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부락의 전쟁 및 신화에 나타난 성애와 호전
원시 촌락의 동물적 전쟁
역사 이전의 역사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유럽 대륙의 많은 지역에서 원시 촌락과 촌락 사이에 전쟁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러한 원시 촌락에서 남성 호르몬의 공격 에너지는 보통 두 가지로 표출되었다. 바로 성적 욕구와 싸움이다. 거의 모든 원시 촌락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대장부는 군대의 대장이다. 군대의 대장은 민첩하고 용맹하며 넘치는 공격 에너지, 그리고 야성적이고 위풍당당한 남자의 기개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원시 촌락에서 대장부의 기개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이때 전쟁은 대장부의 기개를 확인하는 시금석이 되었다. 만약 당신이 적의 촌락과 거주민을 모두 죽여버리면 대장부의 기개는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 되고, 계속되는 전쟁을 통해서 점점 강해지는 자신의 남성적 기개를 보여주어야 했다. 인류의 세계를 건설하려는 본능은 날실과 같고 세계를 파괴하려는 본능은 씨실과 같다. 이 날실과 씨실이 한 줄 한 줄 교차해 인류의 역사가 이루어졌다. 이 두 가지 본능은 모두 선천적이다. 단지 전쟁을 통해 대장부의 기개를 표현하는 원시적 개념이 점점 가려졌을 뿐이다.
오래된 이야기 속의 정보
세계 민족의 신화와 전설은 성애와 전투라는 두 가지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두 가지는 사실 남성 호르몬의 공격성이 외부로 표현되는 서로 다른 측면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전쟁의 신은 아레스이다. 아레스는 무예를 숭상하고 전쟁을 좋아하는 공격의 신이다. 신화 속에서 아레스는 남성 호르몬이 넘치는 영웅으로 그려진다. 아레스의 전투마 네 마리(연소, 폭동, 화염, 공포)는 보레아스와 복수의 여신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전쟁은 복수심을 전제로 하고, 복수는 일종의 원한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복수→전쟁’이라는 상관관계를 엿볼 수 있다.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갑옷과 투구를 걸친 아레스는 종종 장검, 횃불, 사냥개, 독수리로 상징된다. ‘영웅이 미인을 차지한다’는 플롯은 남성 호르몬이라는 생물화학적 원인에서 비롯되었다. 신화에서 아레스의 호전적인 성향은 제우스를 비롯한 여러 신들의 눈총을 샀다.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문명 초기에 평화에 대한 인류의 바람을 보여준다. 이런 신화의 창작에서 우리는 평화 수호와 호전적 경향이라는 두 상반된 힘이 인류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상에 전쟁과 성애가 없는 신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와 티폰이 우주의 통치권을 차지하기 위해 결투를 벌인다. 인류의 길고 복잡한 전쟁사에서 통치권의 차지(권력욕)는 전쟁의 또 다른 패턴을 보여주었다.
고대와 현대 게르만족의 신화
로젠베르크는 1946년 10월 국제재판에서 나치전범으로 교수형에 처해진 인물이다. 이는 그의 범죄 행위가 용서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독일이 나치의 통치를 받은 12년 동안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한 책이 두 권 있다. 바로 히틀러의 『나의 투쟁』과 로젠베르크의 『20세기의 신화』이다. 이 책들은 나치의 언어 부호 체제로서 <성경>과 다름없는 추앙을 받았으며, 이 책들이 없었다면 나치 운동도 없었을 것이다. 이 두 책의 주제는 모두 나치 독일이 일으키려던 전쟁을 정당화, 합리화 하는 것이다.
