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뒤의 철학자 혹은 데카르트
17세기 초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이며, 흔히 근대철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데카르트(Descartes)는 기묘한 말을 남겼다. “배우들이 이마에 부끄러움이 나타나지 않도록 가면을 쓰고 등장하듯이 나도 세계라는 무대에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철학자가 가면을 쓴다고? 물건들과 인간을 밝히는 것을 의무로 삼고 있는 사람이 가면 뒤에 숨겠다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사상이 《성서》의 진리와 완전히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개신교 종교회의와 몇몇 대학들은 그의 저술을 금지했고, 가톨릭교회도 금서목록에 그의 저술을 포함시켰다. 일부 사람들은 그의 철학적 활동을 신이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한 작업에 비유하고, 그를 《구약성서》의 입법자인 모세와 비교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의 신앙 없음, 무신론, 부도덕함 등에 대해 불평하기도 했다. 이런 일은 현대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은둔을 얻기 위한 싸움: 그는 1596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하마터면 그의 전기는 이것으로 끝날 뻔했다. 숨고 싶은 열망이 어찌나 컸던지 그는 지상이라는 무대에서 곧바로 사라지기를 원했고, 그것도 의사들이 완전히 희망을 포기할 정도로 열렬히 원했다. 데카르트는 이렇게 삶을 허약하게 시작한 덕분에 한 가지 이점을 얻었다. 그는 항상 자신을 보호해야만 했고, 이것이 그가 평생 유지한 습관이었다. 그러나 당시에 그는 벌써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말 잘 듣는 모범생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 뒤에는 저항적인 정신이 숨어 있었다. 그는 이미 생명력을 잃어버린 전통을 남몰래 거부했다. 의문의 여지가 없는 지식이라고 제공되는 모든 것이 그에게는 극단적으로 의심스러웠다. 특히 철학이 의심스러웠다.
그에게는 철학적 사색이 중요했다.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을 두루 살펴보고 난 후 데카르트는 자기 자신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 완전한 고요함이 필요했던 그는 네덜란드로 은둔했다. 그곳에서 ‘고독 속에서 고독하게’ 지내고 인간의 정신 영역의 여러 발견들에 헌신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물론 “그때까지 내가 품고 있던 모든 확신들을 극히 광범위하고도 근본적으로 뒤집을 것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그에게는 네덜란드가 생산적인 고독을 위해 만들어진 장소처럼 보였다. “아무도 나를 알아채지 못하는 가운데 나는 여기서 평생이라도 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가짜 주소를 이용하여 조심스럽게 계속하고 있던 광범위한 편지 교환만이 그를 이 세상과 연결시켜주었다. 이런 고독은 그때까지 얻지 못하던 행복을 주었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그토록 염려하면서 자신의 고독을 지켰는데도, 그가 마침내 자신의 생각 중 일부를 발표하자마자 그는 적대감을 얻고, 무신론을 지니고 신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고발을 받기에 이르렀다. ‘신학자들의 수염과 목소리와 눈썹을 두려워하는’ 여론의 영향을 받아서 당국까지 그에게 적대적이 되었다. 그는 이런 공격들이 허무맹랑한 것이라고 탄식했다. “내가 회의주의자들을 반박했기 때문에 어떤 신부는 내가 회의주의자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내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어떤 설교자는 내가 무신론자라고 소리를 질렀다.”
과격한 의심: 이처럼 데카르트의 삶은 은둔을 얻기 위한 끊임없는 싸움이었다. 똑같은 것이 그의 책에도 나타난다. 그의 책도 이상한 모호함으로 감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데카르트가 문제로 삼은 주제 자체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그는 두려울 정도의 대담함으로 과격하게 철학의 새로운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다가 자기 앞에 입을 벌린 심연을 보고는 놀라 물러서서 옛날의 생각과 옛날의 믿음을 다시 붙잡았다. 어쩌면 급변하는 시대의 사상가에게는 새 것을 따르면서도 낡은 것에 달라붙어 있는 것만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앞으로 다가오는 것에 대한 의무감과 이미 지나간 것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분열된 지식을 가졌다는 점이 데카르트라는 수수께끼 현상의 진짜 비밀이다. 그리고 바로 그럼으로써 그는 철학의 역사에서, 아니 그 이상으로 인간 정신의 역사에서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이다.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철학이란 형이상학적인 물음을 내놓는다는 의미였다. 맨 먼저 확고한 토대를 만들어내는 것, 그러니까 수학의 공리처럼 직접적으로 확실하고 명백하고, 그래서 철학의 전체구조를 떠받칠 수 있는 한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게 절대적인 시작을 하려면 온갖 잠정적인 확실성들을 먼저 파괴하는 일이 꼭 필요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근본부터 뒤집어엎고 맨 처음 토대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라고 보았다. 그는 단호하게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의심하는 생각의 자유 속에 자신을 세웠다. 이런 대담성을 통해 그의 과격한 의심 속에서 새 시대의 철학을 위한 결정적인 출발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새로운 철학은 데카르트의 뒤를 따라 주체와 그 자유에 기초하게 되었다.
<“철학의 에스프레소”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빌헬름 바이셰델 지음, 역자 안인희박사, 프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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