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뒤의 진실
사진 배후의 힘겨루기: 타이 정부가 군대를 투입해 반정부 시위대 ‘레드셔츠’가 점령하고 있던 금융상거래 지역 진압을 시작했다. 그러자 두 달여 동안을 끌어온 레드셔츠의 가두시위는 2010년 5월 18일 마침내 막을 내렸다. 타이 정부의 강경 진압에 대한 보도를 마친 후 나는 후임 기자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홍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레드셔츠의 지도자가 해산을 선언한 후 검은 옷을 입은 어떤 남자가 취재기자를 구타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정부가 ‘폭도’라고 칭하는 레드셔츠 시위대의 사진과 영상이 주요 언론 매체를 통해 알려졌던 탓일까? 며칠 뒤 거리에는 마스크를 한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어쨌든 정부군에 대한 공격은 범법행위이므로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도 취재 도중에 레드셔츠 시위대의 화염병 준비 장면을 촬영하던 동료기자가 상대방에게 제지당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시위대는 우호적이었다. 어쩌면 검은 옷의 남자는 취재기자를 구타해 이슈거리를 만듦으로써 혼란한 방콕의 모습을 외부에 알리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부군이 설치한 봉쇄 지역을 취재할 때면 총성이 울리는 곳 주위로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어 누가 레드셔츠고 누가 구경 나온 시민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총성이 그치고 나면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와 마치 어느 곳에 몸을 숨기고 있는 저격수를 자극하는 것만 같았다. 특히 기자들이 많을수록 그들은 더욱 격정적으로 변했다. 어떤 때는 오토바이를 타고 깃발을 흔들며 사격 사정거리 안에서 쏜살같이 달리기도 한다. 몰려든 인파의 환호성이 커지는 순간이다. 격분한 저격수들의 총성이 한꺼번에 울리고 나면 운 나쁘게 총에 맞는 사람이 생기기도 한다. 이 순간이야말로 보도사진과 영상자료 획득의 최적기다. 선별과정을 거쳐 일반 시민은 걸러내고 순수한 충돌장면만 보도한다.
몰려든 시민들은 너도 나도 나서서 누가 죽는 것을 봤느니, 어떤 건물에 저격수가 있느니 알려주기 바쁘다. 나도 취재 도중에 몇몇 군인의 사망 사진을 보여주는 사람을 만났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방금 휴대폰으로 수신된 사진이며, 시민들을 향해 총 쏘기를 거부한 군인들이 명령 위반으로 처형되었다”고 한다. 이 사진은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하루 만에 정부군은 이 사진이 2007년에 촬영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천만다행으로 나는 이 사진을 보도하지 않았다. 내가 실제로 본 장면도 아니고 확인할 방법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 ‘목격자’의 말을 그대로 보도자료로 이용한 언론 매체도 적지 않았다. 스피드를 추구하는 언론 매체가 정확성까지 추구하기란 쉽지 않다.
강경진압에 앞서 타이 정부군은 주말을 이용해 영상 한 편을 내보냈다. 5월 14일 군대의 진압 작전 시작 후부터 군과 정부는 하루 한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그들의 행동과 목적, 증거자료 등을 발표했다. 이 영상에는 레드셔츠 시위대의 옷을 입은 아기가 타이어를 쌓아 만든 바리케이드 위에 올려져 있는 장면이 있었다. 타이 정부군은 굳이 나서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고, 이 영상은 인터넷과 각국의 언론 매체를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다수의 언론 매체에서 레드셔츠 시위대가 아기를 인간 방패로 이용했다고 보도했다. 공교롭게도 이튿날 타이 정부는 은행 방화범이 열두 살 소년이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그 전날에는 한 자선단체에서 여성과 아동, 노약자를 시위 현장에서 철수시키도록 호소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며 레드셔츠 시위대는 여론에서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이 영상의 배후에는 다른 진실이 있었다. 당시 어떤 기자가 한 시민에게 사진을 찍을 테니 아이를 타이어 위에 올려놓도록 청했다고 한다. 주위에 있던 타이 언론 매체들도 이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에 보도자료로 사용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정부군이 레드셔츠 시위대를 비난하는 증거로 이 영상을 공개하고 이틀 만에 강경진압에 나서자 일부 타이 신문들이 이 사진을 헤드라인으로 보도한 것이다.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지 않았다면 이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레드셔츠 시위대의 집회 단상 뒤에는 소위 ‘VIP 구역’이 있다. 시위대 지도자들이 회의 진행이나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 한편에 기자회견장도 마련되어 있다. 이곳엔 대형 플랜카드와 음향설비까지 갖춰져 있고 기자들을 위한 구역도 따로 설정되어 있다. 기자들은 이곳에서 기사도 쓰고 식사와 음료를 무료로 제공받으며 악취가 전혀 나지 않는 VIP 전용 화장실도 사용할 수 있다. 이처럼 기자들에게 우호적인 이유는 자신들의 요구를 외부로 알릴 루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레드셔츠 시위대 사이에도 틀림없이 소통경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은밀한 왕래는 최후의 순간이 와도 반드시 드러난다고 단정 짓긴 어렵다. 타이 정부와 시위대 모두 타이 국민들, 나아가 국제 사회에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릴 필요가 있다. 