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으로 농사짓는, 친환경그룹 공장 박현정
지구를 생각하는 착한 디자이너: 환경 친화적인 방법으로 문구를 만드는 디자인 스튜디오 ‘공장 (Gongjang)’. 공장이란 이름은 ‘공장(工匠: 공방에서 쓸모 있는 물건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과 ‘공장(工場, factory: 물건을 생산하는 곳)’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매우 거칠고 산업적인데다 대량 생산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이름(?)과는 달리 ‘공장’이 하는 일은 친환경적인 디자인과 제작이다. ‘공장’이란 이름을 달고 ‘생산’되는 제품들은 우선 재생지 등 에콜로지 페이퍼를 사용하고, 버리는 부분이 나오지 않도록 종이의 규격을 최대한 활용해 재단한 뒤 콩기름 잉크로 인쇄한다. 또 공정 상 자투리 부분이 생기면 버리지 않고 명함이나 메모지 등 다른 쓰임을 갖게 해주기도 한다. 공장은 제작 과정 자체를 친환경적으로 디자인하는 것 외에, 노트나 다이어리 위에서도 친환경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예를 들어 펭귄과 북극곰처럼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을 표지에 내세운 노트다. 재생지로 만든 ‘help me’ 메모지는 쓸수록 북극곰이 서 있는 빙하의 크기가 줄어드는 모양으로 디자인해서 보금자리가 사라져가는 북극곰의 급박한 상황을 느끼게 해준다. ‘북금곰을 살려주세요’라는 문구를 직접 쓰는 것보다 더 경각심을 느끼게 하는 아이디어다. 또 각 제품에는 ‘콩기름 잉크로 인쇄했습니다’, ‘폐지 재활용은 톤당 30년생 나무 17그루를 살릴 수 있습니다’ 등 제작 과정이나 취지를 담은 메시지를 간단히 적어 잠깐이나마 환경 문제를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두었다. 공장을 소개하기 전에 위기에 처한 북극곰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잠깐 짚고 넘어가면 다음과 같다. 자동차 이용 줄이기, 음식물 남기지 않기, 사용하지 않는 전자 제품 꺼두기,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 사용하기, 실내 온도 알맞게 조절하기, 온수 사용 줄이기,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과대포장 제품 구매하지 않기……. 사실 이 모든 항목들을 몰라서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절박함을 얼마나 가슴 깊이 느끼느냐에 따라 실천 여부가 결정될 뿐이다.
디자인 제작 전 과정에서 환경을 고려하다: 공장이 처음부터 친환경 디자인을 지향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연스러운 느낌을 좋아했던 ‘취향’이 친환경 디자인의 시작이라면 시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환경 운동가 대니 서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마음이 움직였고, 오래 전부터 친환경 디자인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윤호섭 국민대 교수의 강의를 듣고는 대학원에서 ‘그린 디자인’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앎이 더해갈수록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한 성찰과 고민도 늘어만 갔다. 공장의 첫 작품은 재생신문 연필이었다. 지금은 다른 곳에서도 재생신문으로 만든 연필이나 볼펜을 많이 내놓고 있다. 종이 재단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자투리 공간을 이용해 명함을 무료로 만들어주는 공장의 ‘명함 프로젝트’는 꽤 유명한데, 제작의뢰는 메일로 할 수 있지만 직접 방문해서 찾아가야 한다. 물론 색이나 종이 질 등이 완전 ‘랜덤’이지만 신청자들이 줄을 잇는다. 처음엔 무료로 명함을 찍어줬지만 찾아가지 않는 사람도 생겨나 이제는 신청비 명목으로 약간의 비용을 받아 전액 기부하고 있다.
‘공장’은 자매 그룹이라 할 수 있는 ‘농장’도 하나 가꾸고 있다. 환경에 대해 고민하는 디자이너들이 모인 프로젝트 그룹 ‘농장’은 디자인하는 행위를 농사짓는 것으로 보고, 디자이너에게 밭을 분양해 가꾸게 한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다. 본래 친환경 제품 제작을 위해 시작했으나, 함께 모여 워크숍도 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모아 전시회 ‘-1’도 열게 되었다. ‘-1’은 ‘없애다, 줄이다, 나누다, 다시 생각하다’ 등의 의미로 쓰이는 농장의 키워드. 첫 번째와 두 번째 전시회에서는 자가 발전 자전거를 굴리면 불이 들어오는 재활용 의자 트리, 전구 모양의 초, 지문을 찍어서 나무를 만드는 약속 카드, 여러 번 쓸 수 있는 서류 봉투 등을 전시했다. 또 종이 회사와 함께 기획한 세 번째 전시회 ‘잠자는 종이를 깨우다’는 못쓰게 된 종이를 이용해 환경 메시지가 담긴 디자인을 선보였다.
불필요한 것을 빼는 디자인: 공장은 지금까지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문구를 만들기 위해 무던히 애써왔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제작해 주는 곳과 소재가 다양하지 않아 항상 곤욕을 치르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친환경적인 방법을 생각해 내고, 더하는 디자인이 아닌 빼는 디자인을 추구하다 보니 이제는 아예 습관이 되어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는 일에 희열을 느끼는 정도가 되었단다.
“우리나라는 아직 제작하는 곳과 소재가 다양하지 않아 어려움이 많아요. 저희는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환경적인 소재를 개발하는 것은 아직 무리인데요. 최대한 환경적인 소재를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어려움이 많습니다. 한번은 인쇄소에 콩기름 잉크를 권해드렸는데, 귀찮다는 반응을 보일 줄 알았던 사장님이 식용유를 사와서 인쇄해 주셨어요. 아주 완벽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환경적인 쪽을 택하려고 합니다.”
요즘엔 ‘친환경’이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폭넓게 사용되고 있는데, 공장이 생각하는 친환경 디자인은 과연 무엇일까. 박현정이 말하는 친환경 디자인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었다. 우선 가공 과정 자체를 줄이면 에너지 사용량도 줄일 수 있고, 부피를 줄이면 운송 과정의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다. 트럭에 세 번 나눠 실을 것을 한 번에 운반할 수 있다면 기름 소비도 줄고 대기 오염도 줄일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또 분해나 폐기가 쉬운 것도 중요한데, 친환경 디자인은 환경도 지키고 어떤 면에서 생산 단가도 줄일 수 있는 경제적인 디자인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친환경 디자인은 전 과정에서 환경을 고려하는 디자인으로, 인간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디자인의 반대말이다. 공장은 2010년 작업의 전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환경성을 평가하는 모듈인 ‘에코 리스트’도 만들었다. 제조 전 단계부터 폐기까지 환경성을 고려하는 에코 리스트는 점수에 따라 3단계 그린 라벨을 부여하는데, 점수가 너무 낮으면 환경성을 높일 수 있는 디자인 안으로 수정 검토해 최종 작업을 하고 있다. 또 월드 비전, 기아 대책, 대안 학교, 지역 공부방 등과 연결해 디자인과 제품을 기부하고 있는 중이다. <“청춘, 새로운 길을 만들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전은경, 김민희, 임나경 지음, 나무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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