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대중에게 ‘NO’라고 말할 것인가?
까르푸 불매운동: 중국 검색 포털사이트에서 ‘까르푸’라고 치면 대부분 2008년 4월에 발생한 사건이 검색된다. 그리고 그보다 2년 전의 보도된 뉴스를 찾아 읽다보면 시공이 뒤섞인 듯한 착각에 빠진다. ‘까르푸’를 지우고 그 자리에 ‘일제’만 넣었을 뿐인데 그저 장소만 달라졌을 뿐 그 격앙된 감정의 발산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다. 일제 상품 불매운동은 2005년, 그것도 역시 4월에 일어났다. 더욱 공교로운 사실은 대중들의 격앙된 정서가 극에 달한 후 정부는 “특정 국가의 상품 불매운동은 양국의 이익에 위배되는 행위이며 기업 간 경제이익이 얽히고설켜 있으므로, 애국심을 이성적으로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또한 애국심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2008년은 2005년에 비해 인터넷이 중국인의 생활 면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까르푸 불매운동 역시 인터넷에서 시작되었다. 2008년 4월 10일, ‘수이잉’이란 ID를 쓰는 네티즌이 ‘먀오푸, www.mop.com 토론방’에 “프랑스 제품 불매, 까르푸에서 시작하자”란 제목의 쪽지를 보냈다. 이 쪽지에는 올림픽 성화 파리 봉송 과정이 방해를 받았던 사실과 프랑스 언론 매체와 여론이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도록 종용한 데에 대한 비판이 상세히 열거되어 있었다. 그는 또 “까르푸의 모회사가 티베트 독립단체를 수차례 원조해 중국의 분열을 조장했다며, 프랑스 제품 불매운동을 까르푸에서 시작하자”고 주장했다. 특히 5월 1일부터 까르푸에서 물품을 구매하지 말도록 네티즌에게 호소했다. 이 쪽지는 각 토론방을 통해 급속히 퍼져나갔다. 휴대폰에 ‘프랑스 불매운동’ 문자가 수신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다.
4월 15일 외교부 대변인 장위는 정례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최근 일부 국민들이 그들의 의견과 심경을 표출한 데는 분명 원인이 있다. 프랑스 정부는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반성해야 한다. 나는 중국 국민들이 법에 따라 합리적인 요구를 제기할 것이라 믿는다. 친구가 되려면 쌍방 모두 노력해야 한다. 한편으로 중ㆍ프 관계를 중시한다고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중국 국민이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프랑스 정부는 중국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고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문제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을 취해야 하며, 사실을 존중하고 시비를 명백히 가려야 한다. 다른 여러 국가와 마찬가지로 정의에 입각한 중국 정부의 입장과 정당한 조치를 이해하고 지지해야 한다.”
이날 나는 봉황위성TV의 <생방송 중화뉴스>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우선 성화 봉송 과정에서 성화를 보호해낸 상하이 소녀 진징을 만났다.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인데도 ‘티베트 독립분자’가 성화를 뺏으려 하자 그녀는 두 손으로 성화를 감싸안아 지켰다. 이 사진 한 장으로 그녀는 중국인의 가슴 속에 천사, 영웅으로 자리 잡았다. 그녀는 프랑스에서도 “중국의 올림픽 개최를 지지하는 프랑스인들의 열의를 분명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문제는 정작 프랑스 정부에 있는데 프랑스 기업을 타깃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게다가 까르푸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모두 중국인임을 강조했다.
중국에 있는 프랑스 기업인을 취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여러 명을 섭외했지만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면 난색을 표했다. 똑같은 상황이 프랑스에서도 생겼다. 프랑스에 있는 동료의 말에 따르면 프랑스 언론이 중국의 이 같은 상황을 크게 보도하면서 친하게 지내던 프랑스 친구들과 대화조차 어색해졌다는 것이다. 대부분 의식적으로 민감한 화제를 피하려 한다고 했다.