양측 모두 자유 민주사회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언론 매체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 물론 레드셔츠 시위대는 정부에 비해 언론 매체와의 접촉이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레드셔츠 시위대의 지도자들은 자국인 타이의 기자들보다 외국 기자들에게 더 열의를 보인다. 시위대에 편견이 있는 타이 언론 매체들은 여간해서는 그들의 목소리를 내보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5월 14일 기자 총격 사건이 발생하자 타이 주재 외국기자협회는 양측에 “기자들이 그들의 목표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기자가 일선의 상황을 제대로 기록할 수 있을 때 취재 기회가 생기고 정확한 보도가 가능해진다. 이곳의 복잡한 정황을 잘 모르는 외부 사람들은 이러한 보도기사를 보고서야 비로소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기자협회의 성명은 어느 한쪽도 비난하지 않았다. 기자 총격 사건의 진범이 누군지 쉽게 판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었다. 여러 집단의 이익이 대치하고 있을 때, 언론 매체가 한쪽 편을 들거나 부정확한 보도를 하게 되면 대중들은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고 외부 세계에는 허구의 이미지를 심어줄 우려가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 부시 정부는 국내 언론 매체를 이용해 이라크에 대량 살상무기가 있는 것처럼 대중을 오도했다. 이 때문에 미국 민심이 출병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언론 매체가 이번 전쟁의 공범자가 되어버린 이유는 뉴스 보도의 기본 수칙을 지키지 않은 탓이다. 비록 정부가 발표한 내용이라고 해도 반드시 제3자의 확인절차를 거쳐야 한다. 특히 정부 관료가 사적으로 제공한 소위 ‘단독 보도’ 자료일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당시 언론 매체는 정부에 정면 도전하며 애국심도 없느냐는 비난을 감수하기가 두려웠을 것이며, 경쟁이 심한 언론계에서 ‘단독 보도’의 유혹을 비켜가기 또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언론 매체가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실로 치명적이다. 외부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고 외부 세계를 이해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언론 매체이기 때문이다. 사건에 대한 이해 정도는 판단의 근거로 작용하고, 이런 판단의 경험이 쌓여 이미지가 굳어져 나중엔 가치관의 형성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이 때문에 국제뉴스 보도에 종사하는 언론 매체와 언론인의 책임은 막중하다. 그들의 보도는 세계를 보는 사람들의 시각에 영향을 미쳐 국세 정세는 물론 그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언론 매체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당장 필요한 것은 어떤 관점의 주입이 아니라 대중에게 정확하고 사전에 어떤 선별도 거치지 않은 ‘사실’을 알려주는 일이다. 다각도에서 접근한 풍부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된다면 대중이 유언비어에 흔들릴 이유가 없다. 언론 매체가 이 같은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때 대중 ‘계몽’의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문득 내가 가르치는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학생들이 떠올랐다. 학기가 막 시작되었을 때 이들에게 서방 언론 매체가 어떻게 중국을 보도하고 있는지 분석하도록 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 중국 학생인 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중국에 대한) 부정적 보도는 서방 정부의 이권에 부합하기 위해서다”라고 대답했다. 물론 이 같은 견해에도 일리가 있다. ‘가치관’만 놓고 보자면 이들 매체는 여러 문제에서 그들 정부와 같은 입장이라 해도 무방하다. 정부를 그들 손으로 직접 선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칙적인 문제에는 큰 견해차가 없다고 해도 이들 ‘매체가 정부의 지시대로 움직이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선 조금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물론 상업적인 매체와 직접 접촉할 경험이 적은 젊은이들에게 ‘언론 매체가 더욱 거대해지고 강해지기 위해서, 또한 지명도와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와의 협력이 아니라 정부와의 거리 유지와 도전 의식이 관건이다’라는 사실을 이해시키기란 쉽지 않다. 《뉴욕타임스》와 같은 서방 언론 매체가 중국에 줄곧 부정적인 기사만 낸다고 힐난할 수 있다. 하지만 자국 정부도 마찬가지로 이들에게 트집을 잡히고, 어쩌면 더 큰 책망을 받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언론 매체의 사명으로 이런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워치독’, 즉 파수견, 감시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어쩌면 긍정적인 보도에 길들여져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부정적 보도는 받아들이기 어렵고, 심지어 배타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여기에서 바로 ‘언론 매체의 역할 정의’ 문제가 드러난다. 감독이 중요한가, 홍보가 중요한가? 사실이 중요한가, 입장이 중요한가? 시비가 중요한가, 아니면 정치적 정의가 더 중요한가?<“편견, 생각에 좌표를 찍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뤼치우루웨이 지음, 역자 이화진님, 시그마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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