<20세기의 신화>는 제3제국(히틀러의 권력 장악 시기의 독일 제국)의 정부 철학이 된 책이다. 수백만 명의 독일인이 게르만 민족의 고귀한 혈통에 관한 신화를 절대 진리로 받아들였고, 한 목소리로 “깨어나라! 독일이여!”를 외치며 정의롭지 않은 전쟁터로 나섰다. 이 책은 총 712페이지에 달하는데 그중 민족 신화를 논한 부분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속표지에 쓰인 ‘바치는 글’이다. “독일의 존립과 발전, 자유로운 독일 제국을 위해 세계 대전에서 목숨을 바치신 200만 독일 영웅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이 몇 줄 되지 않은 글에는 복수와 선동의 색채가 가득하다. 1918년 독일이 패전하던 날 히틀러는 목이 멜 때까지 통곡했다고 한다. 그날 수천만 독일인의 가슴속에 복수의 씨앗이 뿌리내렸고, 이들은 다음에는 더 큰 규모의 전쟁을 일으키리라 다짐했다. 여기서 정치, 경제적 원인 외에 전쟁의 원인이 명확히 드러난다. 바로 복수의 감정, 민족의 무서운 집단의식이다.
로젠베르크가 『20세기의 신화』에서 다루는 문제는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핵심 사상은 하나이다. 하늘이 아리아인, 특히 게르만인을 선택하여 세계의 민족을 지배하게 했고, 독일은 내재된 본성이 우월하므로 전 세계를 정복하리란 것이다. 그는 게르만족의 옛 신화에 기원한 혈통 신화를 극대화하여 독일인들을 나치운동의 비이성적이고 비정상적인 광분에 끌어들였다. 나치 운동과 고대 게르만족 신화의 본질은 낭만주의이다. 신화에 따르면 게르만족이 속한 북유럽인은 가장 우월하며 창조력이 뛰어난 민족이다. 이들은 푸른 바다와 반짝이는 빙하의 고귀한 기질을 타고 났다. 북유럽인의 정신은 영예와 영웅주의, 노래하는 예술과 지혜에 대한 부단한 탐구 등으로 잘 드러난다.
그러나 신화는 신화일 뿐이다. 문학예술의 창작 소재로서 시인과 화가, 작곡가의 영감을 자극하는 데 쓰여야지 정치철학의 제1원리로 쓰여서는 안 된다. 나치 독일의 죄악은 현대 신화의 죄악이라 할 수 있다. 로젠베르크는 철학적 사변에 적합한 독일어의 언어 부호 체계로 나치주의의 혈통 이데올로기를 써냈다. 이는 극악무도한 죄이다. 8천만 게르만인의 사랑과 원한의 감정을 선동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전쟁이 발발하려면 집단의 사랑과 원한의 감정을 미리 설정한 원흉과 죄인에게로 돌려야 한다. 히틀러가 로젠베르크를 마음에 들어 했던 것도 그의 철학이 새로운 전쟁을 합리화 해주었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북유럽 인종인 게르만인이 세계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광적인 관념에 갇혀 살았다. 히틀러는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가장 좋아했다. 니벨룽겐의 반지는 북유럽 신화와 역사적 근거에 영웅 전설을 첨가하여 만든 혼합 작품이다. 나치 신화는 북유럽 신화를 더 발전시킨 것이다. 나치주의 운동에서는 ‘북유럽 인종의 영혼’이라는 용어가 중요하게 쓰였다. 히틀러는 바그너의 오페라가 이 영혼을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바그너의 오페라에 담긴 원동력은 바로 남성 호르몬과 인간의 뇌라는 생화학적 배경이다. 이처럼 히틀러의 죄악으로 가득 찬 일생에는 놀랍게도 고대 게르만 민족 신화와 구조와 신비주의 색채가 녹아 있다. 그는 전쟁에 충실했고 열정적으로 몰입했다. 전쟁을 ‘게르만 민족이 세계를 통치한다’는 신화를 현실화 할 도구로 보았을 뿐만 아니라 전쟁 행위 자체를 목표로 삼았다. 그에게 전쟁은 자아실현을 최고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자 자신의 존재 이유였다. <“전쟁 호르몬”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자오신산 지음, 역자 김정자님, 시그마북스>