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사에 나타난 전쟁
전쟁 철학의 원리
인류의 생산 방식이 발달할수록 전쟁의 규모와 잔인성은 커진다. 농업 문명 시기에는 창, 총, 칼, 도끼 등으로 결투를 했고 체력적 우세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었다. 체력적으로 발달한 자들은 남성 호르몬의 공격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못된 짓을 하더라도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다녔다. 하지만 인류의 지식이 체력을 대신하면서 남성 호르몬과 원시적인 공격성은 점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감춰지게 되었다. 하지만 남성 호르몬은 여전히 존재하며 심층적이고 두껍게 인류 문명을 포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전쟁무기와 전쟁방식은 큰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이와 상관없이 살인은 계속해서 행해지고 있다. 오늘날 복수, 증오 같은 원시적인 감정은 최신식 무기로 탈바꿈되었지만 야생의 공격 본능은 수만 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대규모 살상은 전쟁의 최고 원리이며, 대규모 생산은 경제의 최고 원리이다. 전자는 세계를 파괴하는 본능이고, 후자는 세계를 건설하는 본능이다. 이 두 가지 본능은 인류 문명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30년대 일본은 중국을 공격하기 전에 일본인(상인이나 병사)이 중국에서 실종되고 살해되었다고 소문을 퍼뜨려 일본 국민의 분노를 부추겼다. 이에 일본인들은 궐기하여 거리 시위를 하고 증오를 표출했다. 어떤 사람은 전쟁을 난해한 언어라고 말한다. 소말리아의 한 소년은 길거리에 즐비한 시체를 보면서 물었다. “도대체 왜 이래야 하나요?” 소년은 전쟁이라는 사악하고 황당한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년은 어른들의 전쟁언어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가? 그것은 인간의 언어인 동시에 동물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태초에 인류가 있었을 때부터 존재해 온 원시 언어이다. 전쟁 언어는 인류만큼 오래되었고, 인류와 함께 진화했다.
정치 질서, 경제 질서, 사회 질서에서 보고 듣고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반드시 인간의 심리와 생리학적 배경을 고려해, 보고 듣고 읽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인류의 뇌 속에 있는 편도체와 해마를 해부해야 비로소 전쟁 언어를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각국은 전쟁 대신 국가 방어에 힘쓰기 시작했지만 무기매매는 끊이지 않았다. 냉전이 끝나고 서양 매스컴은 군수 산업의 쇠퇴를 예측했으나 그들의 기세는 전혀 꺾이지 않았다. 인성이 변하지 않는 한, 인간의 원시적인 공격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남성의 좌뇌 전쟁이 존재하는 한, 편도체와 해마가 연계되어 있는 한, 분노와 복수심과 정교한 언어 부호 체계가 있는 한, 그리고 인간의 잔인성과 파괴의 본능이 사라지지 않는 한, 무기 매매 사업은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다.
고대와 현대의 인류 전쟁의 분류
전쟁철학자들은 공통된 관점에 따라 인류의 역사에 발생했던 1만 5천여 차례의 전쟁을 분류했다. 다음은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의 심층적인 구조나 배경을 바탕으로 인류의 전쟁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것이다.
