상대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감정만을 묵직하게 실어서 거침없는 말의 펀치를 날렸다. 아무리 잘못이 크더라도 그 펀치의 상대로 지목당한 입장에서는 모욕감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마련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감정만이 중요하게 작용할 때, 말은 소통의 도구가 아닌 끔찍한 폭력의 도구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소통이란 이처럼 사소한 말 몇 마디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그녀가 남자를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만 갖추었더라면 상황이 그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례지만, 옆에 앉으신 분들이 좀 불편하실 것 같은데 다리를 조금만 좁혀주시면 안 될까요?” 만약 이렇게 입을 열었더라면 상대방 역시 분명히 다른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까. “아, 그래요? 미안하게 됐습니다.” 자존심을 건드리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준 것도 아닐뿐더러 실례한다고까지 먼저 말하는데 거기다 대고 욕부터 쏟아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타인과의 소통을 원한다면 우선 그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라. 그런 다음 본론으로 들어간다면 상대방은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과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지 않은 말하기는 이미 진정한 소통과는 거리가 먼 것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노크 없이 문을 열고 예의 바르게 인사하라”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유재화 지음, 책이있는마을>
▣ 저자 유재화
코카콜라가 판매되는 199개 나라 중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춘천에서 태어났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해조음처럼 밀려와 “침묵. 그래, 침묵하는 거 배워. 말하는 건 진짜 슬픈 거래” 나직하게 속삭이는 안개 속에서 에스프리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상명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지상전, 공중전, 수중전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사회로 편입되어 신문사와 출판사에서 곡마단의 피에로처럼 아슬아슬한 곡예를 펼치다가 문득 김수현 할매를 능가하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여 서울예술대학 극작과를 기웃거렸다. 1995년, 한국여성문학상에 소설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으며, 이후 몇 편의 단편과 어린이책을 세상에 선보였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이 시대 마지막 낭만주의자일지도 모를 성 아무개를 만나 결혼이라는 제도권 진입에 성공했다. 저서로 『재미있게 말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유머로 재치 있게 말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내가 먼저 세상에 손 내밀기』 등이 있으며, 나름대로 잘 나가는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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