중국 주재 프랑스대사에 대한 취재 신청은 매우 수월했다. 파리에 의견을 타진한 후 에르베 라드수 대사가 베이징에서 취재에 응했다. 하지만 이틀 후에 프랑스대사관의 홈페이지가 해킹당하고 대사관으로 무수한 전화가 걸려오는 사태가 벌어졌다. 프랑스대사를 취재한 보도를 보고 수많은 사람이 그의 오만에 격분했다는 것이다. 대사관 직원들은 “사실 대사의 언행은 전혀 오만하지 않았는데, 이를 보도한 기자가 그의 뜻을 다소 왜곡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나는 베이징에서 취재를 담당했던 기자의 보도를 다시 한 번 상세하게 검토해봤다. 취재 소요 시간은 15분가량이었는데 실제 보도는 1분 30초에 지나지 않았다. 관중의 입장에서 보니 취재 대상이었던 프랑스대사의 목소리는 20, 30초 정도에 불과했으며 나머지는 모두 기자가 대사의 관점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이는 TV뉴스의 현실이다. 취재 대상자가 30분 넘게 이야기를 해도 관중은 1분도 채 듣지 못한다. 이 1분마저도 기자가 취재 대상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보통은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해도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민감한 시기에는 기자의 표현력 문제든 통역의 정확성 문제든 단어 하나에 따라 그 결과는 천지 차이가 난다.
기자의 보도를 본 대중의 반응은 대략 이러했다. 프랑스대사는 중국 국민의 이러한 불매운동이 도리에 맞지 않으며, 까르푸는 법적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여긴다. 올림픽은 우의 증진의 기회이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국가가 중국이 티베트 문제에 있어 투명도를 높여주길 희망한다. 중국 국민이 프랑스 정부에 오해가 있다면 프랑스는 이를 해소하는 데 적극 노력할 것이다. 문제가 된 것은 역시 “도리에 맞지 않다”는 표현이었다. 이 표현 하나가 중국 국민의 신경을 건드리고 말았다. 이미 ‘도리를 벗어난’ 프랑스 정부가 아직도 오만한 태도로 일관하며 ‘도리’ 운운했다는 것이다.
뉴스는 보도 후 24시간이 지나면 이미 뉴스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 특히 TV 뉴스의 경우가 그렇다. 뉴스보도 프로그램을 통한 수정도 불가능했기에 나는 내 블로그에 당시 취재 전문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방송 분량이 너무 적거나 방송 시간대가 맞지 않으면 대중은 방송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충분히, 그리고 정확하게 얻기가 쉽지 않다. 이는 방송을 보는 대중은 물론 방송 취재에 응한 대상자에게 불공평한 처사다. 사실 보도에 있어 언론 매체는 그 어떤 입장을 취해서도 안 된다. 나는 프랑스어를 몰랐지만 프랑스어로 된 전문을 올리고 중국어 번역본은 프랑스대사관에서 제공했음을 명시해뒀다. 만일 대사관의 번역본에 이견이 있는 독자들은 다른 루트를 통해 원문을 재해석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취재 전 과정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기자가 프랑스대사의 말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 라드수 대사가 “까르푸는 법적 책임을 추궁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 것은 모회사가 티베트 독립 조직을 원조하고 있다는 뜬소문을 겨냥한 것이었다.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상대방, 즉 중국 국민의 감정까지 배려하려고 그가 어휘 선택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방송을 통해 언론 매체가 전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뜻과 다르게 와전이 되어버렸다. 프랑스 대사의 취재 전문을 본 사람들의 반응도 서로 엇갈렸다. 그의 진심을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 여전히 그의 태도가 오만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으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의 이런 처사가 양심불량이라고 치부하기도 했다.
전문을 블로그에 올리고 나서 왜 올렸느냐고 추궁하는 전화를 받았다.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매우 당연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방송보도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면 취재 대상자가 해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프랑스대사관 홈페이지에도 이미 전문이 등재된 상태였다. 결국 내가 올린 글은 여러 사이트에서 삭제되었다. 봉황TV 웹사이트에만 그대로 남겨 두었는데 오히려 이 점이 나는 더 곤혹스러웠다. 인터넷 매체에는 통일된 기준도 없단 말인가? 격앙된 대중 심리 앞에서 이런 해명은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고 완화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어야 한다. 자기 목소리만 낼 때보다 소통과 대화를 할 때 상황이 나아져야 한다. 나는 이런 상황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편견, 생각에 좌표를 찍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뤼치우루웨이 지음, 역자 이화진님, 시그마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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