살육전쟁: 배부르고 따뜻하게 지내다보니 사람들은 음란, 격투, 살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이는 동물의 순수한 본능이다. 우리는 이를 ‘살육 전쟁’이라고 한다. 원시 촌락 간의 학살은 어떠한 경제 이익이나 정치적 목적, 지역 패권 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피를 보고 흥분하고 짜릿함을 느꼈을 뿐이다. 하지만 원시 부족에서는 목적 없이 살인을 저지를 경우 나름의 의식을 따랐다. 예를 들면 인디언 용사는 적을 죽이면 머리 가죽을 벗겼다. 그리고 자신을 정화하기 위하여 6개월 동안 고기를 먹지 않고 부인과 동침하는 것을 피했다. 용사의 공격성은 원시의 맹목적인 충동 본능이다. 이는 오늘날 현대인들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유감스러운 것은 원시인들의 살인 본능만 전해 내려오고 금기에 대한 인식은 철저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복수형 전쟁: 살육 전쟁과 복수형 전쟁이 힘을 합친다면 그 공격성과 흉악성이 훨씬 커질 것이다. 인류의 감정 중에서 복수는 심층적 심리 구조에 속한다. 동물의 세계에도 복수는 있지만 인류의 복수 심리에 견줄 수는 없다. ‘복수형 전쟁’은 인류의 전쟁사에 수많은 피와 불의 역사를 남겼다. 역사를 보면 독일, 이탈리아인과 프랑스인의 관계는 복수의 분노로 가득하다. 1870년에 일어난 보불 전쟁은 프랑스의 투항으로 막을 내렸다. 전쟁에 패한 프랑스는 독일에 알자스와 로렌 땅을 내주었다. 이때부터 프랑스의 복수심이 시작되어 더 큰 규모의 잔인한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반대로 독일이 복수를 위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분쟁형 전쟁: 영토와 식민지, 민족, 여자, 통치권, 종교 등은 모두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여러 유형의 전쟁 가운데 영토를 쟁탈하기 위한 전쟁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난다. 가끔은 무엇이 정의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모두 이성을 잃고 협상이 끝나기도 전에 일을 터뜨린다. ‘분쟁형 전쟁’의 배후에도 생물학적 원인이 숨어 있다. 그 원인은 대개 네 가지 요소(① 남성 호르몬의 공격성, ② 파충류 뇌의 작용, ③ 남자의 좌뇌 전쟁, ④ 인류의 언어 부호 체계의 분쟁)중 일부 또는 전부를 포함한다. 감춰져 있지만 이것이 바로 인류의 전쟁이 지속된 배경이다. 예를 들어 64세의 한 네덜란드인은 남성 호르몬의 영향으로 크로아티아 군대의 장교가 되어 유고 내전에 참가했다. 그는 한국전쟁, 베트남전쟁까지 겪었지만 안정적인 은퇴 생활을 원하지 않았다. 그의 대뇌 신경을 자극하는 것은 화염 폭발, 총소리였기 때문이다.
침략의 전쟁: 몽골 제국 칭기즈칸이 펼친 대외전쟁은 인류 역사상 가장 전형적인 침략 전쟁이다. 인류 역사에서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1945년 8월 일본 관동군이 소련군에 투항했다. 소련 극동군 총사령관은 일본군의 투항을 받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 장병 여러분, 당신들이 저지른 전쟁은 철저하게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는 결코 당신들의 용맹함이나 끈기 혹은 무기나 전술이 부족했던 탓이 아닙니다. 당신들이 패한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 정부가 일으킨 전쟁이 인류 평화를 파괴하는 파시즘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피해자입니다. 전쟁을 계획한 이와 양손에 무고한 피를 묻힌 살인자를 제외한 병사들은 모두 석방할 것입니다.” 이는 정의로운 승자의 관용이다. 사실 적잖은 일본 병사들은 살인 본능을 통제하지 못한 전쟁광이었다.
정의적 전쟁: 이 유형의 전쟁에는 생물학적 배경이 없다. 정의와 비정의, 선과 악의 결사적 경쟁이 있을 뿐이다. 이 유형의 전쟁은 유일하게 ‘전쟁과 남성 호르몬’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인류는 정의적 전쟁으로만 불의의 침략형 전쟁을 막을 수 있다.
전쟁 유형의 분류를 통해 우리는 ‘지도자-군중’의 원리를 얻어낼 수 있다. 한 집단이나 한 민족은 정치가의 선동에 쉽게 갈 길을 잃고 방황한다. 모든 인간은 숭배하고 권위에 복종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바다와 같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안전하고 고요하며 폭력성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태풍이 불면 바로 혼란에 빠지고 거센 파도에 허우적댄다. 이때 군중은 지도자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전쟁 심리의 기초이다.
‘지도자-군중’이라는 군중심리학 원리를 통해 우리는 인류가 일으킨 수많은 전쟁을 해석할 수 있다. 이 원리가 없다면 침략전쟁이나 정의롭지 못한 전쟁은 일어날 수 없다. 전쟁은 통일된 의지와 통일된 행동, 고도화된 규율을 갖춘 군중 행위이기 때문이다. 1920~1930년대에 히틀러와 일본 군국주의 전쟁광들이 침략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남성의 몸속에 자유롭게 떠돌던 수백만의 원시적이고 맹목적인 공격성을 한데 모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분산→집중, 맹목성→자각성으로 바뀔 때 전쟁이 발발한다. <“전쟁 호르몬”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자오신산 지음, 역자 김정자님, 시그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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